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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6_092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공화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02_735_9938 gonggallery.com
소요(逍遙)하는 모호한 이미지 ● 세계는 언제나 복잡하고 상대적이며 모호하다. ● 내가 추구하는 한지(韓紙)와 수묵(水墨)을 이용한 강약의 표현은 형태면에서 한지가 가진 섬유질의 특성을 활용하여 화면 속의 부정형(不定形)을 형성하고, 기존에 가해진 필묵을 한지로 다시 덮어서 두 매체의 관계에 의한 모호한 경계를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한지의 고유색이나 철망에서 베어 나오는 녹, 또는 첨가한 안료가 자연스러운 색채를 형성한다는 점은 우연이 필연으로 가는, 형상 표현의 다양한 양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또한 한지의 요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은 기법의 특성상, '두드리기'라는 행위와, 바탕과 필묵이 전복(顚覆)되는 현상 그 자체에서 필의 운용에 묶이지 않는 분방한 퍼포먼스(Performance)로서의 의미까지 찾아 볼 수 있겠다. ● "갖가지 모양의 철망에 종이를 대고 두드려서 찍어내어 얻은, 철망 결을 담은 종이를 화면 위에 재구성하여 붙이고 그 위에 채묵을 가한다. 소위 요철을 이용한 작업으로 빛에 의해 그리지 않고도 그린 효과를 낼 수 있다. 철망의 올들이 그대로 드러나 창살의 문양인 듯, 세포의 군집인 듯 특이한 맛이 나온다. 심하게 두드리고 문댈 경우, 갓 떠낸 닥종이인양 부정형의 거친 섬유질 느낌을 낼 수 있다. 일종의 꼴라쥬인 이 기법은 화면 구성과 색 배치 연구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윤빈)
이러한 두드리기라는 반복적 행위와 짜임과 싸임이 연속되는 혼탁한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나 자연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속의 말할 수 없는 경지를 그린, 곧 그 자신도 규명해 낼 수 없는 변화무쌍한 마음의 상태를 그린, 그야말로 사의적(寫意的)인 표현의 변용이라 하겠다. 이는 확실성의 세계에서 불확실성, 모호성, 애매성, 그리고 추상성으로 옮겨가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 그래서 화면 속에서 소요하는 물고기들은 어디엔가 갇혀있는 듯, 자유로운 듯 이중적인 태도이다. 부드러운 수중 생물이 견고한 무생물인 탑을 맴돌며 퇴락과 영원성의 느낌을 동시에 형성하는 것 역시 이중적이면서도 모순적인, 그러나 명확하리 만큼 대조적인 표현이다. 신경질적으로 사방으로 진화해 가는 필선은 원래 생물의 혈관의 형태에서 그 모티브(motif)를 가져 왔지만, 전광(電光)이나 나뭇가지, 또는 수초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견고하게 선을 그으며 실낱같은 말초 신경까지 다다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내 머리 속에는 수많은 과거의 일이 시간의 순서 없이 무작위로 떠오른다. 얇은 철선(鐵線)을 따라 시간 여행을 하듯 심신은 저 과거의 어느 공간을 헤매기도 한다. 그 중에는 부정적인 기억들이 많아서 머릿속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마음까지 괴롭히는데, 그때 긋는 선 하나하나는 그러한 나쁜 환영들을 정화시키기 위한 기도처럼 더욱 견고하게 떨리곤 한다.
이전의 탑을 주제로 한 작업들에서는 탑 형상의 응집과 해체를 통하여 작가 내면의 오해와 갈등, 부조리함 등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위에서 밝힌 한지 기법의 유동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하고자, 단단한 이미지의 탑과 비교하여 양극(兩極)의 대조적인 대상으로서의 물고기를 소재로 택하였다. 또한 끊임없이 증식해 나가는 세포, 생물의 인상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대상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많은 생물들 중 물고기가 선택된 이유가 불교적인 소재로서의 탑의 의미와 일말의 연관성이 있었다는 것은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심오한 의미의 투사보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연하며 투명한 생물체는 수중에 있는 그들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더 우선이었다. ● 또 한 가지, 2004년의 첫 번째 개인전시에서 보여주었던 작품들과의 차이점은 강한 발묵(潑墨)보다는 조심스러운 색채의 사용과 선의 강조이다. ● 아직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백록(白綠_에메랄드색 계열)을 주조로 하는 바탕색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것인데, 예전부터 신비감과 몽환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색조라고 생각해 왔고 수중 생물이 기거하는 심연(深淵)의 이미지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다. 그 외에 언뜻언뜻 사용되고 있는 금분이나 붉은 계통의 채색은 금붕어의 자연색에서 발견한 색으로, 그 자체의 장식성을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간혹 전통 채색물감 뿐 만 아니라 아크릴 채색물감을 수채화 기법으로 화면상에 섞어 넣어 또 다른 둔탁한 색조를 형성한 작품들도 일부 있는데, 이 역시 재료 실험의 일환으로서 수간(水干) 채색과 아크릴 컬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색해 본 부분이다. ● 발묵과 색채의 번짐으로써만 화면을 마무리 하지 않고 생물의 어느 부분에서 뽑아 온 듯한 선명한 필선들을 채움으로써 운동감을 추구한 것도 이전과 다른 변화이다. 어찌 보면 이 작품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물고기도, 탑도 아닌 이 선묘(線描)에 있다고도 하겠다. 이와 함께 탑을 단일 주제로 할 때 보다는 더욱 정교해진 꼴라주 작업으로 투박하고 거칠었던 표면의 느낌을 물고기의 비늘인양 부드럽게 완화시켰다.
내가 추구하고 있는 몽환적이며 모호한 이미지는 형상 자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러한 모호함이 아니라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관계, 기법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에게 던져지는 인상(印象)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열려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작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출발하는 아련한 기억과 감정들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인과 관계가 모호한 상념과 그것을 화면에 옮기고 있는 나의 내면의 모습을 정확히 읽어내고 해석하고자 하면 할수록 무형무성(無形無聲)의 심원(深遠), 심미(深美)한 경지를 읊은 가도(賈島:唐 777-843)의 시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처럼, 아득할 뿐이다. ● 松下問童子、言師採藥去。只在此山中、雲深不知處。 /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를 캐러 가셨다하네. / 다만 이 산 속에 계시긴 한데,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 ■ 유윤빈
Vol.20060919a | 유윤빈展 / YOOYOUNBIN / 劉胤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