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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5_0527_금요일_05:00pm
김종영미술관 2005 오늘의 작가展
김종영미술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3-2번지 Tel. 02_3217_6484 www.kimchongyung.org
김주현의 자기확장법 : 관계 구축의 의미와 무의미에 관한 작은 생각 ● 김주현의 작품을 대할 때면 나는 늘 세계가 잠시 '일단정지(pause)' 상태에 놓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초기작에 해당하는 「원터치 조각」 (1989)에서부터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자기확장법」(2005)의 피어나는 꽃과도 같은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김주현의 작품세계 속에서 한결같이 만나게 되는 일종의 정서감각이다. 물론 실제 세계에서 시간은 멈추지 않지만, '일단정지'의 감각은 '멈춤(stop)'과는 달리, 곧 다시 재개될 활동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진행형의 멈춤이다. 정적인 상태와 동적인 상태 사이의 이 묘한 긴장감이 김주현이 제작한 모형들을 변화와 생성, 그리고 모든 가능한 접속의 변수들에 대해 열려있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 김주현의 작품 세계는 크게 보아 1996년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수 있다. 석고와 철판을 주로 이용하여 재료의 물성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던 전반기의 미니멀 감성의 작업, 그리고 경첩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기하적 형태에서 벗어나 자기확장을 시작한 후반기의 '탈미니멀' 혹은 '과학적 은유'의 작업이 그것이다. 구태여 나누자면 이렇게 나눌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이 '규칙에 의해 작품이 스스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작가가 참여하는 방식'에 있다는 점에서는 전기와 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의 석고와 철판을 이용한 작업들에서도 그녀는 재료들이 스스로의 물성과 중력을 통해 모양을 형성하도록 하였다. 비닐 틀을 철근으로 고정시킨 후 석고를 부어 굳힌 후 비닐틀을 떼어내어 만들었던 「육면체」나 「사각뿔」은 서구 미니멀 작가들이 선호하던 기하적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비닐 틀에 석고가 부어졌을 때의 중력 작용에 의해 매우 어눌한 표정을 갖게됨으로써 작업 과정 이전에 계획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형태의 결정성을 벗어난다. 「원형」, 「사각형」 등의 작업 역시 비닐 틀에 부은 석고를 굳기 전에 철판의 무게로 눌러 형태가 결정되도록 함으로써 최종 형태가 전적으로 작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부분이 있게 하였다. 이러한 우연성의 개입은 그녀의 작품에 미니멀 작가들의 단호한 기하적 형태와는 전적으로 다른 '유기체적 성격'을 부여한다. 그런데, 중력이나 재료의 무게 등은 창조자로서의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우연성의 개입'이지만 달리 말하면, 세계가 존재하는 '과학적인 방식', 혹은 '존재 일반의 규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그녀의 작품은 애초부터 작가가 마음가는대로 창조한 형태가 아니라 작가가 그 탄생에 협조하고, 그 과정에 참여한 형태였다. 김주현은 작품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으며", "삶의 카페트를 들추어 그 밑의 구조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가 유독 속이 비어있는 조각을 혐오하고 구조나 규칙에 집착하는 것, 과학이론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 결과적으로 작품에 나타나는 시각적 금욕주의 등은 김주현의 이러한 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후반기 작업이 전반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작은 단위의 패턴 요소가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일정 단위의 종이나 금속판, 경첩, 파이프 등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데, 이들 패턴 요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의 최종형태를 만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김주현의 기여는 그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 즉 '규칙'을 만들어 부여하는 것이다. "만일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세계의 모든 것을 일일이 다 만들었다기 보다는 세계가 작동하는 시작 단추를 눌렀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김주현이 규정하는 작가는 '창조자'라기보다는 '방식을 결정하는 자'이며, '과정에 참여하는 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김주현은 "유전자의 자기 확장과정에서 개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나의 개개의 작품 자체가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라고까지 말한다. 이들 단위 요소들이 등장하면서부터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조립, 해체가 가능한 유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작품의 최종적 형태적 정체성은 잠재적인 가능성의 온갖 변수로 확산되면서 해체된다. 즉 그녀는 모더니즘 미술이 지향하던 작가개념, 작품개념을 모두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 쌓기 작업, 경첩작업, 「다면체 연구」, 「단순복잡성」,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자기확장법」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작업은 개체 단위 요소들의 자기 증식과정이 잠시 정지한, '생성 가능태'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관여하지만, 현재의 환영(illusion)이나 재현(representation)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업에서 '규칙'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의 규칙은 물론 단위들 간의 '관계맺기'를 위한 것이다. 「자기확장법」에서는 "세 점을 잇는다"는 기본적인 규칙이 있고, 이를 거리와 높이를 감안하여 층으로 쌓아나간다. 길이를 길게 하기 위해서는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단계가 필요하다. 이 관계 속에서 하나를 고치려면 아주 먼 곳까지 다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주 먼 곳까지 거의 다 뜯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아주 단순한 규칙에서 아주 복잡한 관계망이 생겨난다. 위에서 바라보면 거의 평면적인 패턴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관계들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 '관계'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김주현은 "작업을 매개체로 하여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자면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외관상의 호감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단지 보여주기 위한 작품과 진심으로 탐구하고 대화하기 위한 작품은 다르다"는 지점에서 그녀는 매우 단호하다. ● 다소 경계를 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에게 규칙이, 과학과의 유비(analogy)가 필요한 것은 어쩌면 모더니즘 담론에서 "화살 뽑아내기"의 문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그녀의 작업은 점, 선, 면을 기본으로 자기 증식의 관계망을 탐구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의 작품 세계는 모더니즘 미술의 그리드를 닮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드의 반복이라기보다는 그리드의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생각이 든다. 시뮬라크르는 모델에 대한 외적이고 가상적인 유사성만을 지닌다. 시뮬라크르가 산출되는 과정, 내적인 동역학(dynamism)은 그것의 가정된 모델의 것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모더니즘 담론은 자기정체성에 대한 담론이었다. 하지만 현상하는 모든 것들이 변치 않는 고유한 자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연, 즉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에 따라 형성된다면 모든 것은 관계망 속에서 연기된다. 더구나 종의 발전이 규칙의 돌연변이를 통해서라면 우연과 필연은 씨실과 날실처럼 "존재와 무"의 세계를 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칙은 그녀에게 자신이 하는 작업의 상리(常理)에 해당하되, 이 역시 항상 예기치 않은, 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위반'의 가능성을 함의하는 것이리라.
김주현은 첫 개인전 이래 지난 10여년 간 끊임없이 모더니즘 미술의 그리드 바깥으로 그녀의 '점, 선, 면'들을 '확장'시키는 가운데 90년대 우리 미술계에서 매우 독특한 자리를 하나 만들어내었다. 그녀가 간결한 언어와 단순한 규칙을 통해서, 그리고 집착에 가까운 까다로운 계산의 과정과 반복적 행위를 거쳐 힘겹게 도달한 곳에는 늘 예측을 넘어서는,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놀라움'의 세계가 숨쉬고 있다. 그 '놀라움'은 동물의 시체나 쓰레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는 종류의 "무엇이나 된다"는 식의 놀라움은 물론 아니다. 정교한 프로그램 속에서도 점, 선, 면, 입방체의 관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으로 목격하는 놀라움, 실재와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관계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여질'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는 놀라움, 큐브 안에서는 그 큐브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계산해낼 수가 없으며 그 큐브 바깥으로부터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새삼스러운 인식 등등... 그녀의 조각작품, 혹은 '모형'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관계가 삶의 상식적인 규칙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하며, 임의적인 것인지에 대한 경이로운 상(像)이다. ■ 정헌이
... 내가 나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그러한 형태를 만들게 하고 그렇게 노동을 하게 하는 법칙들이다. 나는 조각의 재료 또는 사물들이 관계하는 법칙들을 만들어내고 그 법칙을 실행한다. 나 자신은 내가 스스로 고안해낸 법칙을 실행하는 충실한 종이고,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이 법칙의 '조각적 증명'이다. (혹은 '과정의 물체화'이다.) 법칙이 없이는 나의 어떤 작업도 상상할 수가 없다. ● (중략) 이런 종류의 작업에는 정해진 원칙과 정밀한 실행만이 있을 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쌓기 작업에서 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조각의 재료로서 인정하지 않는 종이라는 얇고 물렁하고 약한 판재를 엄연한 무게와 부피를 지닌 조각으로 변환시킬 방법을 구상했었다. 그 결과로 쌓아진 종이더미의 형태나 이미지 따위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물론 작품은 그 결의 아름다움이나 무게감 같은 자신의 물성을 가지고 어떤 종류의 감성을 전달하면서 감상자를 끌어들이는 데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결과물이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이런 외향적인 매력들은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양념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핵심, 또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 근원적인 이유일 수는 없다. 내 작업의 주된 내용은 바로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이 세계의 양탄자를 뒤집어 그 밑에 깔린 원리를 찾는 것 _ 그런데 이것은 수학의 정의이고, 나의 작업은 바로 이 정의의 반대 과정, 즉 간단한 원리를 상상하고 그것을 조각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좀 거창하게 의미를 붙이면 모의 세계의 창조이다. 그리고 나는 감히 이 일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 (중략) 경첩 작품의 확장 법칙은 그리드의 형태를 만드는 조건들을 충족하는 기본형 구조에 변형 구조를 가진 경첩의 개입과 임의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안 되는 법칙에 충실하게 경첩을 끼우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프랙탈을 나타내는 자기 유사성의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무슨 구름의 형태, 복잡한 해안선이나 모여 있는 섬 같기도 하고 꽃잎 같기도 하다.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더욱 복잡해진다. 구름 속의 입자나 난류의 흐름 속에 휩쓸린 것같이 정신이 없고 어지럽다. 단순한 기계 부품같이 생긴 경첩들을 연결해서 이런 결과를 접하게 된다는 것은 참 놀랍다. 내가 사용한 단위와 법칙은 대부분 놀랍도록 단순한 것들이다. 그러나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을 개미들이 아주 단순한 행동 규칙 몇 가지만 반복해서 실행함으로써 복잡한 사회를 이룬다는 생물학자들의 쓸모 있는 관찰처럼, 어쩌면 내 작업들은 법칙과 실행된 결과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simply complex 의 한 조각적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각목을 쌓아 올린 확장법 연구 작업은 같은 높이의 두 점을 계속 연결한다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단순한 법칙을 실행한 결과인 것이다. 일련의 각목 쌓기 작업들은 흰개미의 거대한 집을 마음에 두고 만들었다. 그리고 개미들이 그랬을 것과 같이 설계도도 없이 지은 작품은 자기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몇 번이나 무너졌다. `무너지면 다시 쌓는다`라는 항목도 흰개미 집짓기의 작업 규칙에 포함이 될 터였으므로 나도 거기에 맞추어 실행하였다. 이것도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모형 제작용 각목을 쌓은 벽 작품들은 각목 쌓기의 윗면 구조를 강조하기위해서 높지 않게 쌓인 반면 넓은 면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쌓기와 경첩 연결하기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리며 진행되던 작업이 이제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하필이면 내가 만들고 있는 물길의 형태와 닮은 것 같아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막대기들을 연결시키면서 쌓아서 형태를 만드는 일은 공간의 점유와 확장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동시에 인과관계와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다. (중략) ■ 김주현
Vol.20050529a | 김주현展 / KIMJOOHYUN / 金珠賢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