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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220_월요일_06:00pm
엄갤러리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5-7번지 Tel. 02_515_3970 www.umgallery.co.kr
아름다운 상처(The Beautiful Hurt)_세계와 마음, 그 안에 자리하는 보이지 않는 빛(Outer World, Mind, and Invisible Light in it) ● 이지아의 회화는 극도의 단단한 안정감을 갖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파문이 일고, 거센 바람이 지나며, 뜨거운 채찍에 맞는 것만 같은 불가사의한 감정을 일으키는 매력을 지닌다. 아마도 밝은 톤의 바탕을 유려한 화면구성으로 분할하며 훑고 가는 선묘와 그 선묘의 가장자리에서 용광로만큼 뜨거운 부글거림이 주는 표면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란 단순히 표면에 나타난 필력과 색상, 배치와도 같은 형식미와 그에 대한 우리의 지각작용뿐만은 아니다. 예술이란 예술가가 세계를 이해하고 꿰뚫어보는 방법이자 그 세계에서 자신이 처한 곳을 발견하는 것이다. ● 이지아 회화세계의 세가지 요소는 바탕과 선묘, 그리고 선묘 속에서 언뜻 보이는 아련한 빛이다.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이 세계를 경험하면서 세계에 대한 관점이 생긴다. 그러나 이 삶의 과정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이 극렬한 도가니와 같은 삶의 투쟁은 우리에게 상흔을 남기고 우리는 이러한 상처 때문에 상실감에 젖기도 하고 좌절하는가 하면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이 삶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양태 속에서 예술가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할 의무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지아가 상정하는 삶의 의미란 다름 아닌 외부세계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상처와 상흔 속에 진정한 빛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철학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s)'에서 "우리는 균열이 전혀 없는 엷은 얼음 위에 올라와 있다. 어느 의미에서 그 조건이란 참으로 이상적이되, 그러나 이상적이기 때문에서라도 우리는 걸을 수 없다. 우리는 걷고 싶고 따라서 균열이 필요하다. 거친 땅으로 되돌아가라!"라고 말한 취지와 정확히 같다. 투명한 크리스탈과도 같은 완전무결하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균열'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얼음장이 위험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마찰이 있어야 우리는 걸을 수 있고, 날 수도 있으며, 사랑을 할 수 있고, 이성간에 입도 맞출 수 있다. 만일 중력과 같은 강렬한 저항이 없다면 우리는 우주 저편을 배회하다 숨막혀 죽을 수밖에 없다.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균열'이나 칸트가 말하는 '저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칠기 짝이 없는 균열과 마찰과 저항이 필요하다. ● 이지아는 순백의 바탕이나 아름답게 물든 바탕을 만들어낸다. 이는 크리스탈의 세계와도 같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아름다움에서 안정과 나태를 구하지 않는다. 그는 그 바탕에 채찍과도 같은 아픔과 황산과도 같은 뜨거운 느낌의 '균열'과 '저항'을 아로새긴다. 그는 세계의 '저항'과 '균열'이 의미하는 바를 깨우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균열'과 '저항'이 아프게 느껴질 즈음에 아득한 저편으로 이내 빛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그는 이 힘겨운 우리의 상처를 아름답게 승화시켰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에 진정한 빛이 든다고 믿는다. 우리 마음에 진정한 빛이 든다는 그 믿음이야말로 이지아가 보는 세계와 삶의 의미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보는 하늘이자 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 이진명
Vol.20060221c | 이지아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