●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60514a | 김건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704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규정을 거부하는 과정으로서의 서술 ● 김건주는 작업 전반에 걸쳐 각각의 서술구조가 유기적으로 일체화된 한 권의 책을 구축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하나의 완성체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서술로서 제시된다. 또한 각각의 작품은 마치 상형문자처럼 기호화된 텍스트로서 기능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적어도 작가에게 각 전시는 전체의 부분 혹은 과정으로서의 장(chapter)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모든 작품 및 전시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총체적인 문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 결론을 쉽게 규정지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작가는 각각의 작품들에 일련의 서사구조를 선택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일반화된 서사구조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거리를 의도적으로 조장한다. 그가 견지하고 있는 서사구조란 적절한 중간대가 없어 지극히 뜨겁거나 차갑다. 대상들은 그 이면에 포함하고 있던 복잡한 성격을 상실한 채 단순화된 형태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그의 작품의도에 대한 궁금증이 형식의 차원에서 해갈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보기 좋게 무산된다. 작가에게 다원화, 다매체 등은 단지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다채로운 형식적 틀을 채택하되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일 뿐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덧붙여 기존의 문법 안에서 새로운 형식이란 말의 유통기한은 이미 만료되었다. 동시대 현대미술에서 새로움이란 말은 그 자체로 상투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인식 역시 여기에 이르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로써 우리의 손에는 작가의 의도가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라는 사실만 남게 된다. 그리고 예측불가능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당혹감을 유발케 한다. 이런 맥락에서 김건주의 작업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란 곧 그 당혹감의 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 내부로 들어가면, 서로 다른 문맥의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는 표상들이 고도로 압축되고, 기호화된 채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특정한 형식적 지점 안에 조합됨으로써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그리고 다시 이들이 엮이고 얽히며 문장을 형성하고 단락과 장을 구성한다. 거기서는 여러 가지 작업도구나 딸아이의 곰돌이 인형을 비롯하여 작가 자신의 이런저런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일상에서 건저올린 주관적 표상들과 자유여신상, 에펠탑 그리고 어떤 불특정의 악기들이나 동물 등등 신화적인(비일상적이며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표상들이 이질적으로 교차, 혼융한다. 다른 한 편으로 이전까지 "낯선 표류"라는 표제 하에 중량감이나 모뉴멘트적 상징성이 배제된 채 허공에 걸렸던 가벼운 입체작품들은 더 이상 공중을 부유하지 않는다. 이제는 평면화되고, 겹쳐지거나 혹은 집적된 채 벽에 걸리며, 바닥에 놓여진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전혀 다른 문맥을 가진 사물들의 교차가 특정한 사회구조나 사람 간의 구체적인 관계에 근거하는 일반적 차원의 서사성을 거의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개개의 텍스트(작품)들은 어떤 완결된 의미를 제시하지 않고, 다만 던져지고, 별다른 상관관계 없이 겹쳐져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작가적 입장은 새로운 논의점을 획득한다. 무엇보다 우선 작가는 구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형식이 아닌 '상황' 혹은 '태도' 그 자체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속적으로 세계의 내부에 머물며 '정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 위에 또 다른 하나를 단순히 포갬으로써 정형화된 형태나 방향을 부여하지 않고 반복 순환하는 상황 자체를 제시하는 흡사 베케트 류의 부조리극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이는 복합적인 의미가 상실된 이른바 기의 없는 기표로 제시함으로써 보편적인 사유의 방식을 흔든다. 나아가 작가의 이런 전략은 구조 내의 사유가 아니라 구조 자체에 대한 사유를 목적에 두고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 역시 규정을 거부하는 자체의 구조에 부딪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그럼 정녕 우리는 이런 비규정성에 떠밀려 그의 책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평면부조작품과 보다 조각적 문법에서 입체화된 토르소나 가방 등은 분명 특유의 조형적 매력으로 관람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전시장의 작품들은 달콤한 형태만을 소비하고자 하는 관람자의 욕구를 교묘하게 좌절시킨다. 그의 작업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긴 호흡이 요구된다. 여기에 김건주 작품의 첫 번째 매력이 있다. 더욱이 그것은 관람자를 자연스레 다음 단계로 유도하는 유혹의 끈이 된다. 이 끈을 놓지 않고 따라간다면,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그럼으로써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유의 숲을 여행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두 번째 매력이다. 끝으로 작가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공동의 화두, 즉 가학과 피학이 수시로 교차하는 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의 문제는 그 답이 무엇이든 함께 찾아가야할 각각의 즐거운 과제로서 남게 된다. 설령 그 중간쯤에서 뒤돌아 선다할지라도, 최소한 우리는 고단한 밥벌이를 잠시 제쳐 두고 어느 다방에 앉아 수다로 이러구러 시간을 쪼아대는 소요유적 기꺼움 정도는 당연히 얻게 될 것이다. ■ 윤두현
Vol.20070707c | 김건주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