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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914_수요일_06:00pm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5 www.gallerydoll.com
의인화된 삶의 무게 ●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등장하는 주인공 로트페터는 인간의 총에 맞아 우리에 갇힌 한 마리 원숭이에 지나지 않았으나 생존을 위해 동물의 절대적 자유를 포기하고 인간의 삶을 선택한다. 원숭이에서 인간으로의 기나긴 진화과정을 불과 5년만에 단축시켜버린 그의 비상한 능력은 사실 인간의 채찍질로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의 자유를 조금씩 망각하고 드넓은 삶의 문을 상실해 버린 원숭이 인간 로트페터의 눈에 비친 인간은 자유를 사랑하면서도 너무도 자주 그것을 기만하는 존재이다. 20세기 초 산업사회의 발전 속에 확대된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허무, 불안과 절망을 우화적으로 기술한 카프카의 소설은 21세기 초고속의 정보화사회를 사는 오늘, 맹목적 질주를 멈추고 소외된 자아를 돌아보게 한다.
조각가 설총식의 작품에 등장하는 고릴라, 원숭이, 개, 고양이, 두꺼비, 명태, 올빼미 등 다양한 동물군상은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감정과 표정을 지니며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멋진 양복과 구두로 그럴싸하게 인간의 외양을 갖추었으나 겁먹은 듯한 그들의 눈에는 상실한 과거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이 맺혀있다. 그러나 그들은 카프카의 동물들처럼 '절대적, 보편적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포획된' 존재들이며 규율화되고 굽신거리며 눈치보는, 관료사회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도시의 샐러리맨이다.
자본주의의 정글에서 먹이를 찾아 나서기 위해 원숭이처럼 요리조리 눈치보고 재주부리는 자, 두꺼비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복지부동 하는 자, 개처럼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절대충성을 맹세하는 자, 자본의 낚시줄에 명태처럼 힘없이 매달린 자... 이들은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자아를 상실한 도시인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홀로 천천히 날개짓하며 이들을 관찰하는 저 높은 곳의 올빼미, 그는 사색과 창작으로 밤을 지새우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이들 모두에게서 도시라는 무대 위에 씁쓸한 삶의 무게를 연기하는 희극배우들의 애잔함이 느껴진다.
설총식은 도시 월급쟁이들의 비애를 꾸준히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웅크리고 찌푸리고 잔뜩 야윈 회사원의 모습을 비약적으로 표현한 초기의 사실조각들에서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진지한 자세로 세상을 마주하였다면, 최근의 동물의인화 작업들은 희비극의 그물망같은 세상을 풍자와 해학의 마당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강렬한 색채를 구사함으로서 조각의 중량감이 감소되고 무거운 주제가 희극적 분위기로 전환된다면, 캐릭터의 심리를 하나의 표정으로 포착하고 그것을 섬세하게 묘사해내는 구상능력은 사실적 형상의 강력한 힘, 즉 명백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동물 속에서 인간을 관조하여 인간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동물의 특정적 습성에 비유하여 소외된 인간상을 우의와 은유로 표현하는 설총식의 작업은 우화문학의 서사성을 함의함으로서 조각의 표현기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 이번 전시는 예술 속에서 삶을 고민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예술형식을 모색하는 조각가 설총식의 작업세계를 돌아보는 자리이다. 그러나 오늘도 숨막히게 달려가는 우리를 발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저 동물군상의 갖가지 표정 속에서 말이다. ■ 김미금
Vol.20050914a | 설총식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