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民謠) 그리기

고완석展 / GOHWANSUK / 高莞錫 / painting   2006_0517 ▶ 2006_0523

고완석_民謠所見 06-161_스테인리스 스틸_43×49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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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517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스테인리스 스틸을 통한 고완석의 민요(民謠) 그리기 - 민요로 조응(照應)한 현대인의 삶의 환영(幻影) ● 고완석(高莞錫)의 예술세계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여 한국적 조형세계를 현대적으로 독특하게 창출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2000년 이후로 민요에 대한 관심을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질로 하여 일관되게 형상화하고 있다. 차가운 이미지의 딱딱하고 강한 철재류인 스테인리스 스틸은 순박하고 정적인 한국화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 같지만 의외로 한국화적 요소와 흥미롭게 접목되어 민요의 구수한 가락과도 같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최근 들어 스테인리스 스틸을 평면에 사용하는 작가들이 간혹 있으나, 고완석의 스테인리스의 작업은 여느 작가들과는 미학적, 기법적인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완석은 90년도에 유럽의 8개국에 배낭여행을 하면서 기독교 문화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문화를 독특하게 표현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고완석의 이러한 고민은 현대 한국미에 대한 그의 집요한 응집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독특한 한국적 이미지에 큰 의미를 둔 작가의 근작을 보면 한국성적인 것과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딱딱하고 매끈한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에 어떠한 이미지들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이 이미지들은 우리의 전통 민요 가락들을 조형화시켜 놓은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작가의 다음 말을 통해서 좀 더 실감할 수 있다. ● "아마 그것(민요를 주제로 한 것)은 제가 성장기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방대한 문화의 충격에서 '나의 그림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가?'하는 그런 문제로 고민을 할 때 다시 모든 것을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는가?', '나는 어떻게 자랐는가?', 그 다음에 '나는 무엇인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 그런 전통 풍류가 있는 고장에서 자란 향수와 느낌들이 민요를 주제로 그림을 표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완석_民謠所見 06-160_스테인리스 스틸_91×138cm_2006
고완석_民謠所見 06-155_스테인리스 스틸_113×113cm_2006

고완석은 천혜의 예술적 조건을 지닌 남도의 끝자락인 전라도 장흥에서 어렸을 적부터 성장하였다. 작가가 살았던 조그만 마을은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오지였으며, 마을 사람들은 한복 차림으로 농사일과 허드렛일을 하면서 민요가락을 흥얼거리며 농사일을 하였다. 이곳이 작가의 예술적 뿌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민요기행전」, 「민요소견」이라는 테마로 자신의 작업세계에 민요의 가락과 흥을 구체화시키게 되었으며, 이는 2000년 이후 전개되는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의 모태이자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작업세계에서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할 점은 전통 민요의 이미지가 과연 스테인리스를 통하여 회화라는 평면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우리 문화와 정서에 부응되는 친밀함을 지닌 한지와 같은 재질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고완석의 작품을 통하여 마음과 입으로 부르는 민요의 구수함과 투박함을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말 할 것 없이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의 민요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벌(symbol)적인 의미를 지닌 상징(象徵)과 기호(記號)라는 미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호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 의지, 감정을 어떤 물리적 현상을 통하여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 의지, 감정 등은 사람 속에 있는 것으로 남에게 쉽게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내용이나 의지의 핵심, 감정의 변화 등을 표현하려면 어떠한 물리적인 현상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일종의 기호라 할 수 있다. 작가 고완석은 마을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투박하고 정갈스런 민요 가락에서의 느낌과 이미지를 어릴 때부터 가슴에 담아 두었다. 어렴풋한 향수 속에 담겨져 있는 민요에 대한 느낌과 이미지가 작가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민요적인 것들을 미술이라는 평면을 통해 하나의 조형(기호)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작가가 표현하는 투박한 붓 자국은 민요의 투박한 울림과도 같은 것이다. 마치 풍파가 몰아치고 튀는 듯한 힘찬 붓의 흔적들은 민요의 힘찬 가락이 형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어떤 작품은 마치 고요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피가 튀듯이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창 소리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작가가 사용하는 스테인리스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마음 속에 들어있는 민요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을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로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다.

고완석_民謠所見 06-158_스테인리스 스틸_52×72cm_2006
고완석_民謠所見 06-162_스테인리스 스틸_113×113cm_2006

작가는 민요란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함께 부르는 것이므로 '어떻게 하면 민요처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작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재료적인 측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는데, 스테인리스 스틸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질의 다양한 성향은 작가 자신의 예술세계가 그만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관람객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작품에 비춰주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작품 안에서 함께 느끼고 숨쉰다는 연대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스테인리스 스틸에 비춰지는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民謠所見)에 의해 '응시(凝視)'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시각적 영역에서의 라깡(Jacques Lacan)의 '응시(凝視)'를 연상시킨다. 라깡은 '응시는 외부로부터 존재한다고 보는데, 나는 보여 진다. 즉 나는 그림이 된다. 나를 결정하는 것은 시각적 영역에서 외부로부터 존재하는 응시이다.'라고 했다. 민요라는 소리의 울림이 하나의 존재로서 새 생명을 얻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고완석의 작품 「민요소견(民謠所見)」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인 민요가 하나의 가시적 존재로 새롭게 탄생하여 관람객들을 응시하기도 하고 함께 호흡도 하는 것이다.

고완석_民謠所見 06-152_스테인리스 스틸, 종이_235×818cm_2006
고완석_民謠所見 06-157_스테인리스 스틸_113×113cm_2006

관람객들을 응시하고 민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며 동행하는 작품 「민요소견」은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강한 철을 다듬고 깍은 것인데, 단단하고 매끄럽기만 한 거울과도 같은 재질의 스테인리스 스틸을 마치 붓으로 일획을 긋듯 자연스럽게 조형화시킨 것이다. 그 질감은 손끝에서 민요의 구수한 가락과도 같은 미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다. 손끝에도 스쳐 지날 것 같은 매끄러움이나 오돌토돌한 느낌을 주는 요철화된 표면 효과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강한 물성을 마치 숨쉬는 한지처럼 변화시킨다. 강인한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펼쳐지는 여러 형태들은 인위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교적인 것도 아니다. 민요의 힘찬 리듬감과 소리의 울림이 최소한의 흔적을 통해서도 생동감 있게 고스란히 형상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절제된 흔적'은 많은 시간들을 통해 이루어진 미적 결정체이며, 민요에 대한 뚜렷한 내면화된 경향은 작품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물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민요는 이질적인 가락이 한데 모여 이루어지듯이, 질감도 다르고 결도 다른 스테인리스 스틸과도 어우러져서 우리 삶의 원형질과도 같은 하나의 생명체로 새롭게 탄생된 것이다. ■ 장준석

Vol.20060520d | 고완석展 / GOHWANSUK / 高莞錫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