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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103_목요일_06:00pm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55 gallery.munhwa.co.kr
시대의 자화상으로서의 식물원 ● 자연은 인간이 체험한 범위 안에서 그 이해의 폭을 허락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연의 모습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보편적 이미지의 가상공간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인간이 주체가 된 인위적 공간으로 이해되며 진정한 자연의 모습(공간)은 아닌 것이다. 식물원은 자연의 일부분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식물을 대상으로 하는 인공적 자연공간이다.
이곳에 가면 세계 곳곳의 다양한 식물들과 울창한 아열대 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빽빽하게 옮겨진 생명체들은 흡사 밀림 속에 서 있는 착각을 들게 하고 있다. 밀림이라는 낮선 장소의 이미지는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연관시킬 수 있으며 식물원이 자연의 보호차원 혹은 인간의 취미(연구)를 위하여 조성되었지만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삶 속에서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 식물원이 내뿜어 내는 습한 기운과 미묘한 호흡은 자연의 숨소리라기보다는 도시 속에서 서로가 부대끼며 내뿜는 열기와 같음을 본다. 키워지고 보살펴지는 나약한 존재지만 그 속에서 자생력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 이용석
붉은 온실 ● 하늘까지 뻗어 무성하나 그 끝은 온실 유리벽에 맞닿아 있다. 화면에 떠다니는 풍선 역시 자유로운 듯하지만 결국 벽과 부딪힐 것이다. 이는 구속인가. 인간이 끝없이 갈구해 온 자유에 대한 반기인가. ● 주먹(朱墨)을 사용하여 담담히 그려나간 붉은 온실 시리즈의 '빨강'은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널따란 화면덕분인지, 연기처럼 퍼져나간 관엽 식물의 무성함 덕분인지, 작가 이용석의 붉은 온실은 오히려 편안하고 따스하다. 구속이나 생경함으로 느껴질 붉은 온실이 오히려 우리에게 안도감을 제공하는 것은 어찌된 이유인가. 작가가 고안한 담담한 온실 그대로의 장치가 대부분 도시인-혹은 문명인인 감상자들로 하여금 폭넓은 심정적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일 것이다.
무수한 문명의 혜택을 받고있는 도시인들에게 안온하고 따스한 기운은 온실의 구속과 과잉보호라는 반대급부와는 또 다른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다. 야생의 자유분방함을 갈구하면서도 그 폭력성과 불편함을 두려워하는 도시인의 삶과 희망이 이 온실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 도시인들의 이상향은 단편적이고 결말을 알 수 없는 교묘한 장치들로 표현된다. 떠다니고 있으나 곧 멈춰질 풍선, 얼룩말로 짐작되나 그 형상을 드러내지 않은 동물의 둔부, 고화(古畵)에서나 봄직한 엉뚱한 괴석들. 로또의 무모함을 꿈꾸는 도시인의 온전치 못한 이상의 파편들이 주먹(朱墨)의 상서로움과 비밀스러운 암시를 빌어 그림의 몽롱함을 더한다. 아울러 이질적 세계로 열려진 유일한 통로 방풍구가 일상탈출을 꿈꾸는 도시인들의 일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작가의 도시인을 향한 담담한 시선은 온실을 통해 도시그대로의 표현보다 더 도시다운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 성윤진
Vol.20051103c | 이용석 주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