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0714_수요일_05:00pm
이 전시는 『홍익조각회』 '젊은 작가상'의 지원으로 마련되었습니다.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類猿人의 자리 만들기 ● 설총식의 두 번째 개인전 출품작들은 단일하게 개념화한 우화적 입체작업 다섯 점이다. 다섯 마리의 사람들은 유인원(類人猿)에 빗댄 유원인(類猿人)의 생존경쟁을 담고 있다. 원숭이를 닮은 사람들이 현대사회의 생존경쟁의 장에서 연출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직립보행이 가능한 유인원인 고릴라와 침팬지는 사람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동물인데, 이들의 골격에 사람의 모습을 담고 옷을 입힌 것이 이번에 선보이는 「자리 만들기」연작들이다. ● 한 때 많은 예술가들 사이에 억센 팔뚝의 노동자, 농민을 통해서 일하는 사람의 건강한 정서를 담으려는 도식이 횡행했다면, 근간에는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의 비애 섞인 모습들을 담아내는 것으로 또 다른 전형성을 만들어 냈다. 이 때 이전과 다른 모습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러스트레이션의 형상을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일러스트 기법들이 도입된 점이다. 설총식의 작업들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의인화한 동물의 형상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출품작 다섯 점은 동일한 모티브로 동물+사람 이미지를 자신감 있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위기에 처한 직장인의 모습을 통해서 현대인의 비애를 담아내는 일, 그 가운데서도 넥타이에 서양식 정장을 입은 남성 직장인의 모습으로 현대인을 다루는 것은 해석의 여지가 그리 넓지 않을 법도 하다. 설총식이 이 식상함을 넘어서는 방식은 의인화한 우화적 요소, 입체에 그림 그리기 또는 설치구조물을 통한 일련의 이야기 구조 등이다.
그림 그리는 소조각가(塑彫刻家)라는 점은 설총식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의 입체조형 작업은 그냥 덩어리와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그림을 그려넣음으로써 회화적 일루전을 입체 작품에 가미함으로써 비로소 마무리된다. 말하자면 그림 소조각(painting sculpture)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폴리코트 작업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브론즈의 느낌을 내기 위한 단순한 채색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설총식 작업은 입체조형 작업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그림 그리는 작업에 의해 보다 강렬한 네러티브를 획득한다. 머리카락과 잔털, 면도자국, 피부의 잔주름과 옷깃의 그림자들까지 섬세하게 그려 넣는 소조각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입체를 빚어내는 손길과 그 위에 색채와 형태를 불어넣는 붓질의 만남을 새삼 경이롭게 관찰하게 된다는 점. 설총식의 도드라지는 매력이다. ● 이러한 유원인 조형작업들은 일련의 파이프 구조물 장치를 통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일련의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실업의 우울함을 담은 실직자의 모습 뒤로 이직을 앞두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눈치를 보는 침팬지와 과감하게 다른 구조물로 건나가는 침팬지가 이어진다. 건너오는 침팬지를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며 방어기재를 작동하는 녀석이 있고, 그 옆에 명퇴를 앞둔 고릴라가 덩그러니 앉아있다. 유인원들의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공격성과 방어기재들을 확인하면서 유원인의 삶 속에도 생존경쟁의 원천적인 모습들이 베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설총식이라는 예술가 자신의 삶 속에도 조직사회의 경쟁관계가 침윤되어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드러내는 노동의 소외 현상은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노동 개념을 묶어두기 때문에 불안과 위기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설총식은 자신을 포함해서 현대인의 일반적인 삶의 전형을 가지고 소외된 노동의 이면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설총식의 「자리 만들기」 연작들이 총체적 세계 인식의 층위와 우화적 에피소드 사이에 드리운 커다란 간극을 넘어서려는 무모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가 노동의 소외와 고용불안의 증후군들을 다루는 것은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에 드리운 현대인의 깊은 신음을 토해내는 성찰의 과정이라는 점은, 예술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깊은 자기 투영의 산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김준기
냉정한 관찰자, 설총식 ● 설총식을 처음 본 것은 내가 신입생이던 1992년 초여름 홍익대학교, F동 4층의 조소과 1학년 실기실에서였다. 그는 2학기 복학을 앞두고 미리부터 실기실에 나와서 두상을 만들고 있었는데, 고작 두상을 만들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봉에 그 작은 손(그는 손이 유난히 작다)으로 퍽이나 야무지게 노끈을 매고 시작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행여나 나이 어린 후배들과 서먹할까봐, 혹은 그 사이 손이 무뎌졌을까봐 그랬는지 방학 중에도 늘 실기실을 지키며 성실함을 보였다. ● 그는 소박하고 겸손하며 친절했다. 그러나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같은 일을 했던 그의 존재는 내게 부담스런 모습이었다. 짱돌과 최루탄이 한판 굿을 벌이던 범민족대회 중에, 그 난리와 자신은 무관하다는 듯 무심하게 대회기념조형물을 완성해내던 모습이나, 포스트모더니즘과 설치미술이 궁금했던 우리들 사이에서 고집스럽다 싶도록 남자의 두상을 만들었던 것 역시 나를 불편하게 했던 모습 중 하나였다.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것은 그의 한결같음과 눌변(訥辯), 그리고 주변 상황에 대해 무심해 보이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작품과 달랐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을 뿐 그는 꾸준히 사회성 짙은 주제를 추구하고 있었고, 말을 아끼다보니 어눌해 보였을 뿐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예리했다. 결국 그는 보기와는 달리, 결코 나긋나긋하거나 투명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대하기가 편치 않았다. 다 옛날 일이지만 말이다. ● 내가 작품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해묵은 추억담을 들추어내 가며 굳이 편치 않음을 얘기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시선이 작품 속에 더욱 분명하고 정교하게 드러나면서 나의 불편함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관해서는 물론, 자신의 생각이나 일상적인 감정조차 말로 표현하는데 서툴고, 사람들 사이에 조용히 섞여있으면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 누구보다 달변이다. 드러낸 그의 시선은 날카롭기 그지없으며, 단번에 대중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자신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사회를 거침없이 펼쳐놓는다. 우화적 표현을 빌어 풀어낸 그의 언어는 특히 나 같은 회사원 출신들의 옆구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내 동료 중 한 사람은 그의 작품 「북어인간」(2002)을 보고! 어떻게 회사를 다녀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가! 라며 탄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그가 낚시 바늘에 꿰여 본 자가 아니라 낚시 바늘에 줄줄이 꿰인 사람들을 '보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냉정한 관찰자. 이것은 설총식의 작품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된다.
설총식의 이번 개인전은 2002년 『홍익조각회』에서 수여한 젊은작가상 수상에 따른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그가 첫 번째 개인전에서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의인화 연작 중 영장류로 구성되어있다. 그는 각각 실직자와 명예퇴직을 앞둔 자, 이직자, 그리고 이직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자와 경계하는 자로 5마리의 유인원들을 의인화하여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을 북어, 두꺼비, 개에 빗대더니 이젠 원숭이란 말이냐...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영장류의 행위적 속성이 그에게는 인간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 유인원들은 상호 시선을 주고받음으로써 보다 긴밀한 상황을 구성하고 있다. 축 처진 어깨로 힘없이 앉은 실직자와 어딘지 능글맞고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명퇴 예정자,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의미하듯 이직을 하면서도 양쪽의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 편할 것 없어 보이는 이직자. 설총식은 이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동정이나 비난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그는 인간사의 조직 원리를 풍자하되 비판은 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의 관심은 이들 중 어느 한 쪽에 쏠려있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 그대로의 인간사를 관찰하고 그 상황을 노출된 공간으로 이끌어 내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역시 담담하고도 냉정한 관찰자다. ● 좋은 작가의 성장과 변화과정을 줄곧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된다. 작품이 공격적이네, 시선이 냉정하네 운운하면서도 2년 전 나는 그의 작품을 구입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앞서 말했던 「북어인간」(2002)이다. 구매 동기도 순수했다. 처음 그 작품을 보았을 때부터 하나 갖고 싶었다. 비록 옆구리는 결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것이 변하게 마련인지라, 이제는 그 작품을 볼 때마다 은근히 작가 설총식이 더욱 분발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 이주원
Vol.20040715a | 설총식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