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5_0410_일요일_05:00pm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시 남동구 문화회관길 80번지 Tel. 032_427_8401
순환의 오디세이 ● 현대미술의 기획은 세계로부터 의미의 도출에 실패한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꾸며내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들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인간정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지각하는 근대적 사고에 의한 인간과 세계 사이에 이루어진 관계 맺음의 실패에 대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이 자유에로의 의지를 꿈꾸었든 근원적 존재에 대한 탐구를 하였든 여전히 과학적 이성이라는 근대적 사고 속의 인간정신을 그 중심에 두는 기획을 버리지 못한 부적합성으로 인해 실제적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차기율의 사유와 실천이 보여주는 생성적 위상공간은 인간중심적 과학이성주의에 대한 경계지움임과 동시에 세계중심의 전체적 자연주의에로의 전회라 할 수 있다. 신을 대체한 주관의 자유의지를 추구한 추상형식주의와 근원적 존재의 탐구에 매진하는 추상표현주의의 정신성에 대한 회의를 통해 제시되는 방법론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현대미술의 시작부터 이미 그 속에 내포하고 있던 또 다른 혼란의 도착일지라도 기왕의 방법론에서 소외되었거나 탐구되지 않았던 새로운 우주관을 보여주려는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차기율의 미술에서 이성이나 도덕 혹은 미학적 고찰 따위는 주도적 역할을 잃은 채 부분적 구성요소로만 작동한다. 왜냐하면 차기율의 기획은 그 자체가 바로 현대미술이 일구어온 인간중심주의적 구성을 해체하려는 또 하나의 현대 미술적 기획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텍스트인 물은 기왕의 모든 논의와 생명의 순환을 조율하는 원본 질료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섬처럼 떠있는 모든 세계 구성의 흔적들은 무한순환의 본원 세계 속에서 상태의 차이만이 있는 대등한 가치의 존재들이다. 이로부터 차기율의 작업은 자유에의 의지나 근원 존재에 대한 탐구의 문제를 넘어 '본래'로 나아간다. 인간과 세계의 미래에 대한 전언인 자신의 작업 근거로 자기 자신을 제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술은 철학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문제로부터 가능한 한 멀어지려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보다 덜 자기의식적이려는 시도는 보다 더 고차적인 자기의식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미술적 철학이나 철학적 미술이라는 상태가 아니라 그러한 관계 맺음의 사태를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차기율의 미술은 멈-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디세이-춤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란 자신의 역사적 상황을 넘어서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차기율 역시 부조리와 불안을 매개로 현대미술을 넘어 그 너머에 서는 영원한 순환의 자리바꿈을 꿈꾸고 있다. 세계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현대 미술을 그저 방치할 심산이 아니라면 무언가 새로운 존재적 탐구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획에 불과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 박황재형
Vol.20050410c | 차기율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