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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103_수요일_05:30pm
갤러리 도스 기획 공모전
갤러리 도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55-1번지 2층 Tel. 02_735_4678 www.gallerydos.com
일상의 바람 저 너머에 ● 고요한 밤, 시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할 무렵, 무언가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관찰되어지고 있는 묘한 기운이 스쳐지나가고, 내 방의 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문득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 된 사물들. 무심하게 지내왔던 나의 공간 속, 틈도 없이 자리 잡은 사물들에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묘한 에너지가 품어져 나온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그 사물들에 의해 점차 지배당하기 시작하고, 그 공간 속 보이지 않는 힘에 눌려 이기려하면 할수록 더욱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물의 뒷면 아니, 사물의 이면에 내재된 힘이었다. 이 이면은 생각지 못한 공간이었으며, 음의 공간이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때 우리에게 보여 지는 공간이 아닌, 닫혀졌을 때의 어둠의 공간이 나에게는 큰 공간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비어 있으면서도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무한하며,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사물의 존재와 하나가 된다. 형태를 갖지 않아서 자유롭고, 굳어있지 않고 늘 흐르므로 변화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보이지 않는 기운이 나에게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안과 겉을 구분하는 것, 처음과 끝, 탄생과 죽은 같은 경계가 사라져버리고 없음이 있음으로 대체된다. ● 우리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공간들과 만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풍겨져오는 어떤 기(氣)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이면의 세계. 우리와 늘 함께 공생하나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물의 뒷면. 그 경계선을 유유히 넘나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상을 넘어서는 바람뿐이리라. 바람은 조용하지만 살아 있으며, 멈추어 있지만 역동적인 생명으로 존재한다. 음과 양의 기운을 머금고 멈추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여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바람은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여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이게 하며, 바람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어 현재와 미래로 운반된다. 지금의 나는 과거로부터 옮겨진 자연의 일부이다. ■ 이경민
갤러리 도스 기획 공모 "공감각 - 共感覺" ●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은 각각 한 가지 특징을 통해 단일 감각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색채의 꽃이 달콤한 향기와 함께 기억되고 율동감 있는 곡선이 언젠가 들어본 선율을 연상시키듯, 복수(複數)의 요소들이 뒤섞이고 이렇게 혼재된 요소들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을 동시에, 그리고 복합적으로 자극한다. 시각예술에 있어 공감각은 보이는 것 안에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적 요소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시각적 표현만으로 여러 가지의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고 충족시킨다는 일차적인 해석 외에도 평면과 입체, 시간성과 공간성의 조화 혹은 이질적 재료들의 결합과 같은 형식적 측면에서의 공감각적 접근이 가능하다. 갤러리 도스에서는 '공감각-共感覺' 이라는 주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표현을 통해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감각의 자극을 시도하는 여섯 명의 작가를 선정하였다. 그 중 첫 번째 전시를 여는 이경민의 사진작업은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의 구도 속에 흐릿한 사물의 형상을 배치하고 있다. 희뿌연 화면에 마치 blur 효과를 준 듯 흐릿한 유리병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초점이 어긋난 듯이 보이지만 작가는 눈에 보이는 사물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기운(氣, energy)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카메라로 담아 정적인 화면에 조용한 파장을 만들어 낸다.
Beyond the usual Wind ● 사진은 대상의 사실적 재현이라는 특정역할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도구임이 틀림없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잡아내는 카메라의 마술 같은 기능은 회화를 사실적 재현의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하면서 회화의 표현영역을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사진의 예술성에 대한 논란 즉, '사진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보들레르는 사진은 너무 쉽다(too easy), 너무 직접적이다(too direct), 너무 산업적이다(too industrial)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못 박은 바 있다. 그러나 뒤샹의 작품 「Rrose Selavy」 이후 사진의 예술성에 도전해 온 작가들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대 예술에 있어서 카메라는 붓과 파레트와 같은 회화적 표현의 도구가 된 지 오래다. 이경민은 카메라의 눈을 빌어 눈으로 보지 못했던 형이상학적 대상을 끌어낸다. 그를 통해 회화적인 표현을 함과 동시에 보이는 것을 담는 카메라의 표현 영역에 확장을 시도한다.
불교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다. 색(色)이란 물질적인 대상을 뜻하는 것으로 실체가 없는 표면의 것, 껍데기에 불과한 가시적 세계를 말하며 색(色)은 곧 비어있음(空)과 같기 때문에 색에 집착하지 말라고 이른다. 한편 비어있는 것(空)이야말로 진정한 실체(色)를 갖는다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 공(空)은 허무함이나 없음(無)을 뜻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은 일체의 모든 존재를 인정하는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 움직임 곧, 기(氣)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실체적인 것을 말한다. 이경민의 작업은 바로 이 공(空)의 개념에 맞닿아 있으며 비어있음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에너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빛과 색이 배제 된 색감과 정적인 구도의 화면은 얼핏 보기에는 더없이 조용하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마치 아침을 향해 달리고 있는 새벽의 고요처럼 숨은 에너지를 품고 있다. 작가는 바람의 흐름이 남긴 자취를 쫓아, 고요하지만 역동적인 공(空)의 개념을 포착하고 이를 화면에 담아낸다.
이경민의 사진은 마치 안개 낀 장면을 옮겨 놓은 듯 흐릿하다. 보이는 것은 유리병의 실루엣이지만 표면과 경계가 흐릿해지고 명암이 가려진 이들은 흡사 그림자 같기도 하고 혹은 희미한 환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적 사물로 인식되어 온 것이 낯설어 보이는 것은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다른 시각 때문일 것이다. 작가 이경민은 늘 부는 바람, 일상적 바람 그 너머의 세계를 본다. 여기에서 바람은 기(氣)의 흐름에 대한 일종의 단서로 이해된다. 그에게 바람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있음과 없음, 표면과 이면의 경계를 유유히 넘나드는 존재로,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면의 공간을 알려주는 열쇠이다. 공기가 흐르는 것을 바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공기가 흘러가서 사라지는,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를 보며 그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흐름을 느낀다. 이경민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늘 보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세계와 그곳의 에너지이다. ■ 오정아
Vol.20070103a | 이경민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