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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17_금요일_06:00pm
갤러리 빔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02_723_8574
빨간실 ● 우리는 자주 '소유하고 싶지 않고 소통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치 상대가 나와 한 탁자에 앉기만 하면 소통할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외로움과 답답함과 성마름이 상대의 불관용 때문인 것처럼 말하지만 소통 이전의 문제를 헤아린다면 반드시 소통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바로 관계의 문제이며 이것을 파악한다면 소통의 목적인 '너와 나를 알기'는 이미 어느 정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호기심은 많지만 좀처럼 무엇에 욕심낼 줄 모르는 정원연의 마음에 사랑이 들어왔을 때 그는 그 마음의 풍경을 물리적으로 구현해 보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의 집에 빨간 실의 한 끝을 붙들어 맨 다음 따가운 햇볕 내리쬐는 2004년 6월 베를린의 거리에 마음의 행로를 새겨 넣는다. 이제 사랑의 신화에는 관심이 없는 노인으로부터 어떤 사랑의 결실일 어린아이까지 사람들은 빨간 실의 정체를 물었다. 차갑게 달리기만 하는 무서운 차들은 이 빨간 실을 밟고 지나갔으며, 그 미소에 두근거림이 엿보이는, 그리고 분명 동양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 정원연과 같은 이방인인 한 서양인 청년은 불교에서 빨간 실이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해주었다. 드라마틱한 좋은 징조인 걸까?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빨간 실의 한 쪽 끝을 받아줄 사람은 그 곳에 없었다.
정원연은 이어지지 않은 빨간 실의 한 끝을 들고 길을 되돌아온다. 마음의 풍경이었던 빨간 실은 유린당하고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좀처럼 무엇에 화낼 줄도 모르는 정원연은 이것을 자신이 맺고 있는 여러 관계들 중 하나의 모습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모든 살아있는 것, 살아있지 않은 것들과 관계라는 빨간 실로 묶여있지만 그것은 단단하게 묶여있기도 하고 꼬여있기도 하며 이처럼 끊어져 있기도 하다. ● 잘 쓴 희곡작품의 미덕 가운데 한 가지는 모름지기 그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 간에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함께 나눌 대사 한 마디 설정하지 않은, 서로 만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인물들이라도 말이다. 그것은 이들이 작품이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함께 나와 있다면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게으른 것들 재미삼아 패 줬다'는 미국의 철없는 십대나 맞아죽은 노숙자들도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현실이라는 것이 만약에 잘 쓴 희곡작품이라면 말이다.
2006년 1월 『뜻밖의 시선』전을 통해 제시한 '예술가의 시선'이 그가 손에 쥔 빨간 실의 한 쪽 끝이라면 『빨간실』전은 그 빨간 실의 남은 한 끝을 들고 그가 감행한 '관계에 대한 모험'이다. 사랑을 찾아 떠난 모험에서 그는 사랑보다 더 큰 것을 얻고 돌아왔다. ■ 양지윤
Vol.20060321d | 정원연展 / CHUNGWONYEON / 鄭園燕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