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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722_화요일_06:00pm
마로니에미술관 소갤러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730
나는 개다. / 그리 넓지 않은 옥상에서 살고 있다. / 하지만 주인은 날 목걸이에 매달아 한곳에만 있게 한다. / 그리고 나에게 밥을 주기 위해 아침나절에 온다. / 그 나머지 시간 동안 난 아무도 오지 않는 이 옥상에서 / 혼자 남아 있다. ● 이곳에 온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 처음 이곳에 왔었을 때는, / 혹시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여 목놓아 짖어보고, / 목덜미에 상처가 날 정도로 온 힘을 다하여 / 문 쪽으로 다가서려 기를 썼다. / 그럴 땐 누군가 올라왔다. / 난 너무 기뻐 꼬리를 흔들며 더욱 크게 짖어댔다. / 하지만 그는 나를 반기기보다는 큰소리로 꾸짖었고, / 어떨 때는 날 때리기까지 했다.
그런 날 밤에는 별과 달을 보며 혼자 울기도 했다. / 그럴 때면 옥상 저 너머의 세상에 살고 있는 / 다른 개들의 위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 그러면 누군가의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 우리들을 아니 나는 그냥 별과 달을 보면서 밤을 지새웠다. ● 그리고 그런 일들이 있은 후, 난 서서히 지쳐갔다. / 그 무렵 주인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 난 그때를 기억한다. / 다른 세상을 본다는 기쁨과 주인과 함께 지낸다는 것, / 마음껏 뛸 수도 있고, 짖어도 보고, 가슴이 벅찼었다. / 그러나 우리가 간 곳은 예전에 주사를 맞으러 간 그곳이었다. / 또 주사를 맞았지만 기억이 희미해지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기억을 찾은 후, / 이상하게도 내가 있던 곳은 옥상의 나의 집이었다. / 처음엔 어리둥절하여 꿈인가 했다. / 하지만 난 서서히 알게 됐다. / 짖으려 해도 짖으려 해도 나오지 않는 내 목소리. / 이젠 힘들게 하루종일 짖을 수도, 짓는 일도 없다. ● 난 소리로써 모든 걸 느낄 수 있다. / 옥상 저 너머의 세상을, / 하지만 이젠 그런 것에도 관심이 사라졌다. / 어쩌면 관심이 있는 건, / 저 반짝이는 별과 달을 보는 것일 뿐이다. ■ 이유미
Vol.20030721b | 이유미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