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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06_수요일_06:00pm
갤러리 도스 기획
갤러리 도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55-1번지 2층 Tel. 02_735_4678
'검은 개'가 '별과 함께' 할 때... ● 희끄무레한 잿빛의 한 사람, 그리고 검은 개. 무채색으로 가득한 이 형상 속에는 놀랍도록 다채로운 상념이 담겨 있다. 어린 아이의 무구함이 묻어나고, 성을 구분 할 수 없는 인간의 조형. 이는 '나' 또는 순수한 '인간' 자체의 모습이며, 그 옆에 애처롭게 동행하는 검은 개는 '우울' 의 표상이다. '검은 개'는 본래 윈스턴 처칠이 자신의 우울증을 지칭하던 것에서 연유한다. 그 외에 멜랑콜리아 (Melancholia) 또는 depression 등 이를 뜻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있지만, 'Black Dog'은 은유적 별칭에서 이러한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전문적 명칭이 되었다. ● 이유미 작가는 줄곧 인간의 심리와 내면상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검은 개-별과 함께'라는 테마로 우울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고독과 우울에 대한 그녀의 해석은 어두움에만 기대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마냥 밝음도 아닌, 모호한 이중성을 전제로 한다. 특히, 이번 전시의 화두인 '검은 개'는 우울이 내포한 모호함으로 이중적 해석의 잣대를 가늠케 한다. 개라는 동물은 우리 인간에게 인류학적인 친근성과 애정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골목에서 맞닥뜨리는 떠돌이 검은 개는 두려움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수반하는, 껄끄러운 심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잘 꾸며진 애완견과는 달리 이곳 저곳을 떠도는 깨끗하지 못한, 그래서 더욱 측은지심과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존재, 이것이 작가가 포착한 '검은 개' 즉 '우울'의 한 단면이다. 아울러 '인간'과 '검은 개' 그리고 '별'들 의 각 형상은 감정의 파편으로만 정의하기에는 심란한 어두운 심리를 지니며 살아가는 '인간'의 소통과정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 우울의 개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역사적으로 되짚어 보자면,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서부터 멜랑콜리아 (melancholia-μελανχολια) 라는 단어가 검은 (melan-) 담즙 (-cholia) 이 나오는 현상에 의한 정신적 불안정함을 지칭하는 의학 용어로 히포크라테스 문서에 쓰였었다고 한다. 또한 '어두운 근심'을 지칭하기도 했다. 17세기까지 우울증은 감기 정도의 경미한 질환으로 치부되었고, 한때, 치료법으로 갈아 만든 루비가 복용되었다고도 한다. 극한의 경계에서 인간을 죽음으로 이끌기도 하며, 이제 현대인에게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흔한 증상. 앞으로 수십 년 후, 인간에게 치명적인 3대 중병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우울증을 지상 과제로 삼을만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인간이 지닌 '어두운 면모' (dark side) 는 인간의 삶에 내재된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임을 보여 준다. 또한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의 강도와 수위가 적절히 조절만 된다면 한 개인에게 제공되는 자아 성찰의 기회와 삶의 위안도 가능하다는 점을 함께 말하고 있다. ● 가끔씩 나타나는 잠을 이룰 수 없게 하는 쓸모 없는 망상의 파편,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그리고 갑작스레 나를 일깨우는 고독, 이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하는 이 정신적 질병은 인간미 물씬 나는 'Black Dog' 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 의학적으로 '우울증'의 증상은 유전적일 수도 있으며, 외부의 영향인자 없이 자발적인 신경호르몬의 자극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들은 조용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고독감을 느끼며 이 상태가 지속되거나 길어질 때, 또는 주변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이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접하게 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전형적 맥락에서, '우울'의 모습을 하나의 스냅 사진으로 촬영했다 가정해 보자. 큰 의구심 없이, '어두운 밤에', '홀로', '외로이'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들에서 표현된 '인간', '검은 개' 그리고 '불면증'과 '별'이 있는 '어두운 밤'은 무채색과 무표정으로 이루어진 극도의 중립 상태이며, 이 중립과 중성적 은유법은 '우울'의 현상에 진입한 완벽한 무대를 제공해 준다.
한편, 이 작업들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인간이 지닌 '어두운 면모' 에 대한 연구와 재해석 중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조연은 깜깜한 밤에 떠오른 '별'들이다. 두려운 심정으로 한밤에 길을 찾는 나그네에게 희망의 좌표가 되는 북극성처럼, '검은 개 = 우울' 역시 '별 = 희망'과 함께 긍정적 삶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의미의 매개체인 셈이다. 이 별들을 통하여 '검은 개'에 대한 긍정성과 모호한 이중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또한 작가의 방법론이며, 시큼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레몬 같은 삶의 자극적 전환점을 표현해 주고 있다. ● '그의 가슴속에 별이 되어' 와 '그와 함께 가기' 에서는,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따라다니는 '검은 개'의 모습이 사랑으로 감싸진, '나' 의 동반자로서 그려져 있다. 어두운 밤을 헤쳐가는 희망적인 동반 주체로 형상화된 것이다. 또한 빛나는 별들을 배경으로 '홀로' 혹은 '검은 개'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 담겨진 무채색, 무표정의 형상은 감정과 시간을 초월한 삶의 대한 긍정적 태도와 해학을 총체적으로 보여 준다. 세상살이를 하며 동네 골목길에서 '검은 개'를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를 통해 마음 속에 있던 '검은 개'를 떠올리며, 그것이 지닌 부정과 긍정의 면모를 다시 한번 되짚게 될 것이다. ● 더욱이 '잠이 들고 싶다', '불면증' 등에서는, 잠 못 이루는 밤의 괴로움을 넘어선 인간의 실존, 즉 텅 빈 밤을 골똘히 주시하는 멜랑콜리의 극치, 그래서 자포자기한 혹은 명상 아닌 명상의 시간을 보내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불면증과 이젠 친구가 되어 버린 이 조각들의 허탈한 표정은 극에 달한 인간의 여유로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본인의 이유 있는 우울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며 웃음 짓게 한다. 또한, 오랜 공정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종이 죽토로 한 켜 한 켜 쌓아 올려 조형한 이 작품 속에는 작가의 개인적 일상과 함께 많은 이들의 못다 쓴 일상이 담겨 있는 듯 하다. 불면의 와중에 빠지는 한심한 망상들, 어두운 근심들, 그리고 어느새 새 날을 기약하며 되뇌는 마음의 유희들. 이 모든 것의 집합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 현대인이 공감하면서도 자아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예술가에 대한 일반인의 요구라면, 이유미 작가의 작업과 이번 전시는 바로 그러한 요구에 부응해, 인간 탐구의 가능성과 호기심을 예술로서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여실히 보여 준다. 아울러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 특유의 오감과 함께 약간의 덧붙여진 사차원의 감성으로 작품과 소통하게 하는 시각적 어법이야말로 이 작품들의 가장 큰 매력이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예술'의 참 모습이기도 하다. ■ 노희진
Vol.20060924a | 이유미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