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50410c | 차기율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011_수요일_06: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_관훈갤러리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신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강돌은 하나의 무기물이지만 우리가 그것의 여정을 회상한다면, 이는 시공간을 초월한 긴 여행으로 이어진다."(차기율) ● 차기율ㆍ화해(和諧) 그리고 '창조되는 자연' ● 순환의 여행/방주(方舟)와 강목(綱目)사이 ● 화해(和諧)와 순환 자연은 끈임없이 변화하며 동시에 변화하는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 생명의 영혼과 힘을 지닌 자연은 사물을 생성하며, 나아가 생멸과 순환의 법칙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하나의 사물은 치유와 자생력을 가지며 혹은 새로운 생명의 본원으로 다시 이어진다. 세계의 모든 사물은 시간 속에서 존재하며, 인간 역시 그러하다. ● 차기율은 '예술의 본성이 자연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자연의 생명력과 순환원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읽어 나간다. 도가적 세계가 감지되는 그의 초월적 세계관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존재가치를 '변화-순환하는 자연의 정체적 이치' 안에서 해석, 이를 예술영역으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순환적 시간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그의 작업은 자연과 그에 대한 문명의 이기와 폭력에 주목하며, 예술이라는 인간의 제도적 활동이 갖는 가치를 '자연과 문명의 화해(和諧)를 이끌어 내는 것'에 두고 있다. 중국의 현대미학자 장파(張法)는 그의 저서『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에서 화해개념의 특징을 "모든 존재를 포용하는 화해관", "시간을 공간화한 화해관" 그리고 "대립하지만 서로 겨루지 않는 화해관"으로 정리하였다. 이는 상이한 것들의 조화를 뜻할 뿐만 아니라 그 상이한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자연과 문명의 상생관계를 제시하는 차기율작업의 내용적 근간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적합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문명과 비문명의 화해(和諧)가 수세에 몰리는 현대사회의 보편적 문제 앞에서 작가 차기율이 취하는 행동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는 작업「순환의 여행」이 자연 본연의 영혼성을 찾아가는 여정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정상적이고 희망적'일 것이라 대답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차기율은 자연의 사물을 채취, 그 원형을 최소한으로 가공/접근하여 자의적 언어로 해석/전달하는 정제된 수순을 밟고 있다. 그 과정은 현실적으로 긴 시간을 요하는 것으로 작업의 합목적적 지점에 이르기까지 '버겁고 지리한' 노동을 수반한다. 자연주의적 세계관이 지닌 관조와 관념의 위상은 작가가 수행하는 노동의 의미심장함 앞에서 '하나의 미지적 단상'에 불과하다. 비평가 고충환은 차기율의 작업노동이 갖는 의미에 관해 "자연으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부자연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체험적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기술한 바 있다. 즉, 문명의 주체인 인간이 자연에 동화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그 가능성은 '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예술현실'의 필연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자연의 본성을 보존하며, 변화와 순환의 원리 안에서 생멸하는 삶의 존재의미를 찾아가려는 생태론적 작가의지가 "실존주의적 체험"을 통해 순화(純化)되어 예술현장에 새롭게 거듭나는 창조적 현실로 이어진다.
'창조되는 자연'ㆍ신개념의 풍경 ● 인간은 '창조'를 통해 현실의 확장을 시도하고, '창조적 에너지'에 의해 삶에 대한 자주성과 독특성을 표현해 낸다. '사고와 생산의 새로움'을 지시하는 창조의 범위는 언 듯 규정짖기 어려운 문제로 여겨질 수 있으나 크게 세 가지의 다른 성질을 포괄한다. '변화 그 자체와 존재의 지속과 보존'이 그것이며, 새로움이 갖는 불특정한 정의는 인간의 분명한 시각과 제시를 통해 창조개념의 다양성으로 전이된다. ● 차기율의 작업이 의미하는 창조적 현실은 '자연과 문명의 내용적 화해(和諧)'이다. 문명과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이질적 요소들은 하나의 공간에 융화된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는 자연풍경의 무작위적 재현이나 인간환경의 자연친화적 구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낯선 상황이다. 상호관계에서 사물들은 그 시공간적 기원과 본성을 적당히 혹은 강하게 유보하며 전체로 아우러진 새로운 현상을 이룬다. ● 전시공간의 바닥은 물색 테잎의 둥근 원들이 정갈하게 그려져 있다. 수면의 기하학적 파동과 정적 울림이 연상되는 중앙과 주변에는 작가가 채집한 강돌들이 놓여있다. 부드럽게 마모된 이들의 집합은 미지의 작은 섬들을 보는 듯 우리를 현실초월적, 공감각적 상태로 유도한다. 만약 어느 관찰자가 바닥 면에 설치된 돌들의 주위를 거닐며 작업의 미적 이해에 대한 노력을 기꺼이 감수한다면, 그는 마치 알 수 없는 '관념의 수면 위'를 부유하는 자아의 내적 현실를 경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전시공간의 천장에는 바닥 면과 대조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포도나무-구조물이 매달려 섬의 중심을 향하고 있다. 하나의 나뭇가지는 얇은 판형의 검은 돌을 뚫고 지나가며 다른 가지들과 뒤엉켜 덩굴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자연적 성질이 지닌 유기적 굴곡과 꺾임으로 인해 역동적으로 보여 지고, 돌과의 조합과 덩굴의 복잡한 규모로 말미암아 '힘의 절대적 긴장'을 산출하기에 충분하다. 나무의 외관을 최소한 유지하는 이 거대-덩굴은 그 물성에 있어 분명 나무이지만, 작가에겐 자연을 흐르는 강물을 암시하며, 생명의 연속성을 상징한다. 결과적으로, 그가 자신과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삶의 현실로부터 빗겨간 관념의 표면과 자연 속에 내재된 강한 생명성이 하나로 수용된 '새로운 개념의 설치적 풍경'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 자연의 생리가 지닌 생명의 본성을 가시화하는 작가의지는 드로잉작업이 지닌 표현어법을 통해 더욱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전통회화의 사군자를 문명의 과욕에 의해 침해된 현대사회의 단상으로 가정하고 있다. 차기율의 사군자는 형이상학적 정신의 함축성을 발산하는 우아한 형상이기 보다 황무지에 자생하는 야생화와 같은 '기형적 몸체'를 지닌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군자의 뿌리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짓 그 자체이며, 자연이 지닌 원시적 생명성은 문명의 어떤 것과 대립할 수 있으나 결코 배척하지 않음을 작가는 인위적 표현을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작업「순환의 여행/ 방주(方舟)와 강목(綱目)사이」에서... ● 차기율은 자연과 제도의 모든 존재가치를 자연적 원리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 본 받아야할 '관념적 대상'이기 전에, 인간은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멸하는 순환원리와 문명과 자연의 화해관계를 창조적 영역 안으로 다시 가져온다. 그것은 분명 자의적 해석에 의한 허구적 존재이다. 그러나 세계를 지지하는 생명적 에너지의 근원이 자연에 있음을 피력하는 작가의 의지를 환기한다면, 자연은 예술이라는 인공적 환경으로 회귀하여 '인간의 현재적 삶과 상생하는 시점'에 위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작업에 내재된 작가적 견해는 시각적 현상을 넘어 생명의 근원을 엮어낸 인문학적 경로와 접하고 있다. '순환의 여행'과 더불어 그가 작업의 전체주제에 부가하는 '방주(方舟)와 강목(綱目)사이'란 '노아의 방주'와 '본초강목'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명의 존속과 생물의 진화관계를 은유한다. 이는 그가 작업공간에 표현하는 '자연과 문명의 내용적 화해(和諧)'가 시공간을 포괄하는 문화인류학적, 자연분류학적 보편개념 안에서 논의되어 질 수 있는 최소의 가능성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 자연과 인간, 예술과 창조 그리고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변화와 생성, 순환과 화해과정을 통해 수용하는 소통의 문제는 '문명적 일상'을 이끄는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 자연은 나를 낳은 어머니이다. 자연은 나 자신이기도 하며, 내 몸속에 흐르는 피는 자연을 흐르는 강과도 같다."(차기율) ■ 김숙경
Vol.20061008a | 차기율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