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60212c | 서국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307_수요일_06:00pm
2007 갤러리 라메르 초대전
갤러리 라메르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02_730_5454 www.gallerylamer.com
잘 달인 국화차 이다. ● 꽃에서 차(茶)를 예감한다. 꽃의 빛깔은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을축년(1805) 겨울에 아암 선사에게 보낸「걸명소(乞茗疏)」의 차의 빛깔과 사뭇 다르다. 연두와 주황 빛깔 꽃들은 '맑은 하늘에 일어나는 흰 구름 같은 아침 햇살의 차의 빛깔과 다르고, 밝은 달이 푸른 시내에 잔잔히 부서지는 듯한 낮잠에서 일어나 달이는 차의 그것'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돌화롯불에 활화를 피워 손수 달이는 정성과 어린 차순에 그윽한 향기만은 꽃과 차가 닮았다.
연연중(然然中)은 '자연스럽게 그러하다고 여기는 상태'를 뜻한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의 상태에 거문고도 피리도 아닌 솔바람소리.' 이수광(芝峰 李睟光 1563~1628)의『차마시기(飮茶)』의 한 소절을 떠올린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 비운 듯 채우고 채운 듯 비웠다. 이쪽과 저쪽 모두와 두루 연을 맺은 꽃의 이름이 바로 그러하다. '연연중' 이름마저 차와 같은 꽃이다.
서국진(徐菊眞)은 꽃을 좋아한다. 국화를 품은 이름이다. 작가와 꽃은 이렇게 만났다. 만나자마자 마음이 통했다. 한 해살이 꽃이든, 여린 풀꽃이 든, 꽃이 좋았다. 꽃가게에서 신기한 꽃구경에 시간을 잃어버렸다. 책에 있는 진귀한 꽃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꽃 책이 산더미로 쌓이자 그만두기로 했다. 쉽지 않았다. 낯선 여행지에서 수도 없이 꽃을 드로잉 했다. 행복했다. 그리고 싶은 꽃이 있었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계속 도전할 것이기에 괜찮다. 비에 젖은 꽃에 관심이 생겼다. 꼭 그려보고 싶다. 오늘을 기점으로 앞도 뒤도 온통 꽃이다. 꽃 이야기를 들으며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에서 만났던 조선 지식인 몇 몇을 떠올렸다. 박제가(楚亭 朴齊家 1750~1805)의『백화보서(百花譜序)』에 등장하는 김덕형(金德亨)은 꽃에 미쳐 아침부터 저녁까지 꽃밭 아래서 1년 내내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렸으며, 매화시광(梅花詩狂)으로 불린 김석손(金祏孫)은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나무 수 십 그루 심어 놓고 신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시에 능한 사람을 청해 매화시를 받고 이를 비단과 옥으로 장식하기를 즐겼으며, 미원(薇原) 심씨(沈氏)는 국화에 미쳐 혼자 50 여 종에 달하는 국화를 재배했고,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檀園 金弘道 1974~?)는 그림값으로 받은 3천 냥으로 매화를 샀다,고 한다. 이 모두 꽃에 대한 지극함의 기록이다. 사랑도 깊어지면 병이라고 했다. 이들의 꽃 사랑은 병에 가까운 '벽(癖)'이었다.
꽃을 사랑하되 그 '잃음과 얻음까지 염려하지 않는다.' 서국진 꽃의 담담한 차 맛은 여기에 연원을 둔다. 화면에 꽃이 활짝 피었다. 만개한 꽃이 국화인지 튤립인지 이름을 캐묻고 싶지 않다. 모두 이름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차일을 하듯 작업을 한다. 차를 갈고, 찻물을 끓이는 차일은 매일 반복되더라도 어제의 빛깔과 오늘의 향기가 같을 수 없다. 긴장과 설렘이 작업을 따라다닌다. 알맞게 긴장이 고조되면 적당히 설렘을 띠운다. 비로소 국화차 같은 국화꽃이 준비된다. 이 세상, 단 하나의, 국화꽃이다. 봄부터 그렇게 소쩍새를 울어 예게 한 기다림의 국화꽃도 아니고,『국화마을 어린 왕자, 모모』를 떠나게 한 우울한 국화꽃과도 틀리고,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을 홀로 피어『해동가요』에서처럼 오상고절(傲霜高節)을 칭송받은 국화꽃과도 다르고, 달의 요정 세일러 문의 요술봉 끝에 앉아 신묘함을 자랑하는 현란한 국화꽃과도 같지 않다. 빛깔과 향기를 음미한다. 기다림을 앞지른 만남, 우울함을 가로막은 들뜸, 고매함에 수다를 붙이는 친근함, 현란함을 무색케 하는 무심함을 음미한다. 편안히, 그리고 천천히. ■ 공주형
Vol.20070307d | 서국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