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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4_0310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신관1층 Tel. 02_733_6469
유윤빈의 한지실험과 석탑의 이미지 ● 작가 유윤빈의 작업은 탑을 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일반적인 석탑이 아니라 화려하고 장엄한 멋이 두드러지는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선택한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탑이 지니고 있는 조형성과 그것이 드러내고 있는 상징성은 대단히 강한 것이다. 작가가 굳이 이를 소재로 삼은 것은 전통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것과의 일정한 연계가 내재된 의도된 선택이라 여겨진다. 즉 유의미한 형식으로서 석탑의 형상을 차용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탑 자체가 지니고 있는 조형성이 관심의 대상이었다면 화면의 형상은 보다 구체적이고 설명적이었을 것이며, 특정한 신앙을 반영한 목적물로서의 탑을 상정한 경우라 한다면 역시 그 조형적 표출은 또 다른 양태를 띠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면 속의 탑은 형상 재현의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해체되거나 부분만을 차용함으로써 특정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더욱이 화면의 바탕을 독특한 요철을 지닌 특이한 형태로 처리함으로써 본연의 형상은 점차 희석되고 약화되지만 그 이미지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작가는 탑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형상에서 벗어나 이를 해체하고 재조합함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작가의 탑은 작가가 추구하는 조형의 내용들을 수렴하기 위한 도구적인 틀이자 기본적인 꼴이라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흥미로운 것이다. 얇은 한지를 물에 적셔 철망을 이용하여 떠내고 다시 이를 화면에 안착시킴으로써 바탕을 구축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탕 질은 철망이 지니고 있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문양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일정한 요철을 형성하게 된다. 굳이 한지를 다른 양태로 변환시켜 조형의 매제로 삼는 것은 청년 작가들의 작업 경향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재료에 대한 관심과 실험 의지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공되어 그 본래의 성질이 변형된 한지의 바탕에서는 일반적인 선에 의한 사물 표현은 제한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일 수밖에 없게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입된 방법이 바로 발묵에 의한 형상 표현일 것이다. 즉 묘사나 재현의 기능적인 구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아우르면서 드러내고자 하는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해 나아가는 작업 방식은 개성이 강한 바탕 질이라는 전제 하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재료적 특성에서 파생된 문제가 아니라 보다 내밀한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재료, 혹은 재료의 변형 자체와 그것의 구축 과정을 조형의 한 수단으로 수렴하고자 하는 의도된 전개가 바로 그것이다. 즉 작가의 작업은 과정 자체가 궁극적인 결과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고스란히 화면 안에 수용함으로써 우연 자체를 필연적인 내용으로 환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습윤하고 묵취(墨趣)가 강한 발묵은 바로 개성이 강한 바탕 질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편이자 목적하는 이미지를 형성해 나아가는 수단이다. 비록 한지가 가공되어 변형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탑은 그 이미지만을 차용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정한 전통적인 심미관과의 연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도입하고 있는 발묵에 의한 형상 이미지의 구축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이 일정한 실험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심미관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체계로부터 일탈되지 않고 있으며, 굳이 이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온건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실험 양태들이 횡횡하는 현실에서 본다면 작가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것이며 절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전통적인 심미 체계는 수용하되 이를 작가의 개성과 표현에 필요에 따라 변용하고 응용하는 전향적인 작업 방식인 셈이다. ● 발묵은 수묵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십분 살린 표현 방법이다. 물과 먹의 작용에 의해 생겨나는 우연의 효과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작가의 발묵 구사 역시 이러한 특성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발휘하고 있다. 농담을 통해 표현된 탑의 이미지는 강한 수묵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다.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농담을 지닌 한지의 배열에 따라 먹은 번져 나아가며 탑의 형상을 드러내며 의도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한지의 중첩되고 반복적인 배치와 발묵은 모두 우연의 효과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작가의 작업은 바로 종이와 물, 그리고 물과 먹이라는 매제들이 상호 융합하면서 이루어내는 우연의 효과를 필연의 조형으로 수렴하는 것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한지의 가공도 그러하지만 발묵 역시 물이라는 요소가 관건적 역할을 하게 된다. 우연은 바로 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공된 한지는 본래의 성질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치밀한 조직은 성글고 엉성한 것으로 변환되어 먹의 수용에 있어서도 본래의 그것과는 다른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더불어 대형 화면의 경우 물리적인 크기의 한계로 인하여 비정형의 단절면이 연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만약 우연의 효과를 필연적인 조형의 틀로 수렴하는 것이 작가의 작업 방식이라면 이러한 점들은 미처 처리되지 못한 생경한 것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정치하고 정교한 조형적 장치로 목적한 바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치밀한 경영과 세심한 재료 운용의 묘를 통하여 다양한 개성들과 방만한 내용들을 하나의 틀 속에 귀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탑이라는 특정한 대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소재와 표현의 예를 추구해 보는 것 역시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특장과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겨진다. 비록 진행형의 실험 작업이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안정성과 침착성 등에 미루어 보아 이는 충분히 풍부한 여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진지한 노력과 침착한 행보로 미루어보아 이는 기대해도 좋은 것이라 여겨진다. 작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 김상철
나에게 "탑(塔)"은 현재를 이루어내는 古代美의 완성형으로서의 생명체였다. 역사와 영원성을 품은 이 완전한 구조물의 매력에 세포의 군집 같이 일렁이는 한지의 질감을 더해서 운동감과 생명성을 부여하려 하였다. ●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인간의 이상향과 꿈과 소망을 대변하고 있는 탑을 바라보던 중, 문득 이미지를 포함한 모든 것들의 본질은 흉내낼 수는 있지만 끝내 확연히 밝혀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 돌탑, 불탑, 성(城), 높이 쌓아올린 그 어떤 것들... / Pagoda건 Stupa건 Tower건... / 지금껏 내가 확연히 그 형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던 요소들을 일순간 무너뜨려 본다. / 욕망, 기원, 바람, 증오, 희열, 우울, 기쁨이 범벅이 되어 높이 솟아 있으면서도 그 전체의 모습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 높이 쌓아올린 어떤 돌덩이들의 집합체들을 그려본다. / 생명성이니, 역사성이니, 영원성이니 그런 고귀한 언어들로 그려보았던 마음 속의 고정된 허상을 무너뜨려 본다. / 파괴의 과정에서 언뜻언뜻 실체 비슷한 것을 만날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 나의 꿈은 비닐 장막 저편에 존재한다. / 나의 희망은 뿌연 막으로 가리워져 있다. / 모든 것이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어떤 것을 본 것 뿐이다. /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흐릿한 위막(僞膜)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흔들리며 손짓하고 있다. ● 그런데도 나는 그것이 전부인양, 모든 것의 실체인양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존에 나타난 형상 위에 다시 무언가를 덮을 수밖에 없다... ■ 유윤빈
Vol.20040310a | 유윤빈展 / YOOYOUNBIN / 劉胤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