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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21_토요일_05:00pm
2007 UM gallery 1st 젊은작가 지원 기획공모
엄갤러리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5-7번지 Tel. 02_515_3970 www.umgallery.co.kr
둥근 원에 갇힌 세상 ● 주도양은 사진으로 또 하나의 예술을 실험 중이다. 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일을 붙들고 몇 년째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밖으로 보여주는 원은 일견 심각하지 않다. 알록달록한 예쁜 유리구슬 같은 둥근 원이고, 우주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행성 같은 원이다. 이 둥근 것에 그가 던지는 여러 의문과 해결해야 할 것들이 모두 들어 있으니, 요지경 같은 원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법에 걸린 듯한, 이 희한한 동그란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맛있는 감상은 작가가 이미지에 걸어둔 주술을 풀어내야만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다. ● 먼저 낯익은 사각 프레임을 통해서 보던 세상의 틀을 원으로 바꾸어놓는 것부터 이 사진들을 낯설게 만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진기로 세상을 보던 렌즈는 원래 원이 아니었던가? 원으로 보던 세상을 그동안 사각 틀 하나를 덧씌워서 보았는데, 원래대로 보자고 하니 이상하기만 한 것이다. 더욱이 예쁜 원 속에 담겨 있는 세상은 참으로 희한하기만 하다. 그게 분명 사진 이미지라면, 보이는 세계는 보는 자의 고정적 시점 앞에서 이미지의 질서를 드러내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하나의 원근법을 근거로 한 세계가 아니라 다점 원근법을 쓰고 있다. 일종의 원근법 비틀기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눈도, 사진기도 일점 원근법을 근거로 세상을 보고 있는데, 작가는 제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는 엉뚱한 일탈을 시도하고 있다. 복수의 시각으로 여러 곳을 본 경험을 한 공간 속에 재구성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의 시각 경험은 하나의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옮겨가면서 본다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주 빠르고 자동적이고 초점이 맞는 눈의 기능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잔상 위에 새로운 장면이 이어지면서 파노라마 시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다. 직전에 본 것이 시신경 속에 남아 있고 지각이 가능하다면, 그것 또한 지금 보고 있는 시점 속에 함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일종의 환시(幻視)라고나 할까.
작품들은 이런 의문 부호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탐색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미술'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망자를 위한 무덤 안의 컴컴한 벽에 그려진 그림 속에서 이집트 화가들은 제가 본 것을 부끄럼 없이 한 공간에 모두 그렸던 것이다. 얼굴의 옆모습을 그렸지만 눈은 정면에서 본 그대로를 그렸고, 상체와 팔 역시 정면의 모습이지만 아랫도리는 측면을 그렸다. 모든 그림을 사물의 경험적인 측면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시점을 택해서 그린 것이다. 이렇게 그려도 시비 건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수많은 이집트 미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드로잉 기법이니까 말이다. 이 다양한 시점을 통해서 구성된 미술을 일점 원근법에서 접근하면 이상하다. 이러한 다점 원근법은 현대 미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브라크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 또한 이러한 관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일까? 한 시점에서 보이는 것만을 그려야 하는 것이 옳다는 근거는 없다. 시점을 해체하고, 보는 관습을 해체하여 볼 대상들을 재구축하는 것도 제대로 보는 방법일 수 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안 보이는 것을 그린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입체파 화가들 또한 자신들의 그림이 사실적 묘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젊은 작가 역시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익숙함에 다시 딴죽을 걸고 나선다.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번 해보자.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만을 이용해서 세상을 보라. 세상이 얼마나 좁게 보이는지. 이번에는 왼쪽 눈을 뜨고 두 눈을 활용해서 세상을 바라보자. 세상이 또한 얼마나 넓게 보이는지. 이렇게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150도 정도의 시야이다. 우리 눈이 머리의 옆과 뒤에도 한두 개씩 더 있고 정수리에도 하나 정도 붙어 있었다면, 보기는 흉해도 세상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할 것 같은데, 아쉽다. 이 작가도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일점 원근법에 근거한 사진기만을 가지고 마치 잠자리 눈이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모자이크 세상을 만들고 있으니... ● 그는 앞뒤, 좌우, 위아래를 모두 볼 수 있는 360도의 완전한 원의 세계, 그 요지경을 꿈꾸고 있다. 그의 의도는 멋지게 성공했다. 둥근 원 속에, 360도 안에 잡힌 모든 세계가 대칭구조를 이루면서 동거에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삼각대 위에 사진기를 올려놓고 360도를 회전시키면서 20~30장 정도의 기초 이미지를 촬영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파노라마 촬영기법의 외연을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2D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얻어진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조합하고 합성을 했다. 이 과정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360도 파노라마 촬영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은 앵글과 사용 렌즈의 선택에 따라 충분한 양의 이미지가 필요하고, 장면의 변화에 따른 노출의 변화, 빛의 방향과 다양한 칵테일 광원에 대한 화이트 밸런스의 일치 문제 등 기술적 문제의 해결이 동시에 요구된다.
작가는 이러한 섬세한 기술적 요구를 보는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완벽한 기술로 해결을 한 후에 장난기 어리게 물어온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허구입니까?"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그도 망설인다. 물론 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존의 일점 원근법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방식에 의문을 던지면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여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만을 보여주려 할 뿐이다. 그러기에 이번 전시에서는 형태(form)와 주제를 모두 아우르려는 많은 욕심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현실 속의 여러 공간과 공간을 디지털 기법의 힘을 빌려 이어가면서, 여기서 파생되는 과장과 왜곡이 빚어내는 예기치 않은 환상적 공간이 주는 시각적 유희를 부수적으로 즐기는 것이다. 다만 이미 본 시점을 재생하여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사진 이미지가 과연 허구냐 사실이냐에 대한 스스로의 고민을 작가는 퍼즐 같은 자신의 '감추어진 주제'로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로써 영화의 서사구조처럼 시간의 경과 속에서 순차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멀티플 이미지처럼 여러 측면의 시각을 구조적 병치를 통해서 보여주는 표현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 주도양의 작업들은 데이비드 호크니 방식의 사진설치나 모자이크처럼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축 한다는 점에서 이념적 공통성이 있지만 표현 방법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가 작품을 통해서 제시한 방법은 해체된 현실을 하나의 공간 속에서 다면 원근법을 이용하여 통일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실과 허구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허구 형식을 빌려 작가의 예술적 진술을 말하듯, 현실 세계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하나의 가상공간을 설정하고 그가 본 시각적 체험을 그 공간 속에서 집적하여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기는 수많은 겹눈으로 된 잠자리의 눈이요, 파리, 메뚜기의 눈이다. ■ 최건수
Vol.20070421a | 주도양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