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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29_금요일_06:00pm_롯데아트갤러리 에비뉴얼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경기문화재단(신진예술가지원)
롯데아트갤러리 에비뉴얼 / 2006_0929 ▶ 2006_1011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130번지 롯데 명품관 에비뉴얼 9층 Tel. 02_726_4428
롯데아트갤러리 / 2006_1013 ▶ 2006_1027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784번지 롯데백화점 일산점 B1 Tel. 031_909_2688
구본아의 수묵 실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폐허를 연상시키는 벽의 형상은 작가가 즐겨 차용하고 있는 조형의 얼개이다. 우뚝 선 견고하고 완강한 벽은 허물어지고 무너져 세월의 축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흔적이자 풍상의 기록이다. 문명을 상징하는 이러한 구조물들은 시간이라는 자연에 의하여 다듬어지고 순치되어 마침내 자취만을 남기게 된다. 결국 만들고 거두어들이는 인공과 자연의 끝없는 순환인 셈이다. 모나고 거칠며 완고한 인공의 형상들은 시간의 세례를 거쳐 예각의 모서리를 둔각의 너그러움으로 다듬고, 자신의 몸을 허물어 스스로 틈새를 확보함으로써 자연의 일부분으로 동화되게 된다. 부서진 인공이 흔적들 속에는 모두 자연이 아로새겨져 있다. 결국 인공의 작위 역시 자연의 일부로 수렴됨으로써 이들은 하나가 된다. 이름 모를 잡초는 이러한 모든 순환과 수렴의 필연적인 과정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무심한 듯 말이 없다. 결코 강제하거나 강요하지 않지만 한없는 시간의 축적이라는 기다림을 통하여 결국 모든 것을 보듬어 안게 되는 자연의 속성은 대립과 충돌이 아니라 조화와 포용에 있는 셈이다. ● 벽, 혹은 파편의 흔적들에 아로새겨진 나비와 풀잎들은 흥미로운 것이다. 이들은 일정한 장식적 미감을 통하여 이른바 보는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는 아마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는 부호와도 같은 것이라 이해된다.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일체를 이루는 이러한 사물들은 작가가 바라보는 문명과 자연의 관계, 혹은 궁극적인 모양이라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운 나비나 풀잎 같은 자연물들이 완강하고 우뚝한 인공의 조형물에 침투되고 융합되어 전혀 다른 형상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특정한 메시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구축해내는 역설적인 변증의 공식이다. 작가가 찾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펼치고 거둬들임이라는 각기 다른 공능을 지닌 인공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사색과 사유라 할 것이다. ■ 김상철
'아무 의심도 없이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사고는 사물이라는 존재를 너무 과소평가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짓다-살다-생각하다」『Essais et conferences 평론과 강연』Gallimard,1958) ● 나는 문명속에서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풍경과,그속에서 함께 변화해 가는 인간이 남긴 흔적과 남겨진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다. ● 나비가 날개를 파닥이는 곳에선 한 조각 낙원이 탄생한다. 근심 걱정 없는 즐거운 삶의 욕망이 탄생한다. (...) 나비는 가장 깊은 본성에서부터 격동의 허공이다. 현란한 색채의 허공. 활짝 날개를 편 허공. 무의미한 번호와 약어, 상상력 결핍과 침묵에 저항하여 나비는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나비는 우리에게 모든 인간의 영혼은 자신이 가진 독창성을 활짝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되풀이하여 상기시킨다. (...) (마리온 퀴스텐마허, 『영혼의 정원』) ● 폐허에는 으레 세월의 더께가 두텁게 내려앉아 있기 마련이다.무너지고 부서져서 조각나 있다든가 하는, 서글픈 풍경을 마주치면 우리는 황량한 폐허가 주는 무상감에 젖겠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질서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모습이다.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여서 구속, 형식, 틀,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이 또다시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낸다. ● 석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의 색조와 절묘한 구도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여명을 걷어내고 대낮을 뜨겁게 태우다가 마침내 목숨이 다하여 저 너머로 사라지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의 섭리를 자신과 겹쳐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차가운 강철조차 붉게 녹을 피우고 있을 때에는 아름답다. 고산의 묵은 등걸이 아름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세월을 안고 스러져가는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폐허는 철저하게 풍경이다. (어세겸, 『폐허 미학』) ■ 구본아
Vol.20060929b | 구본아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