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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301_수요일_06:00pm
갤러리 도스 기획
갤러리 도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55-1번지 2층 Tel. 02_735_4678
가상공간 속의 Insomnia ● 불면의 시간 ● Insomnia. 한여름 밤의 불면증.... 녹색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모두 잠든 밤이 되어서야 다시 깨어나듯 사물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마법의 공간이 시작된다. 초현실주의적이고 몽환적인 느낌마저 주는 최원정의 녹색의 문 : Insomnia Project는 사고와 감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불면의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고요한 한밤중, 시간과 공간이 정지해버린 진공의 상태에 돌입한 듯 사물들은 서서히 부유하면서 느리게 움직이거나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반복한다. 이 공간에는 중력도 없고 움직임의 방향도 시간도 없다. 작가의 말대로 시간이 멈추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절대적인 고독의 상태, 강박적인 불안과 욕망, 체념과 고집의 표류, 어두운 밤 불면의 숲을 지나 만나게 되는 모호하고 불안정한 시간과 공간에 드리워진 죽음과 상실의 내러티브, 실제와 가상, 꿈과 죽음, 그 너머와 조우하는 경계의 시간 속에서 사멸하는 모든 것들을 추억하는 내러티브가 시작된다.
사물들 ● 익숙한 사물들과 공간들, 그러나 갑자기 액자 속의 사람과 손이 움직이고 거울속의 종이 울리며, 긴 촛대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이미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그러나 고독하고 황홀하며 신비롭고 위험하며 변화에 찬 모험의 실마리가 우리의 손 안에 살며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작가의 주변에 있는 익숙하고 친밀한 오래된 물건들이어서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들이다. 오래된 액자, 옛날 초등학교에 있었던 작은 나무의자, 빈 접시 위의 숨 쉬는 날개, 나뭇가지, 안개 속을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기구,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 뚜껑이 열리는 설탕단지.... 오래전부터 알았던 익숙하고 친밀한 사물들이 갑자기 낯설게 보이면서 기묘한 심리적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를 떠올리게 하는 최원정의 심상치 않은 사물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들일 뿐 아니라 숨까지 일시 멈추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화면은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렸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정물화를 닮았다. 사물들의 리얼하면서도 인위적이고 부동적인 첫 느낌은 정물화와 비슷하지만 그러나 자세히 보면 최원정의 사물들은 실제 크기도 뒤죽박죽이고 공간감이 없으면서도 게다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마치 숨을 쉬듯이.... 정물(靜物)은 프랑스말로 '죽은 자연(nature morte)'이 아니던가. 화면 속의 공간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이 움직임으로써, 무생명과 생명,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현실세계에 있을법하지만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존재들, 환상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들에 둘러싸인 우리 모두는 분명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앨리스이다. 최원정은 이 진공의 공간을 설명하면서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녹색의 문」을 소개한다. 주인공 루돌프 슈타이너가 수수께끼 같은 광고지로 인해 우연히 발견하고 모험하듯 이끌려 들어서게 되는 녹색의 문, 그 문의 저편에 무엇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녹색의 문'은 최원정의 불면증의 화면에도 등장한다. 마치 토끼굴의 입구처럼.
가상공간 속의 강박과 무시간성 ● Insomnia Project의 사물들은 실제 움직이는 사물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정지되어 있는 스틸 이미지를 조금씩 움직이게 한 것이다. 19세기 중반 사진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오랜 시간(몇 십분 혹은 몇 시간)의 노출을 필요로 했고 그 동안 모델들도 부동자세로 카메라 앞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초기의 사진은 마치 특정한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 한 장의 사진에는 긴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그와는 반대로 Insomnia Project에서는 발명 초기의 사진에 압축되어 있던 시간을 느린 움직임으로 다시 펼쳐 보이듯이 뒤죽박죽된 무시간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이미지의 기록과 기억의 경계, 읽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등에 대한 최원정의 관심은 이전의 작업인 (2002)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메모, 일기, 에스키스 등 일상의 단편적인 기록들 자체를 비디오카메라로 근접 촬영하여 그림 즉 이미지로 만들고 실험영상으로 다시 제작한 것이었다. 따라서 텍스트나 드로잉인 일상의 기록들은 읽을 수 없는 영상으로 변하여 기록으로서의 전달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들은 1초에 30개의 그림을 여과 없이 기록하고 저장하는 정직한 비디오카메라에 의한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선택하는 우리의 기억처럼 작용하여, 실재 같은 환영과 환영 같은 실재가 경계 없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최원정의 이러한 작업은 Insomnia Project에서 더 심오한 환영과 기억의 공간들로 심화된다. Insomnia Project에서의 움직이는 사물들은 실제로는 기록된 정보와 데이터에 의해 매번 반복 재생되는 디지털 이미지다. 가상의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긴 하나 몇 초마다 반복되는 사물들의 움직임은 우리의 잊혀진 삶의 일부에 대한 억압된 무의식의 반복 강박처럼 보인다. 프로이트의 설명대로 무의식적 정신 과정은 그 자체로 무시간적(timeless)이다. 무의식적 정신 과정에서는 시간적으로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도 그 과정을 변화시키지 않으며 시간의 개념이 그것에 적용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 방식이 사물을 원래 있던 장소에서 떼어오는 것이듯이, 시간을 정상적인 흐름에서 데콜라주(decollage, 뜯어내기)해내는 것, 혹은 서로 다른 우연한 시간들을 콜라주(collage, 붙이기)하는 것과 같다. 아니면 혹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가 언급했듯이 선형적 시간과 의식의 흐름이 중단된 시간 사고(time accident), 즉 '시간에 대한 발작적 소멸'을 의미하는 '피크노렙시(picnolepsie, 기억부재증)'와 같은 것은 아닐까. 시계로 측정할 수 있는 공간화 된 시간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순간, 불면의 진공된 순간... 최원정이 가상공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거울 ● 최원정의 이번 작업에는 세 가지 다른 거울이 보인다. 첫 번째 것은 화면 안에 들어 있는 사물로서의 거울이고, 두 번째 것은 그 거울이 반영하고 있는 낯선 방 안에 놓인 거울 속 거울이다. 마지막 세 번째 것은 화랑의 벽면에 투사시킨 화면을 양쪽 벽과 바닥에서 반영하게 될 진짜 거울의 설치이다. 세 번째의 거울은 화랑의 건축적 요소인 벽에 통합되면서 관람자를 둘러싸는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볼 때 그 이미지의 좌우는 항상 바뀌어 있다. 최원정의 작업에서도 거울 속 거울로 들어있는 사물이나 거울에 의해 반영된 가상의 공간들이나 모두 결여와 부재, 불안정성의 어떤 피할 수 없는 요소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구나 마주보고 있는 벽에 설치된 거울들은 화면을 비출 뿐 아니라 서로를 반영하며 자기 폐쇄성과 반복성을 드러내는 무한한 공간을 나타내게 된다. 거울의 표면들은 끝없이 복제되고 있는 공간과 관람자의 눈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실제 사이의 경계로서 작용한다. 관람자는 거울의 평면성과 이러한 회귀적인 이미지 세계의 인공성을 점차 깨닫게 되며, 차츰 자기 폐쇄성과 반복성을 느끼게 된다. 거울이 거울을 반영하는 거울 안의 풍경은 각각의 위치와 심지어는 관람자의 위치를 혼동시키고 부인함으로써, 관람자의 지각을 좌절시키는 페쇄적인 공간을 만든다. Insomnia Project와 함께 거울로 둘러싸인 화랑의 공간은 이제 관람자도 동참하는 심리적인 환경을 창출하게 된다. ● 다시「녹색의 문」으로 돌아가자. 결국 슈타이너가 받은 광고지는 수수께끼도 아니었고 그 건물은 모든 문이 녹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음에도, 슈타이너에게 있어서 녹색의 문 너머의 모험은 마치 진공의 순간, 사이의 시간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최원정의 Insomnia Project에서 불면의 시간에 찾아온 삶과 죽음, 실제와 가상, 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틈새의 공간에 서게 되는 우리 자신의 뜻밖의 경험은 마치 슈타이너가 그랬듯이 녹색의 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 전혜숙
Vol.20060305c | 최원정展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