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눈 Pinning eye

최진기展 / mixed media   2006_0322 ▶ 2006_0403

최진기_빨래집게에펠탑Clothespin-Eiffel Tower_빨래집게_7×5×9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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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22_수요일_06:00pm

갤러리 쌈지 제2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쌈지길 내 아랫길 Tel. 02_736_0088 www.ssamziegil.co.kr

최근 그림 상설 매장인 쌈지 아트마트를 시작한 갤러리 쌈지가 쌈지 스페이스 7기 입주작가이며 최근 국내외의 다양한 기획전에 참여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보이는 젊은 작가 최진기씨를 초대하여 "뾰족한 눈, Pinning eye"전을 개최합니다. ● 2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국내외의 입주작가 프로그램과 기획전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최진기 작가는 "뾰족한 눈, Pinning eye"전에서 사진작품과 일상 오브제들을 이용하여 제작한 최근작들을 선보입니다. "최진기의 작업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과정은 대상의 변형이 아닌 대상에의 응시로 이루어진다. 벽지나 타일, 혹은 얼룩 등을 바라보다가 떠오르는 어떤 것을 응시하는 일은 응시의 대상이 덧없는 것, 혹은 집중의 순간에 결집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라고 전시 서문에 언급하듯이 주변의 사물들을 "응시(gaze)" 하는 것에서 출발한 최진기 작가의 작품들은 응시의 대상을 통한 작가 자신의 무의식과 기억의 혼합, 또는 작가에 의해 완성된 작품과 어떤 기능을 지닌 일상용품의 형태적 유사성, 그리고 플라스틱이라는 현대 소비사회의 공산품의 대표적 재료의 사용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내포하며 일상 속의 환타지를 제공합니다. ● 일회용 비닐 봉투로 제작된 토끼, 제모를 위해 사용하는 면도기로 만들어진 "털난 면도기", 고양이 로고가 새겨진 담배 케이스로 제작된 "레송 고양이" , 비둘기 몸에 쥐(rat)머리가 부착된 "비둘기 쥐" 작품 등 최진기 작가의 작품들은 낯익은 일상의 사물들의 변신을 통한 아이러니와 유머를 동시에 담아내는 일종의 블랙 코메디를 연상케 합니다. 본 전시 이후 최진기씨는 그의 작품활동 무대를 뉴욕으로 옮겨 보다 넓은 세계에서 젊은 한국작가로써 새로운 출발을 시작합니다. ■ 갤러리 쌈지

최진기_포도나무 Grape-Tree_포도 줄기, 접시_20×20×18cm_2005
최진기_털난 면도기 Hairy Razor_여성면도기, 다리 털, 거울_12×4×3cm_2005
최진기_그녀의 두마리 돼지 Her Two Pigs_디지털 프린트_50×61cm_2005
최진기_비둘기쥐 Pigeon-Rat_비둘기, 쥐_25×12×25cm_2005

뾰족한 눈 ● 시선의 응축은 포괄적인 시계(視界)로부터 하나의 점으로 시선(視線)들이 모인다는 사실 외에도 그러한 집결(集結) 혹은 응결(凝結)을 이루어내는 것이 대상의 어떤 '부름으로부터'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연결로 이어진다. 사실상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은 라캉의 표현이다. 대상은 응시의 목적(目的)이면서 동시에 시점(視點)의 기원을 제공한다. 두 개의 점, 즉 시점과 목적을 기점으로 하는, 응시와 응시의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원추가 있으며 원추들의 꼭지점은 무한히 뾰족한 하나의 점, 추상적 점, 존재의 위치를 함축하는 바늘 끝인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눈은 송곳이나 바늘 같은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송곳의 끝부분에 의해 끝없이 찔려대는 눈이기도 하다. 날카로운 성기로서의 눈과 그것에 의한 눈의 관통, 자신의 눈을 찌름으로서 스스로를 거세한 외디푸스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것이다.

최진기_비닐봉지토끼 Plastic Bag-Rabbit_비닐봉지_17×10×14cm_2004
최진기_기도하는 머리핀 Praying Hair Clipper_머리핀_1×1.5×1.5cm_2003
최진기_레송고양이 Cigarette Raison-Cat_담배갑_7×2×10cm_2005
최진기_성자 유두 Saint Nipple_디지털 프린트_160×110cm_2005

최진기의 작업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과정은 대상의 변형이 아닌 대상에의 응시로 이루어진다. 벽지나 타일, 혹은 얼룩 등을 바라보다가 떠오르는 어떤 것을 응시하는 일은 응시의 대상이 덧없는 것, 혹은 집중의 순간에 결집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부름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응시는 부름의 순간에 간여하는 것이며 의식의 체계를 일깨우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사물이나 사건으로서의 대상을 의미체계 바깥에서, 즉 다시 말해 언어에서, 또는 '입'으로부터 분리시켜 전적으로 '눈'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 '눈'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 가장 타락하기 쉬운 방법은 그것을 끊임없이 의미체계와 비교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 의식에 의해 분류되거나, 위치 지워지거나, 의미화 되거나, 상호 지시하는 관계틀 속에 자리 잡혀지지 않은 상태의 것을 정지시키고 의미의 지표로 종속시킨다. 그러나 어떻게 무의식적 대상을 가시화할 것인가라는 문제로부터 우리는 어디에선가 정지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게 된다. 무의식적 대상, 혹은 응시의 대상의 가시화는 다시금 의미체계로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은 어쩌면 그러한 종속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바깥'을 재현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유진상

Vol.20060326a | 최진기展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