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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05_화요일_05:30pm
전시기획_이주헌 주최_아소 갤러리
아소 갤러리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9-8번지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1층 Te. 02_558_6430
풍경의 상처, 상처의 풍경- 김혜련의 임진강 연가 ● 한반도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임진강은 분단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하지만 이 강은 그냥 남북을 가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강과 만나 교하(交河)를 이룬다. 그 만남의 땅 한 귀퉁이에 화가 김혜련이 산다.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가 그의 생활 터전이다. ● 헤이리에 둥지를 튼 후 먹이를 찾는 새처럼 김혜련은 임진강 일대를 자주 드나들었다. 코앞에 강이 흐르고 그 강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철조망이 눈앞을 가로막은 것을 빼고는. ● 강과 철조망이 자아내는 이 기묘한 풍경이 그에게 풍경의 상처로, 나아가 상처의 풍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저 풍경에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저 풍경은 우리에게 상처로 남았다. 상처는 흉하다. 그래서 흉터라 부른다. 하지만 상처는 또 아름답다. 아물고 딱지 진 흉터는 상처를 이기려는 강한 생의 의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 임진강은 이처럼 한민족의 생의 의지를 대변해온 아름다운 강이다. 선조대왕이 왜란을 피해 의주로 파천했다가 다시 이 강나루로 돌아와 한양으로 건너갔다 해서 강 이름을 임진강(臨津江)이라 했다던가. 그렇게 대대로 상처를 딛고 일어서온 강이 바로 임진강이다. ● 독일에서 그림 공부를 했고 지금도 빈번히 독일에서 작업을 하거나 전시를 하는 김혜련은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숲을 사랑한다. 베를린이 냉전의 섬으로 버려져 있을 때도 숲을 생명의 보루로 지키려 했던 독일 사람들. 그들의 숲 사랑은 자연의 치유력에 기대 역사의 생채기를 아물게 하려는 의지의 표현 같은 것이었다. 이제 독일은 분단의 철조망과 벽을 걷고 통일의 숲을 더욱 풍성하게 가꿔가고 있다. 임진강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김혜련에게 이런 독일의 숲과 자연은 갈수록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헤이리에 정착한 2004년 이후 한국에서는 임진강을, 독일에서는 숲 풍경을 그리며 풍경의 상처와 상처의 풍경, 그리고 풍경의 치유와 치유의 풍경에 대해 두루 사색해온 김혜련. 그의 붓 길이 이제 우리의 마음에 작고 아름다운 산책길을 내준다. 나의 상처를 씻고 너의 상처를 보듬는 해맑은 임진강변 오솔길이다. ■ 이주헌
임진강 연가 ● 임진강 건너를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건너갈 수 있을 듯하다. 산등성이들이 부드럽고 재미있는 곡선을 만들고 있다. 검은 먹으로 산등성이 윤곽선을 그어보다가 물방울을 튀긴다. 흘러내리고 번지고 뭉개고... 우리 아버지 세대의 감성이 이런 것이었을까, 검은 하늘과 검은 산, 검은 들... 전쟁을 겪은 윗세대에게 먹그림을 빌미로 왠지 모를 죄송스러움을 고백해본다.
임진강 철조망 ● 임진강 변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 철조망은 더욱 부자연스럽다. 풍경이 서정적이라면 녹슨 철조망은 우리 사회를 이루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 분단의 적나라한 상징이다. 풍경이 풍경다울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여기에서 읽는다.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성을 둘러쌌던 가시 넝쿨의 저주가 드디어 풀렸듯 임진강 철조망들이 녹아나서 장미꽃 넝쿨로 변하는 꿈을 꾸어본다.
맨홀을 바라보며 ● 쉐핑엔에는 500 년 된 성당이 있었는데 그 안마당에는 유럽의 오래된 길이 그렇듯 입방체 돌이 일일이 깔려져 있고 그 가운데 쇠로 된 맨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명하는 소리처럼 돌조각들은 맨홀을 둘러싸고 마치 연못 위에 돌을 던진 것처럼 맨홀의 울림이 되어주고 있었다.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여느 국가보다 강한 독일, 비록 통일의 후유증으로 경제적, 심리적 몸살을 앓는다지만 삶의 터전인 땅을 지키려는 뚝심이 부럽기만 하다. ■ 김혜련
Vol.20070605b | 김혜련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