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인- 너와 나의 초상들

이영조展 / LEEYOUNGJO / 李永照 / painting   2005_1130 ▶ 2005_1206

이영조_익명인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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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30_수요일_06:00pm

후원_서울문화재단 'NArT 2005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목인 갤러리 서울 종로구 견지동 83번지 Tel. 02_722_5055

이영조의 '뒤통수' 연작 _ 정면을 직시할 수 없었던 어느 딸 이야기 ● 예기치 않게도, 이야기의 전모는 '부재중인' 아버지 한 사람으로부터 도입된다. 해를 넘겨 제작된 각양각색의 화면 모두에 들어찬 하고많은 중년 사내들의 존재가 실은 단 한사람으로부터 혹은 그의 부재에 대한 작가 이영조의 편집적 확인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다. 이후 제작된 중년 사내 아닌 뒷모습들도 결과적으로 그 부산물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작품의 몸통으로 진입하기! 에 앞서, 전작(全作)의 아이덴티티부터 점검해볼까 한다. 먼저 첫 인상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 화면 구성이야말로 이영조의 아이덴티티라 불러야 할 것이다. 강한 콘트라스트와 촘촘하고 균질하게 마감된 표면의 단순성이 시지각에 깊숙이 각인된다. 또 금번 출품작을 비롯하여 대체로 그가 취해온, 흑백으로 환원된 채색 구사는 작가의 감정은 제어하되 관찰자의 감정이입은 대체로 용인하는 가치중립적 색조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내세울 만한 키워드는 단연 고색창연한 목판본 전도(全圖)를 배경으로 현대인의 고만고만한 뒤통수들을 덩그러니 화면 정중앙에 놓는 배치법이며, 또 햇수로 벌써 9년째 동거중인 '익명인'의 지속적 고집이다.

이영조_익명인_캔버스에 유채_162×97cm_2004
이영조_익명인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3

97년부터 시작된 '익명인' 연작이야말로 모두에서 전제한 부재중인 그녀의 아버지와 연관을 맺는다. 하나의 특수를 통해 보편을 거론해온 것이 예술의 일반적 서술 기법이라면, 이영조는 어떤 점에서 그것과 정반대의 길로 역주행 했다. 얼핏 '익명적' 보편을 무작위로 들여와 누구나 다 알법한 언술을 던지는 듯하나, 실상은 정반대의 서사 다시 말해서 그녀 특수한 개인사를 읊조린다. 풀어 말하면 그녀가 제시! 하는 반복적인 보편(지도 위에 뒤통수를 보이는 하고많은 익명인들)은 단 ? 毬だ?존재(아버지)로 수렴되고 있다. 물론 작가노트에는 축 늘어진 중년사내의 뒤 모습을 두고 "아버지, 남편, 아들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고달픈 직장 남성을 표현." 이라고 진술하고 있지만 이건 하나의 연막전이며 어떤 점에서, 맘에도 없는 소리일 지도 모른다. 물론 그림 속 사내들 다수의 고개 숙인 뒷모습은 그 자체로 무력한 현대남성 일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듯 하나마나 한 얘기로 작품의 취지를 무표정하고 경직되게 설명하는 것은 작가 개인의 특수한 개인사를 슬쩍 비껴가려는 전술에 다름 아니다. 이영조는 그림 속 인물들처럼 정면 직시에 익숙해있지 못하다. 남의 사사로운 가족사를 전시 서문을 빌어 들춰내고 싶진 않지만, 무색무취한 해설 속에 갇혀있는 그녀의 9년 지기, '익명인'을 구출하려면 최소한의 단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부분 역시 작가노트에 잠시 언급되는데, "낯선 이의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 계기로부터 이영조의 '뒷통수 연작'이 시작된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쩐지 불충분한 설명 같다. 그녀에게 '어떤' 아버지였기에, 익명적 타인의 식별 불가능한 뒷모습 일반을 통해 ? 灌湺?마르지 않는(무려 9년!)소재를 제공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부분이 시원히 해명되지 않는다.

이영조_익명인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03
이영조_익명인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80.3×53cm_2003

작가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정감 어린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남 출신 사내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위압적 가부장의 전범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위에 절대적 가부장으로 군림하던 부친은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몸져누워, 이영조의 '익명인' 연작이 발표되기 1년 전(96년) 타계하시기 까지, 살아생전의 위용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무력한 사내로 성장기 딸의 눈에 비쳐지신 모양이다. 어쩌면 이 과정은 세대를 달리하는 성장기의 딸과 전근대적 부모세대의 필연적 충돌과 극복이, 당사자(이영조)의 자력에 의하지 않고, 외부 요인에 의해 우연히도 해결되어버린 국면과 같다. 말하자면 이영조는 정상적인 성장통의 기회를 외부로부터 박탈당한 모양새가 된다. 해서 이듬해인 97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권위적 부성(父性)을 거리를 오가는 익명적 행인의 뒷모습을 통해 발견하고 재현한다. 이것은 그녀가 스스로 구성한 인위적인 성장통이다. 하지만 이 오랜 연작에서도 딸은 아버지를 끝내 똑바로 직시하지 못한다. 아니 직시할 수 없었다고 ? 瞞?옳다. 생전에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르네 마그리트 의 작품「재현되지 않다 La Reproduction Interdit (1937)」는 거울 앞에 선 청년의 뒷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하지만 청년이 마주한 거울은 그의 정면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그의 뒷모습을 동일하게 재현하고 있다. 광선의 경로를 역행하고, 정면의 출현을 부인하는 이 그림의 비논리처럼, 이영조의 '익명인' 연작 또한 세상의 모든 정면에 저항한다. 보편적 정면의 재현이 불편부당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현실 공간에서 체험한 부녀간 관계 속에서 정면 직시라는 설정이 애초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영조_익명인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04
이영조_익명인_전시장 전경_2002-2004

'익명인' 연작은 실제로 그녀와의 관계에서 정면을 허락하지 않았던 권위적 부친상에 대한 재현이자, 말년에 초라한 생을 마감한 또 다른 나약한 부친상에 대한 조가(弔歌)의 기능을 수행한다. 한편 익명인 연작의 모든 화면 바탕으로 설정된, 전근대적 목판 전도(全圖)는 현대인의 뒷모습과 아이러니하게도 잘 어울린다. 구식 바탕에 신식 등장인물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과거와 현대 간의 세대 충돌로 읽어내긴 어려울 뿐 아니라 어울리지도 않는데, 그 까닭은 그 조합이 시각적으로 안정된 화면 구성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시대적 지도? ?모양이 항상 그렇듯, 거미줄마냥 간선도로와 해안선이 오가는 접점 위로 단독 인물상 또는 군상이, 바둑판의 종횡 위에 올려진 기석(碁石)처럼 균형 잡힌 구도를 조형화 시켜, 관람자의 시각적 유쾌함을 유발한다. 지도상의 각종 지선(地線)은 군상 간을 연결하는 혈관이나 유선 연결망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요즘 이영조는 새 작업을 구상중이다. 9년에 걸친 위압적 아버지 지우기와 실추된 아버지 그리기의 반복이 끝나가고 있는 중이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많다. 1882년 정신과의사 요제프 브로이어(Josef Breuer)는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1년간 간호한 뒤 히스테리 증세가 나타난 "안나 O. 치료(Treatment of Anna O.)"사례를 통해 환자의 증세는 무의식에서 촉발되며, 억압된 것이 의식적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병세가 사라진다는, 세기 초 정신분석학 수립에 중대한 힌트를 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후 병세가 회복된 안나 O.는 담당의사인 브로이어를 사랑하고 만다.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적 애착이 의사에게 이행되는 과정을 지켜본 프로이트는 이 현상을 전이(transference)라고 이름 붙였다. 이미 100년도 훨씬 더 지난 사례연구를 ! 지금 이 상황에 효과적으로 연관 짓는 건 무리가 많이 따르리라. 다만 부성 의 그늘에서 탈피 중인 이영조의 최근 작업 방향과, 이런 변화 와중에도 '뒷모습' 아이콘을 고집하는 그녀의 집착은 위에서 말한바 '전이'의 흔적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현상이다. ■ 반이정

Vol.20051130b | 이영조展 / LEEYOUNGJO / 李永照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