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그리움, 금강산

신장식 회화展   2003_1117 ▶ 2003_1227

신장식_금강산 만물상-겨울_캔버스에 한지, 아크릴채색_81×162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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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1117_월요일_02:00pm_금호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_736_4371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열 번 정도 해가 바뀌면 세월의 때가 묻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예술가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파고든다는 것은 그 세월의 길이 만큼의 가치를 두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장식 개인의 작품세계 맥락 안에서 보자면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 동안 금강산을 그려온 그의 변천사를 일별 해보는 자리라는 점에서 여느 때와는 다른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가의 마흔 전후 작품세계를 분별해 굵직한 흔적을 읽어내는 자리인 것이다. ● 신장식의 금강산 그림 10년의 변천을 되돌아보는 일은 개인의 예술적 여정을 살펴보는 일 이상의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금단의 땅이었던 금강산의 바닷길이 열린 것도 벌써 5년이 지난 일이다. 이제는 땅길 까지 이어졌으니 이런 격변의 과정은 앞으로 더욱더 시간차를 좁히며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년전부터 금강산을 그리기 시작한 신장식은 예술가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인 예지력을 가진 작가로 꼽을 만하다. 금강산의 회화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그 문화정치적 무게에 비추어보면 냉엄한 분단현실과 직면한 이 시대의 화가가 그려낸 '10년의 그리움'은 그 해석의 지평이 훨씬 넓게 열릴 수 있다.

신장식_금강산 천화대_캔버스에 한지, 아크릴채색_120×240cm_2003_부분
신장식_금강산 천화대_캔버스에 한지, 아크릴채색_120×240cm_2003

돌이켜보면 21세기 초엽인 지금 금강산을 그린다는 사실 이면에 깔린 한국 현대사의 암울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었다. 특히 분단상황에서 벌어진 비상식과 억압이 어디 한두가지였겠는가. 그 어두움을 깨쳐나가기 시작하던 1980년대 말의 통일운동 혹은 남북관계를 생각해보면 그저 아득한 먼 옛이야기 같기만 하다. 1988년과 1989년 여름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당시 각각 6.10과 8.15를 계기로 통일운동을 벌였던 전대협 시절의 학생운동은 연와(連臥)투쟁이라는 방식까지 동원해가며 폭넓게 통일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판문점으로 가는 길이 막힌 학생들이 뜨거운 아스팔트길에 인간사슬을 이뤄 드러눕는 비상한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문익환, 임수경 등의 방북으로 이어진 일련의 통일운동은 통일논의 자체를 불온시했던 억압적인 상황을 깨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금강산 육로관광이나 수백 명의 평양방문단 뉴스를 접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이런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딴나라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아스팔트에 드러누워 한 명씩 차례로 인간사슬의 한 고리씩이 뜯겨져 나가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차라리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 시절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중에 대단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수만 명이 그야말로 스타일리쉬하게 팔을 내뻗으며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비장하고 일사분란하게 쟁가를 부르며 결연하게 통일을 이야기하던 때였다. 당시 여고생들의 얼짱이었던 임종석 전대협의장의 화려한 대중연설이나 지금은 영화배우를 하고 있는 김중기 학형의 뜨거운 눈물은 그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기호들이다. 이런 격렬하고 진중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축제를 벌이듯 동심으로 돌아가 유쾌하게 부르던 노래가 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막연하고 아득하기만 하던 통일 이야기를 친숙하게 풀어내는 일종의 대중친화적인 이벤트였다. 이렇듯 비장함 속에서도 일각의 낭만적 감성으로 자리잡았던 금강산을 찾아가는 일이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관광상품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신장식_금강산 천화대 소나무_캔버스에 한지, 아크릴채색_120×240cm_2003

신장식의 금강산 그림은 이렇듯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재편되고 있는 정치사회적 변동 과정을 관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장식 읽기의 초점을 회화적 관심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연계된 미술의 자리매김'이라는 관점으로 넓혀 보고자 한다. 애초에 그의 금강산그림은 회화적 여정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게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중대 사안이다. 생동감과 신명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담아내는 하나의 텍스트로서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금강산이어도 좋고 백두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이어도 무방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언급한 이런 산들은 이미 많은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풍경으로 자리잡아왔다는 점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 신장식은 전통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소재들을 중심으로 전개하던 회화적 항로를 금강산으로 정리해 나갔다. 십 년 전에 시작된 이 일은 회화적 가치로서의 금강산 그림에 대한 연구를 동반한 것이었다. 당시의 그림들은 관념적인 산수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실체와 형상 사이의 연관성이 희박했으므로 주변의 의아한 시선을 받았을 법하다. 이런 점을 넘어서려는 작가의 노력은 금강산 옛 그림들에 대한 연구와 사진자료의 수집 등으로 나타났지만 현장을 체험하지 않은 풍경화란 어쩔 수 없이 가슴속의 그림이 아닌 머리 속의 그림일 가능성이 높았다. 체험을 통한 감성적 경험을 풀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자기 지시적인 모더니즘 미술의 언명에 따라 회화성을 높이는 몇 가지 장치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재로 그의 1990년대 중반 작품에는 이런 추정을 예시하는 장치들이 적절히 공존하고 있다. 당시의 금강산 그림들은 촛불이나 격자무늬가 그려진 좌우대칭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시각 장치물에 불과했다. 온전히 산의 풍경만을 담은 것이라 할지라도 화면에 부착된 볼트-너트나 십자모양의 반복되는 기호들과 공존하고 있었으며 자유분방한 뿌리기 기법 속에 가려진 풍경이었다. 어슴푸레하게 넘어가는 색면과 두루뭉실한 윤곽의 금강산 그림들은 구체성을 담지 않은 시각 기호 그 자체였다.

신장식_금강산에서 바라본 동해바다_캔버스에 한지, 아크릴채색_81×162cm_2003

그가 금강산을 최초로 그린 것은 1993년이었고,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금강산을 주제로 열었다. 이 가운데 1996년의 개인전 도록에 실린 담배를 피워 물고 먼 산을 바라보는 작가의 흑백 사진은 관념산수와 진경산수 사이의 명확한 갈림길에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단상황을 보여주는 휴전선 철책 앞에 서 있는 한 화가의 모습은 마치 조만간 저 철책선을 넘어서 금강산으로 갈 것을 염원하거나 혹은 예감한 듯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 요컨대 당시의 신장식의 금강산은 회화적 목표에 압도되어 기의를 유보한 상태일 수밖에 없었지만, 재현적 회화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자폐적인 형식주의 모더니즘으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금강산을 그리되 회화적 장치 속에 묻어둔 금강산으로 전용하면서도 그 장치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후의 작업들을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금강산 그림으로 끌고 나갈 가능성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 이 시기의 금강산 그림들에 대해 미술평론가 심상용은 신장식식 금강산 그림이 금강산의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보다는 평면으로의 복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읽어 냈다. 이렇듯 관념적인 기호로서의 소재들 가운데 하나였던 금강산의 의미는 시사평론가 유시민이 과감하게 언급한 '신장식에게 있어 금강산은 미학적 소통의 도구일 뿐'이라는 말속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꿈틀거리며 생동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신장식과 금강산은 관념적인 시각적 기호 이상의 것으로 전환하면서 점점 더 실체와의 구체적인 결합정도를 높여 온 것 같다.

신장식_금강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_캔버스에 한지, 아크릴채색_181×454cm_2003

금강산 방문 이후의 금강산 그림은 여러모로 그 이전과 다르다. 우선 관념산수를 진경산수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작업들은 작가가 직접 금강산을 찾아 사생을 하고 사진을 남겨 온 결과물을 토대로 제작한 금강산 진경 작업인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관념에서 진경으로의 전환'은 '실경과 그림 사이의 합일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앞서 말했지만 그는 실경 이전부터 금강산을 그려오면서 나름의 독특한 조형어법을 만들어왔는데 이것이 진경회화와 접점을 이루면서 새로운 경지의 미적 전유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금강산을 하나의 상징으로 차용하면서 금강산 그림을 시작했으며, 금강산을 통해 희망과 생동감을 얘기해왔다. 그는 금강산 그림을 그리기 이전부터 아리랑 연작을 통해서 전통의 가치와 미감을 현대미술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그의 전통의 재해석은 광화문, 근정전이나 청사초롱의 이미지 등에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조형적 방법의 변주를 다양하게 구사하던 그에게 금강산은 단순한 풍경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 신작들에서 보이는 회화적 변화들은 무엇보다도 신장식 특유의 뿌리기 기법을 줄이고 붓질의 묘미를 살려나간다는 데 있다. 화면을 채운 형상 위에 뿌리고 다시 형상을 잡은 후 다시 뿌리기를 반복했던 전형적인 그리기 방식에 비해, 최근작들은 바위와 나무 등을 그려낸 붓질 자체의 맛을 살리면서 뿌리기를 절제하거나 아예 가미하지 않은 그림들도 있다. 가히 '유화붓 준법'이라 이름할만한 신장식의 붓질 실험인 것이다. 종이와 먹과 모필을 가지고 일필휘지하던 옛 그림의 방식을 생각해보면 캔버스 위에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뻣뻣한 유화붓의 필치를 남겨둔 이 그림들은 각별한 관심의 대상일 수 있다. 수채화처럼 얕게 그린 이 풍경화들은 금강산을 드나들면서 실경사생을 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로 보인다. 발색이 강한 청색안료로 그린 윤곽선들과 점묘들은 뿌리기에 비견되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신작들이 전통 수묵채색화의 장점을 일부 끌어내고 있다는 점 또한 아주 흥미롭다. 맥의 흐름에 의거해서 산의 형상을 그려내고 골짜기를 여백의 방법으로 비워둔 사실적 그리기 법으로서의 유효성을 끄집어낸 것이다.

신장식_초겨울의 양지대_캔버스에 한지, 아크릴채색_45.5×91cm_2003

색면을 중심으로 분할되던 화면이 훨씬 사실적 그리기에 가까워졌다는 것 또한 이전과 다른 점이다. 색면의 요소들보다 점과 선의 요소들이 많아진 것이다. 뿌리기 방식에 비해 점묘와 선묘를 살려둔 것은 관념으로 금강산을 그리면서 관념성의 이면을 자기 지시적인 회화성으로 보완하려했던 이전의 것들과 확실히 변별되는 점이 있다. ● 자신이 그리고 있는 대상물이 스스로 경험한 세계라는 사실은 그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한 자신감 넘치는 그리기로 이어졌다. 이런 점은 『금강산 만물상 - 1998.11.21』이라는 5미터 짜리 기념비적인 대작에서 완연하게 드러난다. 실체에 근거를 두고 그린 그림들은 이렇게 화가의 손길을 이전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4.5미터에 달하는 큰 그림 『금강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의 경우, 광각 렌즈로도 포착할 수 없는 대관산수를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해서 컴퓨터로 보정한 후에 그것을 밑그림에 활용한 점을 보면 작가는 형태의 왜곡을 최대한 줄이고 사실적 표현에 근거해서 진경에 다가서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역으로 작가가 관찰한 금강산과 백두대간이라는 대상물에 대한 시각적인 관심과 더불어 이 땅의 기(氣)를 읽어내려는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그림의 대상인 산 자체의 모습을 어떻게 화면위로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결국 관념적 기호 또는 소재로서의 금강산을 실경 금강산으로 대체했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일 것이다. ● 금강산을 매개로 생동하는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나아가 분단상황을 비롯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당대성과 현장성의 전취 과정은 신장식 그림이 포기할 수 없는 남다른 가능성이다. 이것은 상징과 실체의 합일을 통해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진정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나름의 독특한 조형어법과 금강산이라는 실체의 만남은 또 다른 차원의 예술적 완숙을 이끌어내고 있다. 신장식은 금강산을 하나의 상징으로 접근했다가 그 실체를 만났다. 산을 그리되 산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이른바 재현산수 작업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현대미술가' 신장식의 최대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 틀을 벗어나서 금강산의 실체를 읽어내는 데로 나아가고자 했다. ● 예술은 삶의 흔적이 아니던가. 예술가적 삶의 부산물이자 증거물로 예술 작품은 두고두고 그 시각적 물건을 만들어낸 작가의 존재와 운명을 같이한다. 지난 10년간 신장식은 혁신적인 조형실험을 통해 작가로서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보다는 자신의 조형어법이 담겨있는 좋은 그릇을 만들어 두고 그 그릇에 맞는 맑은 물을 찾아서 꾸준히 한 길을 매진해 왔다. 그 길에 대해 작가는 '작은 진정성이라도 있다면 부끄러움이 덜할 것 같다'는 말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0세기를 호령해왔던 예술의 자율성은 이제 그것만으로 독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작가 신장식의 작업들은 분단의 현실 아래서도 새로운 만남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통의 미학으로 지평을 넓혀왔다는 점에서 더 넓은 앞길을 든든하게 열어둔 셈이다. ■ 김준기

Vol.20031115a | 신장식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