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ade: face-cade

한성필 사진展   2007_0308 ▶ 2007_0411

한성필_파타 모르가나 Fata Morgana_디지털 프린트_117×117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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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08_목요일_06:00pm

갤러리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12번지 Tel. 02_323_4155 www.zandari.com

파사드 프로젝트 ● 보수공사의 현장을 가리던 차단막이 거대한 화폭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에 차단막은 뚜렷한 실용적 목적을 갖고 오로지 '사물'의 세계에 속했다. 그것은 어지러운 공사 현장을 공공의 시선으로부터 가리려고 설치한 물건이다. 하지만 그 막 위에 이미지를 올려놓자 그 물질적 속성 위에 의미의 층위가 얹혀지면서, 그것은 이제 시각적 환영을 투사하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파사드는 사물이 아니라 미디어가 되어 거리를 걷는 대중과 소통을 하려 한다. 대형출력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일종의 공공미술이라고 할까? ● 가상의 파사드는 덧없는(ephemeral) 가면이다. 그것은 잠시 어떤 것의 부재를 보충하다가 공사가 끝나면 그것은 세계로부터 철거될 것이다. 사물의 세계만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로부터도. 막을 치우면 그 위의 이미지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퍼포먼스나 설치예술이 후에 자료로만 그 흔적을 남기듯이, 가상의 파사드는 사진으로만 영속성을 얻는다. 한성필은 가상의 덧없음을 미적으로 구제한다. 앗제가 사라져가는 파리의 낡은 구조물을 구원했다면, 그가 구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잠시 그것을 둘러싼 가면이다. 그는 껍데기의 피상성을 긍정한다.

한성필_저 너머I The Beyond I_디지털 프린트_85×70cm_2005

어떻게 보면 유형학적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스름 빛 속에 잠긴 영상에서는 기록의 분류학적 냉정함이 아니라 외려 풍경화와 같은 분위기의 아득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복제의 피상성은 묘하게도 원본의 아우라와 결합한다. 그 분위기는 해뜰 녘 혹은 해질 녘의 진짜 빛과 인공조명이라는 가짜 빛을 의도적으로 섞어놓은 데서 나온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른바 '미디어 파사드'다. 하지만 거기에 사용된 것은 대형 LED화면이나 그 밖에 스스로 빛을 내는 뉴미디어가 아니라, 회화와 사진이라는 고색창연한 올드 미디어다. 사진과 회화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기에 그의 파사드는 자연광과 인공광이 뒤섞인 어스름 속에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

한성필_저 너머 II The Beyond II_디지털 프린트_85×70cm_2005

물론 사진의 기록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을 구제하는 것이 그의 주요한 관심사는 아니다. 그의 눈은 다른 데에 가 있다. 한성필은 복제를 복제함으로써 '재현'을 주제화하려 한다. 복제의 복제는 실물과 가상의 차이를 흐려 버린다. 각각 현실과 가상의 차이도 인화지 위에서는 똑같은 가상의 지위를 갖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몇몇 작품에서는 현실의 건물과 가상의 이미지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굳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작품 속의 가상은 그 뒤에 가려진 실물 못지 않게 분위기를 갖고 있다. 진짜 빛과 가짜 빛이 경계선 없이 뒤섞이듯이, 그의 화면에서 가상과 현실은 경계선 없이 어지럽게 뒤엉킨다.

한성필_야누스 Janus_디지털 프린트_117×136cm_2006

가상의 파사드는 존재론적으로 묘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그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 들어설 것의 그림이기도 하다. 그것은 앞서 존재했던 원본의 복제일 뿐 아니라 동시에 앞으로 존재하게 될 건물의 원형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그것은 과거의 복제이자 미래의 기획이다. 앞과 뒤를 동시에 보는 야누스처럼, 그것은 과거를 돌이켜 재현을 하고 미래를 향하여 현시를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의미의 놀이가 발생한다. 사진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앞으로 실현해야 할 이미지를 탐색한다. 뷰파인더는 사진가가 미래를 향해 이미지들을 던지는 실험적 탐색의 도구다. 미래의 기획이라는 면에서 가상의 파사드 역시 일종의 뷰파인더다. 한성필은 그 건축의 뷰파인더를 다시 사진의 뷰파인더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촬영'을 주제화한다. 그는 과거를 향해 복제를 복제할 뿐 아니라 동시에 미래를 향해 기획을 기획하고 있다.

한성필_빛의 제국 The Dominion of Light_디지털 프린트_147×117cm_2006

그가 찍은 파사드 중에는 복제나 기획이 아닌 것도 있다. 가령 트롱프뢰이유 (trompe-leoil)를 이용한 것이 그것이다. 이때 가상의 파사드는 이미 있었던 것의 부재를 대리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있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거기에 있지 않을 완전히 새로운 환타지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물론 거리를 지나는 현실의 관찰자에게 이 환영의 가상성은 비교적 뚜렷하게 의식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시 사진으로 복제하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져 사진 속의 이미지는 일종의 버추얼 리얼리티가 된다.

한성필_빛의 제국 The Dominion of Light_디지털 프린_117×147cm_2006

가상의 파사드는 대체 왜 나타난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다다와 팝아트, 공공예술과 설치예술은 차단막이라는 일상의 사물이 대중을 위한 공공의 설치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건물의 벽에서 난데없이 허구의 영상을 보는 체험은 이미 건물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 위로 영상의 홍수가 흐르는 이 시대의 일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오늘날은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흐려지고,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고, 시간의 선형성이 무너져 재현이 동시에 기획이 되는 시대가 아닌가.

한성필_레이어 Layers_디지털 프린트_117×147cm_2006

이처럼 최근에 거리에 나타난 가상의 파사드들 속에는 이 시대의 기술적 조건, 문화적 기억, 세계-인간 존재의 변화가 은밀히 집약되어 있다. 한성필이 파사드에 주목한 것은 바로 그 냄새를 맡았기 때문일 게다. '파사드 프로젝트'는 내게 벤야민의 '파사주(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30년대에 벤야민이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20세기를 읽은 것처럼 그의 「파사드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21세기가 꾸는 꿈을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 ■ 진중권

Vol.20070315d | 한성필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