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적인 그리드

강연희 회화展   2003_0402 ▶ 2003_0408

강연희_wonder_paintingⅣ_변형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15cm_2002

초대일시_2003_0402_수요일_05:3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신관 2층 Tel. 02_733_6469

강연희의 작업은 사각형의 캔버스 틀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이른바 '변형캔버스작업'이다. 그림의 표면은 평면임을 단호하게 드러내는 색면으로 이루어졌다. 색채를 머금은 캔버스의 피부는 인접한 색상들의 섬세한 뉘앙스를 정면과 측면에서 보여준다. 캔버스란 일종의 물감을 머금은 용기이기도 한데 박스형 캔버스의 몸 전체가 물감을 받아들인 형국이다. 정면이 중심이 되긴 하지만 그것은 늘상 측면과 한 쌍으로 다가온다. 측면이 정면 못지 않게 중요시되는 한편 그 둘의 상관관계가 조율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정면에서 은연중 배제되거나 폄하되었던 주변/측면이 그림의 결정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 육면체를 기본 구조로 해서(다만 보여지는 부분은 5면) 정면과 옆구리를 단색으로 착색하고 증식과 자리배치를 달리하면서 여러 정황성을 실험하는 것 같다. 사각형의 평면성과 색채와 붓질로 이루어진 회화, 최소한의 구조로 유지되고 있는 회화다. 반면 약간의 높이, 깊이를 지닌 체 벽으로부터 돌출되어 부착됨에 따라 그것은 저부조에 가까우며 바닥과 벽을 타고 연장되는 설치적 측면 역시 보여준다.

강연희_assembly shadow_변형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00cm_2003
강연희_wonder_paintingⅡ_변형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15cm_2002

무엇보다도 강연희는 모더니즘의 신화라고 그 정체를 밝힌 그리드grid를 다르게 변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도상인 그리드는 종교적. 역사적 주제로부터 해방을 초래했는데 무엇보다도 재현의 흔적과 함께 이야기의 수용을 거부하였다. 여기서 기하형태는 현대미술의 배타적인 시각성을 지키는 일종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그 그리드는 다양하게 해체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강연희에게도 이 사각형의 구조는 다양한 변주를 통해 모양을 바꾸고 그것이 흥미로운 유희, 놀이가 된다. 마치 아이들의 레고 게임이나 장난감 놀이를 연상시킨다. 다양하게 복제되는 그녀의 기하학은 기하학의 모서리에서 다시 살아나서 다른 삶을 사는 탈기하학적 기하학을 보여준다.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사각이란 단위, 모듈의 반복성을 보여주지만 보여주는 방식이 전형적인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여전히 눈에 호소하는 일루젼과 그림자, 벽면에 장식적으로 개입하는 선 등에서 회화적인 뉘앙스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중략..

강연희_wonder_paintingⅠ_변형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15cm_2002
강연희_shadow of the corner_변형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75×15×15cm_2003

강연희의 화면은 자율적인 평면으로 인지되면서도 은연중 서정성이 유인되거나 일루젼이 개입된다. 색면에는 그 물질적인 현존을 넘어선 모종의 정서도 들어있다. 사각형의 이중구조를 지닌 화면은 프레임과 가운데의 작은 사격형 화면에 색층을 지닌 색채의 계조가 밀려온다. 그 장면은 환영적이며 따라서 화면은 기묘한 이탈과 분리, 왜곡을 슬그머니 드리운다. 붓질의 방향과 차지한 면적에 따른 이 파장은 물결이나 그림자를 연상하면서 모종의 이야기가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단호하게 칠해진 색면을 입은 사각형의 박스는 표면과 옆, 깊이를 지닌 면이 다른 색으로 분리되어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것은 동일한 하나의 화면, 작품을 이루는 요소가 되면서도 동시에 은연중 그 통일성, 총체성에서 빠져나가 다른 것으로 존재하듯이 환영을 일으킨다. 그것은 중심, 중앙화면에서 벗어나 있다. 의도적인 분리를 자행한다. 그런가하면 화면의 정중앙은 사각형의 홈이 파져있어 부재하다. 결국 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그 부재를 확인시켜 줄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망막은 작품을 본다기 보다는 기묘하게 프레임만을 보거나 흰 벽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시선은 당혹스러워 한다. 눈 역시 부재에 빠진다. 그렇게 중앙에서 빠져 나온 화면, 작은 사각형은 다시 사각형의 상단 면에 올라가 부착되어 있거나 바닥 쪽을 향해 아래로 내려와 있거나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체 틈을 만들며 옆에 부착되어있다. 그 두 개의 화면은 한 쌍을 이루지만 온전한 원래의 형태로 머물지 못하고 항상 약간의 틈으로, 중심에서 이탈된 체로, 프레임을 이루는 사각형의 화면과는 다른 상황을 보여주며 분리, 탈각된다. 그 사이로 짙은 그림자, 음영이 드리워진다. 이렇게 생긴 음영, 그림자로 인해 전체적으로 그것은 그림에 유사하다. 그러니까 거리와 공간, 깊이와 평면 사이를 다 같이 드러낸다. 따라서 벽은 단순한 배경으로서 자족한다기보다 그림의 영역 안으로 그림자를 머금고 들어온다.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사각형의 온전한 화면, 단일한 시점 아래 종속된 화면이 아닌 두 개의 이질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동시에 프레임과 화면의 여러 상황과 관계를 제시한다. 외형적으로는 추상, 미니멀리즘에 가까우며 벽면에 배열되거나 공간에 병풍구조처럼 놓여지면서 설치적으로 가설되는 그 작업들은 완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생성중이다. 또 다른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는 중이다. 평면과 그리드, 색채와 색채의 만남, 형태와 색채의 관계, 형태들 간의 비례의 배열은 여전히 현대미술에서 핵심적인 문제이면서도 그 언저리 어디선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는 중인데 강연희의 작업 또한 바로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 박영택

Vol.20030405b | 강연희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