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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21_수요일_06:00pm
갤러리 도올 초대展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5 www.gallerydoll.com
모자 속에서 비둘기 꺼내기 ● 강연희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 뜬금없이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은 아기들이 즐겨하는 '까꿍놀이'였다. 이상하게도 아기들은 커튼 뒤나 문 뒤 같은 데 숨어 있다가 '까꿍' 하고 나타나는 놀이를 좋아한다. 자기가 숨기도 하고 어른들보고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몇 번을 반복해도 까르르 숨이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어한다. 마치 유전자에 미리 프로그래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아기들은 예외 없이 이 놀이를 좋아한다. 세상만사 특별히 신기할 것이 없어진 우리 어른들은 이 까꿍놀이가 실은 존재와 부재의 개념을 둘러싸고 우리 모두가 던졌던 생애 최초의 질문이었다는 것을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라졌던 엄마의 얼굴이 나타나는 순간 어린시절의 우리가 깨달았던 것은, 존재는 부재를 배경으로 해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었다.
사라짐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나타남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는 부재와 연결되어 있으며, 존재는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부재 속에서 (재)발견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이 '포르트-다(fort-da)' 놀이를 통해 이론화했듯이, 존재와 부재의 엇갈림에 대한 이 인식을 통해 우리는 세상 속에 한 명의 주체로 등장한다.
강연희의 작업에서 까꿍놀이가 연상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일 것이다. 캔버스를 현실과 격리된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 공간 속의 물리적 존재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프랭크 스텔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변형 캔버스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 속에서 형태나 구성의 문제는 단순히 모더니즘적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나 차용의 관점을 넘어 주체구성이라는 차원과 맞닿아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강연희의 작업은 순수한 추상적 형태를 다루고 있지만, 실은 그 속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놀이를 통해 아기가 경험하는 것 같은 순수한 발견의 기쁨이다.
그의 작업은 고도로 추상화된 모더니즘적 전통의 세계가 실은 아기의 블록놀이 같은 최초의 집짓기 혹은 최초의 세계구성의 영역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작가가 차용한 모더니즘의 전통은 이런 발견의 즐거움을 위해 도입된 '부재의 장치'이다. 현실과 무관한 듯 그 자신의 고유한 전통을 가진 추상적인 조형언어 속에서 사실은 그 세계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인간적 세계가 모자 속의 비둘기처럼 꺼내어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까꿍놀이를 하는 아기처럼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부재를 통해서 재발견된 존재의 기쁨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캔버스를 물리적 현실감을 가진 물체로 보여지게끔 옆면에 부피를 주고 경첩을 달거나 구멍을 내거나 서랍을 부착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일종의 퍼즐이나 블록 장난감의 원리가 도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블록을 쌓고 허무는 놀이 역시 까꿍놀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존재와 부재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운데가 뚫린 캔버스 위에는 그 구멍에 꼭 들어맞는 크기의 육면체가 놓여 있어서 자동적으로 손을 뻗어 구멍을 맞추어보고 싶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열고 닫는 서랍이 붙은 캔버스는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마법의 통로처럼 보인다. 아래에 계단이 달린 캔버스는 등장인물들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연극의 무대장치 같은 효과를 낳는다. 퍼즐조각 같은 형태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작업도 서 너 개의 공을 두 손으로 번갈아가며 받아내는 곡예사의 손재주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부드러운 파스텔조의 색채와, 책상 위에 얹어놓을 수 있을 만한, 크지 않은 사이즈가 이런 조형방식과 더불어 딱딱한 추상적 세계를 부드럽고 일상적인 세계와 맞닿게 만든다.
실제로 작품에 손을 대지 않더라도 관객은 이 속에서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신체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리듬은 정지해 있는 형태들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그는 또한 단일한 색채로 칠해진 기하학적 형태의 색면에 연필로 그림자를 그려 넣는 작업을 하는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적 전통의 평면지향성에 대한 일종의 코멘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계적인 기하학적 형태에 유기적이고 수공적인 노동의 흔적을 가미함으로써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세계를 추상적 세계와 연결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손의 흔적을 감추었다가 다시 한번 드러내는 이러한 교차작업에서 다시 한번 존재의 발견이란 개념을 읽어낼 수 있다. 존재의 발견이란 놀라운 사건이지만 사실 그렇게 거창하고 엄숙한 무엇도 아님을 강연희의 작업은 일상적이고 신체적인 리듬과 추상적이고 이론화된 영역을 연결시키면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해준다. 그의 작업 속에서, 존재의 발견은 주머니 속에서 사탕을 꺼내는 것처럼 작은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이 행위는 세계 전체를 만들어내는 힘을 갖는다. ■ 조선령
Vol.20070323b | 강연희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