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회화-촉각적 환영

이지은 개인展   2005_1027 ▶ 2005_1113 / 월요일 휴관

이지은_무제_EVA 스펀지_60×65×1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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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2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이지은의 작업은 사물의 형상에 대한 시각적 또는 촉각적 반추에서 비롯된다. 사물의 실체와 허상의 경계를 묻는 그의 작업은 우선 조각적 형태의 네거티브적 전환을 기본으로 한다. 선물상자에서 내용물을 빼내고 남은 주형틀을 보면서 우리는 물건 그 자체보다 그것의 빈자리에서 그 사물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되듯이, 입체조형 작가인 이지은은 사물의 실루엣이 환기시키는 물체의 형상, 존재의 실체를 양각과 음각이 전치된 입체물로 조형화한다. ● 양각과 음각의 전치된 이지은의 입체작품은 제작기법면에서도 전통적인 조각과 소조의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재료를 깎아 나가던, 점토를 붙여나가던, 전통적인 조각의 어법에서 사물의 형상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삼차원적인 양괴감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이지은은 사물의 외형을 일정한 간격으로 수평으로 분할하여, 각 절단면에 사물의 윤곽선을 새기고 파낸 다음, 그렇게 빈 공간으로 포착된 사물의 단면들을 다시 수직으로 쌓아나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절단과 분할, 집적과 쌓기의 대립적인 제작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지은은 대상의 양각과 음각을 전환할 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한 평면적 분석과 입체적 누적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지은_무제_EVA 스펀지_60×60×10cm_2005

이러한 이지은식 형태인식과 제작방식이 가장 명료하게 구체화된 것은 투명 PVC비닐을 이용한 물고기 작업이 아니었을까.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형상을 투명 비닐의 절단면으로 포착한 이 작품은 물고기의 형태와 움직임의 궤적을 투명한 빈 공간으로 가시화했다. 투명한 비닐을 오려낸 빈 공간은 사라진 정물에 대한 기억, 공간을 움직여간 대상의 흔적, 사물의 그림자를 비닐의 단층에 반사되는 빛의 작용을 통해 투명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촉각적이면서도 시각적인 형태감으로 결정화(結晶化)했다. ● 부재를 통한 존재의 증명이라는 모순율은 원색의 스펀지를 사용한 최근의 작업에도 지속된다. 그러나 투명한 비닐 대신 화려한 원색의 압축 스펀지를 사용하면서 회화적인 색채의 요소가 새로운 조형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비닐작업에서는 색채 요소가 배제된 채로, 잘라낸 비닐의 단층에 반사되는 빛의 작용을 통해 비형태의 형태를 가시화했다면, 스펀지 작업에서는 스펀지 층 자체의 색채 구성이 중요한 조형요소로 부각되면서 층별로 색채를 달리한 음각과 양각의 형태가 서로 교호하는 색채의 드로잉 효과가 연출되었다.

이지은_무제_EVA 스펀지_40×40×10cm_2005

이지은식 형상읽기의 즐거움은 이제 EVA 스펀지의 화려한 원색으로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파낸 부분과 남겨진 부분 간의 요철관계에 의해서만 파악되던 형태 요소가 색채에 의한 선적 드로잉의 요소와 중첩되면서, 이제 그의 작업은 촉각적 형태감과 시각적 색채감이 관람자의 시점과 빛의 조건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감각적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사물 자체를 묘사하기보다 대상에 대한 인식과 재현의 문제에 주목한 입체주의자들이 정물을 대상으로 무채색의 형태파악에 주력했듯이, 이지은의 형태분석이 색채를 배제한 투명 비닐의 정물 작업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입체주의자들이 정물에서 인물로 주제를 확대했듯이, 이지은 역시 최근 작업에 인물상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윤곽선만으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인물상이나 서로 중첩된 정물들을 포착하기 위해서 이지은이 발견한 해법이 최근에 사용하기 시작한 색채 요소에 있다는 점이다.

이지은_무제_EVA 스펀지_39×30×10cm_2005

일견 이지은의 작업방식은 그림자로 화면을 구성하는 실루엣 애니메이션과 유사한데, 미셀 오슬로의 『프린스 앤 프린세스』를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놀라운 시각적 체험을 기억할 것이다. 외곽선만으로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한계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림자는 허상이지만, 빛의 투사로 막에 드리운 그림자는 막 뒤에 존재하는 실체를 강하게 환기시킨다. 마찬가지로 회화처럼 벽에 걸린 이지은의 작품에서 화려한 색채의 드로잉은 빛의 개입에 따라 그것이 삼차원적인 입체형상임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지은_무제_EVA 스펀지_39×30×10cm_2005

이러한 이지은 작업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시각적인 것이 촉각적으로 전환되고, 입체적인 것이 회화적인 색의 요소로 환기되는 감각의 지속적인 전치 과정 속에 발생한다. 윤곽선만으로 파악한 형태감은 단순하고 제한적이지만 구체적인 세부묘사를 제거하기에 그만큼 신비롭고 시적이다. 조각과 회화, 입체와 평면, 공간과 선이 교차하는 이지은의 작업은 이처럼 회화와 조각의 성립조건과 형성 과정에 대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관찰하면 할수록 시각적 인식과 촉각적 체험이 연속적으로 서로를 대체하는 순환적인 인식의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권영진

Vol.20051027a | 이지은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