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풍경

박희섭展 / PARKHEESEOP / 朴喜燮 / painting   2006_0413 ▶ 2006_0423

박희섭_풍경, 붉다_한지에 자개, 안료, 염료_70×5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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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413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www.kumhomuseum.com

박희섭은 동양적인 재료인 나전과 한지, 자연 염료를 이용하여 회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그의 작품의 주재료가 나전이라는 것은 특기할 만 하다. 나전(조개의 껍질)은 동양에서 공예품에 장식적으로 사용되어 우리에게는 장식장, 교자상 등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재료이다. 박희섭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대신에 가늘게 자른 나전을 붙여나감으로써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 자개는 시간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 장인적 기술을 요하는 재료이기에 과거의 장인들처럼 이를 이용한 박희섭의 작업 또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집약하고 있다. 자개를 가늘고 세밀하게 붙여나가는 작업 외에도 이 자개들이 붙는 화폭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된다. 들기름을 여러 번 바른 한지를 2년 정도 묵힌 뒤, 이 한지에 다시 오방 색(적, 황, 청, 백, 먹색)의 분채 가루를 섞어 바탕색을 칠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화폭 위에 다시 자신이 직접 자른 자개를 길고 짧게 아교로 붙여가며, 이미지를 하나하나 만들어간다. 자개 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나가는 긴 과정은 마치 오랜 시간 바닷속에 만들어진 자개의 오색영롱함이 주는 시간의 흔적과도 같다.

박희섭_풍경, 노랗다_한지에 자개, 안료, 염료_70×50cm_2006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박희섭의 풍경은 얼핏 보면 색 면 바탕 위에 나무나 식물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척추와 오장 등 인체의 기관들의 형상들이다. 박희섭은 땅에 나무가 있듯이 풍경에 인체의 척추를 대치시켜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즉, 전통재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동양정신에 대한 것으로 주제와도 연결된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모든 인간의 관심사이기도 한 장생(長生)을 화두로 삼고 평면과 입체 설치를 통해 십장생을 형상으로 구현했다. 다음 전시에서 그의 관심은 인체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였고, 이번 전시에서는 장생의 개념에서 치유의 기능까지 감지해 내고자 한다. ● 박희섭은 이러한 인체를 표현하면서 오행의 법칙을 이용하였다. 분홍과 연두 바탕 위에 척추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풍경들 외의 이미지들은 각각 오방 색을 바탕으로 그 색에 따른 장기의 이미지들이 형상화하였다. '목'은 푸른 풍경, '화'는 붉은 풍경, '토'는 노란 풍경, '금'은 흰 풍경, '수'는 검은 풍경으로, 그리고 이들 오방 색에 그려진 자개 이미지들은 각각 간, 심장, 위, 폐, 신장 등의 신체 기관의 형상을 띄고 있으며, 이들 색은 각각의 기관의 치유의 색으로 상징된다. ● 자개로 덮힌 화면은 무한한 빛과 율동감이 내재되어 있으며, 수공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회화적 화면 앞에서 영원성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 금호미술관

박희섭_풍경, 불그스름하다_한지에 자개, 안료, 염료_244×194cm_2006

치유의 풍경 ● 박희섭은 나전과 한지, 자연염료라는 동양적 재료를 써서 회화를 만들어 낸다. 나전이란 조개의 껍질에서 나오는 오색영롱한 질료로서 주로 동양의 공예품에 장식적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한동안 대중적으로 장식장 혹은 교자상으로 많이 사용되어 우리에게는 친숙한 재료다. 요즈음 같이 빠르게 변화되는 현대문명시대에서 나전은 워낙 잔손질이 많이 가는 시간과 노력의 장인적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전통문화로서 맥만 유지할 정도이지 사양길이다. 박희섭은 이 아름다운 재료를 본인의 물감과 붓처럼 사용하며 화폭에다 붙여나감으로써 새로운 회화를 시도한다. ● 그림을 그리기 위한 화폭 역시 오랫동안 준비하는데 한지를 들기름으로 여러 번 바른 후 2여 년 정도 묵힌 뒤 오방색의 분채 가루를 섞어 바탕색을 칠한 것으로 이 화폭 위에 가늘고 길게 혹은 짧게 자른 자개로 풍경 이미지를 하나하나 만들어나간다. 그는 미리 구상한 이미지로 작업을 시작하나 붙여가면서 그림의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고 즉흥적이며 우연적 방법을 채택한다. 재료자체가 워낙 완성된 것이기에 자칫 딱딱하거나 지나치게 장식적이 되어 버릴 수 있어 붓으로 캔버스에 그려나갈 때처럼 자유로운 감성으로 재료를 다루려고 한다.

박희섭_풍경, 푸르스름하다_한지에 자개, 안료, 염료_194×610cm_2006

박희섭의 풍경화는 원색조의 색 면 바탕 위에 나무풍경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인체의 척추나 오장의 형상을 띄고 있다. 작가는 색 면의 텅 빈 여백 위에 점, 선의 자개조각을 연속으로 붙여 숲과 하늘. 땅을 아우르는 총체적 풍경화를 그려내고자 한다. 동양의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서로 긴밀해 서양처럼 부분과 전체의 개념이 아니라 총체적인 대우주와 소우주로 해석되고 있다. 동양에서는 자연을 통해 모든 만물의 이치를 깨달으며, 사람도 소우주적 자연의 총체로 해석된다. 그래서 현재의 사람과 사물을 살핌으로 지금의 현상을 파악하고 우주도 파악한다. 수련을 통해 이것이 마음대로 되는 순간 사람과 사물, 자연은 모두 친밀하게 느끼게 되며, 해석되고 동일시되어 우주적 의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人)은 자연과 함께하는 존엄한 존재로 과거의 수많은 존재를 내포하고 있고 앞으로 헤아릴 수 없는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박희섭은 이런 동양정신을 그의 작업에 완전히 대입시키고자 한다. 박희섭은 땅에 나무가 있듯이 풍경에 인체의 척추를 대치시켜 소우주와 대우주를 표현 한다. 그가 그린 나무풍경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라는 자연의 법칙을 말하고 있는 오행의 표현이고, 고대의 황제내경에서부터 내려온 오행의 치유적 기능도 함께 부여하고 있다. 나무는 하늘을 받히고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랑 흡사하다. 그래서 각 민족 신화에는 인류역사를 쓰기 이전부터 등장하고 또 영웅과 함께한 상징으로서 출현하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셋째 날에 창조되었고, 부처도 보리수나무에서 해탈을 했다. 프랑스 역사학자 장-폴 루는 나무는 생과 사의 순환주기에 복종한다고 한다. 게르만신화에서는 거대한 우주목이 등장하는데 땅속에서 수액을 빨아들이고 태양으로부터 열매와 꽃을 얻으며 모든 존재들의 휴식처가 되는 거대한 풀푸레나무인 아그드라실이 바로 그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곳이 복사꽃 나무아래다. 화려한 복사꽃이 피는 시절은 봄이지만 농민들에게는 보리 고개로 가장 견디기 힘든 시절 새로운 나라를 위해 영웅들은 뭉쳤다. 도잠의 귀거래사와 안평대군의 그림에서도 등장되는 복사꽃 역시 인간이 꿈꾸는 이상형의 무릉도원을 가리킨다. 주역에서 변화무쌍한 현상에서 나고 또 나는 것을 역이라 하는 것에서의 의미와 나무는 너무나 닮았다. 나무는 대부분 암수가 한 몸으로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고 자기 치유와 생성을 한다. 스스로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생명을 한곳에 모아두지 않고 골고루 분산하며 어느 한 곳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곳이 없다.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자강불식 (自强不息)이다.

박희섭_풍경, 검다_한지에 자개, 안료, 염료_70×100cm_2006

박희섭은 나무풍경화로 자연 전체에 대한 존재의 화합과 균형, 자가 치료라는 생명전체에 대한 균형을 표현하고자 한다. 주제는 목, 화, 토, 금, 수라는 오행의 법칙을 이용하였다. 각각의 상징을 나무로 표현했는데 목(木)은 푸른 풍경, 화(火)는 붉은 풍경, 토(土)는 노란 풍경, 금(金)은 흰 풍경, 수(水)는 검은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먼저 작은 크기의 작품들은 위로 길게 연속으로 붙이거나 좌우 연속적으로 길게 설치해 하나의 부분도가 전체적으로는 산수화처럼 보인다. ● 작품을 살펴보면 풍경,푸르다는 소나무의 굵은 줄기가 힘차게 푸른 화면 좌측 위에서부터 수직으로 내려오고, 중앙에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잔가지가 마치 인체의 간 형상으로 걸쳐 있다. 지구상에 가장 먼저 오염된 공기를 산소로 정화시키는 나무(木)처럼 간은 우리 몸에서 제일 먼저 해독을 하는 부위이다. 유아기, 봄, 나무, 동쪽, 푸른색, 신맛 등의 상징을 갖고 있으며 봄볕처럼 자애로운 인(仁)의 의미와 푸른색이 강한 형태는 성장기의 어린아이들, 피로하거나 간에 질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 풍경,붉다는 화면 윗부분에 위치한 굵은 줄기로부터 역삼각형의 잔가지들이 아래로 붙어있다. 자세히 보면 심장 형상처럼 여러 나무들이 얽혀 구성된 것이다. 동맥과 정맥으로 피를 보내며 받아들이는 잔가지의 형태와 배경의 붉은 색채는 불(火)의 의미를 담아낸다. 인체 안에서 가장 중요한 엔진이며 에너지를 내뿜는 심장은 청년기, 여름, 남쪽, 붉은색, 쓴맛 등을 상징하며, 한여름 초목이 에너지가 넘치게 자라 울창하지만 질서를 가지고 있는 예(禮)의 의미를 가지며 그 상징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치유된다.

박희섭_풍경, 붉다, 노랗다, 푸르다_한지에 자개, 안료, 염료_70×50cm×6_2006

박희섭의 풍경,노랗다는 화면중앙에 나무줄기가 자연스럽게 위아래를 구성하고 잔가지가 인체의 위 형태로 그려진 것이다. 인체중앙에는 위가 자리 잡고 있어 필요한 것을 섭취하고, 받아들이며, 소화하여 영양을 공급한다. 흙(土)은 청장년, 장하, 중앙, 노란색, 단맛, 신(信) 등을 의미하고, 모든 것을 생육하고, 변치 않는 성질을 가진다. 목의 성질이 너무 강한 사람에 의해 토가 약해져서 나오는 병이나 성격 등을 고치는데 이용할 수 있다. 풍경,희다는 가늘고 긴 줄기들의 나무가 2개의 폐 형상으로 구성되어 화면을 거우 꽉 채우고 있다. 그림은 바탕화면과 그려진 형태가 모두 흰색으로 거의 미니멀하게 보이나 자개자체의 색이 빛과 함께 형태를 드러내 복잡한 산수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폐에 속한 꽈리처럼 나무 가지들은 폐의 가장자리에 그려져 두 개의 폐 모양을 길게 화면하단까지 만들며 내려왔다. 쇠(金)의 의미를 표현하는 그림으로 중년, 가을, 서쪽, 흰색, 매운맛, 가을 하늘처럼 의리 있는 예(義)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폐 대장 질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 인체의 양쪽 신장부위처럼 검은 화폭을 두 개로 신장으로 양분하여 표현한 박희섭의 풍경,검다는 자개와 검은 색이 어울려 고요하고 안정적 느낌을 준다. 물(水)의 의미는 노년, 겨울, 북쪽, 짠 맛, 그리고 흙에 묻혀 겨울을 나는 씨처럼 지혜를 가리킨다. 이 그림은 신장 방광에 관한 생식기 부분의 질병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 황제내경에서는 일 년이 12개월 365일로 되어있듯이 인체도 좌우12개의 정경, 365개의 경혈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계절에는 24개의 절기가 있고 인체의 척추는 24개의 뼈로, 그리고 척추를 통해 전달받는 24개의 유혈이 있으며 우리 몸의 기(氣)도 52번 순환한다고 전한다. 박희섭의 풍경,불그스름하다와 풍경,푸르스름하다는 척추를 빗대어 그린 것으로 중요하게 우리 몸을 지탱하고 있는 척추와 바닥에 뿌리를 내리며 줄을 따라 표현된 나무는 일치되며 거대 산수풍경화로 표현된다. 박희섭은 동양철학 안에서 전통과 현대 기법을 끊임없이 실험함으로 국제적 언어로 통용되면서도 독창적인 작업을 만들어내고 있는 작가다. 앞으로 잠재되어 있는 동양의 모습을 발전시킬 작가로 더욱 기대된다. ■ 김미진

Vol.20060417a | 박희섭展 / PARKHEESEOP / 朴喜燮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