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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7_0507_월요일_07:00pm
관람시간 / 02:00pm~10:00pm / 일요일 휴관 매주 금요일 작가와의 대화 및 관람객에게 얼음꽃 프로젝트 사진을 한장씩 나눠드립니다.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4-5번지 Tel. 011_9991_1701 www.curiosity.co.kr
강소영릴릴 개인전 멈춰진 시간에서의 우연한 만남 ● 강소영릴릴이 남극에 서서 그린 것은 무엇인가? 언어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것이 지시대상이 아니듯이 시각예술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모방대상이 아니라 이미지 자체이다. 그래서 그림은 결여를 인정하면서 인식의 한계 너머를 이미지로 구현하려는 영역이다. 보이지 않는 빈 공간, 특히 거기서 나오는 충동을 표현하는 것이 현대미술일 것이다.
그의 이번 전시 『멈춰진 시간』의 그림들은 무의미로 가득 찬 선들과 반복된 형상들로서 의미를 구성한다. 그의 그림에서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남극의 풍경도, 유빙도 아니다.
<달리는 바람」에서처럼 작품 전면을 따라 흐르는 기운들과 「유빙, 끊임없이 흘러가는」에서 대상을 따라 맴도는 선들과 「섬이녹다」에서 반복적으로 찍은 작은 형상들로 메워진 흔들린 반복들, 이처럼 겹쳐지고 흔들린 형상들이다. 이 반복되는 선과 형상들의 반복된 움직임은 강소영릴릴 그림이 가지는 즐거움의 실제 원천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그 어떤 의미도 갖고 있지 않은 형성물들이다. 이것은 향유의 특정한 양식을 단순히 암호화하며 하나의 것에서 또 다른 것으로 의미 총체성을 강조하는 경련들이자 반복적 특징들이다.
이렇듯 그는 조화로운 남극의 모습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와 상반되는 것들을 드러내고 있다. 화해가 아닌 갈등을 잡아낸다. 그는 남극을 그리고 있지만 남극 그림은 현실의 욕망의 실재를 감추는 환상의 구성물이다. 또한 그에게서 그린다는 행위는 표상으로 표상을 넘어서는 과정이며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이다.
작가는 언캐니(uncanny)한 시각적 표현과 소리,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되지 않은 남극이라는 실체를 표현한다. 화면 가득 채우는 쏴하게 부는 바람의 촉각적 느낌, 물과 유빙의 흐르는 질감들은 「섬이 녹다」에서 볼 수 있는 검은 얼룩, 「멈춰 진 시간 조각」의 흐릿한 선처럼 가로지르는 물체이다. 이 늘어진 물체는 색채 얼룩들의 직접적인 물질성도 아니고, 묘사된 대상의 물질성도 아닌 것이다. 유령적인 중간 영역이며 상징화에 저항하는 향유의 순수 실체인 사물로서 진공의 무(nothingness)를 물질화한 것이다. 이것은 남극의 형상들을 무로 만드는 파괴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림은 욕망을 넘어선 충동의 공간이 되며 향유의 공간이 된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의 부재를 만나게 된다. 언어도, 논리도 사라져 부정만이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개념과 경계는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장소가 만들어내는 덧없음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시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육화된 향유와 마주친 바로 이 순간은 죽음과 승화의 순간이며 멈춰진 시간이다.
그는 애도의 제의를 「유빙과 놀기」 프로젝트에서 수행한다. 예외적 존재로서 여자, 애도하는 자로서 작가는 안티고네가 된 것이다. 그는 오딧세이가 떠난 자리에 죽은 사이렌을 애도한다. 위협이 사라져 단지 아름답기만 한 사이렌의 노래는 더 이상 사이렌의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의식은 애도를 통해 벌어진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그는 환상을 연기해내고 있다. 움직이는 유빙을 따라 색칠한 작은 돌들을 옮기기를 반복하는 행위, 즉 이쪽과 저쪽으로, 행위로의 이행을 통해 작가는 상징계에서 실재로 건너가는 중이다. 이렇듯 『멈춰진 시간』전에서 남극 그림은 현실을 지탱해주는 환상이며 작가는 그 환상을 가로지는 행위를 반복한다. ■ 박수진
Vol.20070527e | 강소영릴릴展 / KANGSOYOUNG liilliil / 姜素永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