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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1026_수요일_06:00pm
개막 부대행사_special song_테너 옥상훈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지난 2003년 신장식은 '10년의 그리움, 금강산'이란 주제로 지난 십년간 한눈팔지 않고 꾸준하게 추구해온 금강산그림을 중간 결산하는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1998년 금강산이 열리기 이전부터 금강산을 화두삼아 그려온 작품들에 나타나던 활달하고 생동하는 필치와 밝고 경쾌한 색채와 어우러진 낙천적인 시각이 바야흐로 무르익어 농숙(濃熟)의 경지에 이른 그의 금강산 그림은 금강산이란 한 대상으로 향한 십년간의 사랑이 이루어낸 성과였음에 분명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폐막식 기획팀에 참가하면서 전통의 계승에 심혈을 기울여온 그가 비록 사진으로 보았던 것이나마 금강산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운명처럼 매달려온 화제(畵題)를 두루 망라한 이 작품들은 한편으로 작가 자신에게도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는 자기점검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 그 결과가 이번 전시에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으로 대경산수(大景山水)를 보듯 넓게 펼쳐진 풍경과 다소 장식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보다 실경에 충실하려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 바 이는 금강산의 진상(眞相)을 보다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려는 의도의 발현이자 지난 전시 이후에도 세 차례 더 금강산을 답사하며 스케치한 진경에 충실하고자 한 태도가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전시의 주제를 '십년의 그리움'으로부터 '금강산의 빛'으로 보다 내면화시킨 것도 금강산을 정서적으로 수용하던 차원에서 실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상징적 의미를 강화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빛은 서구의 바로크나 인상주의 회화가 추구했던 빛과 색채와 상통하는 부분도 있으나 그의 작품은 시각적 투명성 못지않게 금강산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되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에 오히려 보다 정신적인 차원에서 채택한 것임에 분명하다. 즉, 그의 풍경화는 자연의 외경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역사와 그것을 넘어서는 이상(理想)에의 동경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먼저 금강산이란 이름 자체가 불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발원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며 변함없는 진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선종의 대표적인 경전인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密經)은 금강과 같이 견고하고 능히 일체를 끊어 없애는 진리의 말씀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그가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금강산을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금강산을 그리는 그 시간만은 그 산세를 통해 변함없는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더욱이 정치적, 이념적 갈등에 의해 야기된 남북분단이란 역사적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금강산이기에 그가 금강산을 단지 아름다운 대상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이러한 분쟁을 극복할 수 있는 상징적 대안으로 여기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쟁의 참화를 겪었지만 여전히 유장한 산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가 천착하는 금강산의 빛은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가시광선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려낸 금강산의 사계는 여전히 유장하고 시원하지만 그 속에는 온갖 역사적 질곡과 영광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어려움을 단지 고통과 절망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을 본다. 빛은 그러므로 금강산을 비추는 광선일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가 잃어서는 안될 희망의 빛이다. 굽이치는 산맥, 그 앞에 두드러진 상록의 소나무, 눈 덮인 고즈넉한 봉우리와 계곡이 근경과 원경으로 물결치는 그의 그림에서 역시 그의 낙관적인 세계관을 읽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그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엄연히 존재하는 모순과 질곡을 망각하려는 '회피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책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금강산, 별도의 여행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하고, 제한된 지역만 답사할 수 있는 현실의 한계는 그가 채택한 소재에서 어렴풋하게 드러나고 있다. 말하자면 그가 답사한 장소만을 그릴 수 있었다는데서 분단의 비극은 여전히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단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금강산의 풍경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켜켜이 쌓인 시간의 누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번 전시에 그가 많이 그린 세존봉(世尊峰) 너머에 있는 금강산의 다른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은 통일의 희망과 맞닿아 있다. 십년을 그런 기다림으로 금강산을 그려왔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금강산은 여전히 미완의 프로젝트이다.
혹자는 이 작가가 십년 넘도록 금강산을 그리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조급해 할 이유는 없다. 금강산을 가장 금강산답게 표현한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삼십대 중반에 스승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을 따라 금강산을 다녀온 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신묘년풍악도첩_辛卯年楓岳圖帖」 이래 「해악전신첩_海嶽傳神帖」을 거쳐 마침내 진경산수를 이룩하여 타계할 때까지 주옥같은 금강산그림을 남겼으니 정선이야말로 사십 여년 동안 금강산에 전념한 위대한 화가인 것이다. 이런 점을 주목할 때 신장식의 금강산 그림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그의 과제이자 풍경화를 시대에 뒤떨어진 장르라 하여 외면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리는 소명의 실천이라 주장한들 과장된 수사(修辭)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금강산의 빛이 통일의 미래를 비추는 빛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세계를 더욱 옹골차게 가다듬는 서광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도 지나친 기대는 아니리라. 이 전시를 계기로 그가 집요하게 추구해온 금강산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심화시켜 독자적 내용과 양식을 확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최태만
Vol.20051026e | 신장식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