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

김주현展 / KIMJOOHYUN / 金珠賢 / sculpture   2004_0825 ▶ 2004_0831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시멘트_5단계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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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825_수요일_05: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galleryfish.com

복잡계 안 원리를 향한 충동 (The Urge to Principle in Complex System) - 김주현의 「복잡성의 법칙에 관한 연구」에 대한 미학적이며 의사(擬似)물리학적 연구"세계는 어떠한 원인 또는 우연에서 생긴 결과다. 예컨대, 후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세계, 즉 규칙성을 가진 아름다운 구축물인 것이다."_Marcus Aurelius / "(창발(emergence) 이론은]인간이 극히 예외적인 우연한 존재라기보다는, 우주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기대된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_Stuart Kauffman ● 이 논문(김주현의 작품론인 이 글을 논문형식으로 쓰게 된 이유를 밝히는 것이 작가의 작품과 그에 내재한 태도를 이해하는데 요긴할 것이다. 김주현은 「복잡성의 법칙에 관한 연구」를 미술계 안에서 결국 조각품이라는 결과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녀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념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칙을 고안하여 조각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술의 태도가 아니라 학적(學的) 태도이다. 그러므로 그런 학적 태도를 가진 미술에 접근하는 작품론 또한 일반적으로 재미없고 건조한 글쓰기로 인식되는 논문이라는 학적 형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은 김주현의 「복잡성의 법칙에 관한 연구」(이하 「복잡성연구」)라는 미술을 다룬다. 여기서 '미술'은 하나의 조각품이나 그림과 같은 예술의 결과물만을 의미하지 않고, 자연과학(물리학ㆍ생물학을 포함한 복잡계 이론)과 인접하여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조각적으로 증명하는 일종의 '과학 형식의 미술'을 지칭한다. 먼저 보르헤스처럼 물어보자. 그 해답이 '미술'인 어떤 수수께끼가 있어 질문자가 그것을 물을 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미술'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답으로 질문을 만들어서는 수수께끼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수께끼'를 '창작'으로, '질문자'를 '작가(artist)'로 바꿔 생각해보자. 무엇인가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해 낸다는 의미에서 창작을 업으로 하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전면에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은 기성의, 이미 문법화 되어 안정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미술(Art)"일 것이다. 물론 기원전 15000년 이전 「벽화」로부터 시작하는 공식서양미술사는 끊임없이 '정의된 미술'을 인용해서 재 정의해야 하고, 그 장구한 역사를 물려받은 현대미술은 그 기성 문법의 "미술"을 인용ㆍ차용ㆍ패러디ㆍ알레고리화 함으로써 '창작'을 역전시키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세계가 복잡한 만큼, 또 수많은 작가들이 있는 만큼, 미술을 답으로 한 다종(多種) 다성(多性)의 창작이 있을 것이다.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에스키스_5단계_2004

조각가 김주현의 「연구」는 미술이다. 너무 당연한 듯한 이 규정은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미술을 "모방"이라든가 "감정의 표현", "의미 있는 형식" 혹은 "예술계 전시물"(이러한 규정들은 미학에 있어 각기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예술제도론에 귀속되는 대표적 정의들이다. 플라톤은 예술을 실재(Idee)로부터 아래로 세 번째 위치한 실재의 "모방(mimesis)"으로 보았고, 이는 이후 예술이란 외부 세계의 모방이란 개념으로 계승된다. "표현론"은 그 기원을 18세기 독일낭만주의에 두고 있으며, 20세기 영미미학자 크로체, 콜링우드에 의해 발전된 "예술이란 (천재적 예술가의) 감정의 표현"이라는 정의의 미학이다. 예술이란 모방도 감정의 표현도 아닌 "선과 색채의 관련성과 결합상태, 그리고 미적으로 감동을 자아내는 그러한 의미 있는 형식(significant form)"이라는 "형식론"은 클라이브 벨이 주창한 미학이론이며, 예술은 예술계(art world) 내에서 "예술계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 창작된 인공물이며, 그 안에서 비평, 소통"된다는 "예술제도론"은 조지 디키의 미학으로, 그 정의에 따르면 미술작품은 예술계 내 전시물이다)같은 것으로 이해할 경우, 그 범주화에 들지 않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다.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김주현은 "작품을 만들면서 결과물이 나타내는 형태나 이미지, 스토리를 구상"하는데 관심이 없으며, "무의미를 대변하는 정육면체"같은 형태를 취함으로써 "어떤 특정한 미술사조와의 연관성"을 피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논리"를 적용하여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김주현, 미 간행 작가 원고에서 부분인용. 앞으로 작가의 논리와 의견은 이 원고와 본인과 작가와의 대화를 참조한 것이다. 뉘어 쓰기로 표기하겠다) 말하자면 시각이미지로 무엇인가 모방하려 하지 않으며, '감정'의 스토리를 짜려 하지 않고, '의미 있는 형식'같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김주현은 미술사조뿐만 아니라 미학이론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어떤 미술을 하고자 한다. ● 김주현의 미술은 자연과학과 더 친근 관계에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고전역학의 결정론과 통계역학의 확률론에 입각한 근대 과학에 정면으로 도전한, (물론 복잡계 과학이 결정론적 단순성 과학의 모든 것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계 과학은 단순성 과학을 하부구조로 삼아 보다 높이 건축되는 새로운 과학"으로 여겨진다. 장은성, 『복잡성의 과학』, 전파과학사, 1999, p. 57 참조) 1970년대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복잡계(Complex System) 과학』(복잡계 연구의 선구격인 「산타페 연구소(SFI)」에서는 "복잡계(Complex System)"가 아니라 "복잡성(Complexity)"이라는 용어가 정착되어 있다. 의미상 큰 차이가 없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국내 과학자들은 "복잡계"를 더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예) 김승환, 「복잡계 과학의 도전」, 정하웅, 「복잡계 네트워크와 응용」, 두 논문은 복잡계 이론과 적용을 쉽게 개괄하고 있다. 제9회 기초과학 문화포럼, 2002 참조.) 본 논문은 김주현의 미술 내적 고유한 발상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작품 제목의 "복잡성"과 변별하여 "복잡계"를 선택했다)과 특히 깊게 관련되어 있다. 작가가 1990년대이래 지속해 오고 있는 조각 작업―「쌓기」, 「경첩」, 「다체문제(Multi-Body-Problem)」, 「Simply Complex」―은, 한편으로 작가가 발상한 고유한 개념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는데 이후 우연찮게 복잡계 이론에서 유사한 개념과 연구 방법을 발견한 경우와 이후 그 이론을 접하면서 좀 더 개념적으로 명징해지고 확장된 작업들로 나뉜다. 경위는 다르지만, 우리는 두 경우 모두에 대해, 그녀의 작품(연구)과 복잡계 이론을 상호 참조, 교차 독해할 때 '김주현의 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따라서 본 논문은 작가 김주현의 「복잡성연구」(작업) 방식, 즉 문제제기→법칙 고안 및 설정→(조각적) 증명을 복잡계 이론과 중복시켜 본론의 두 장에 걸쳐 추적한다. 그리고 그에 부속되는 별 개의 각 장을 설정하여 그러한 작품이 갖는 예술 비평의 논점을 논해 볼 것이다. 예컨대 1장은 작가 김주현이 결과적으로 하나의 조각으로 제시될 개념을 왜 그리고 어떻게 문제제기 하는지 논한다. 2-1장은 작가가 작품의 개념을 조각적으로 증명(현실화)하기 위해 고안한 법칙과 그것을 어떻게 작품 구조 안에 설정하는지, 작가의 논리와 복잡계 이론을 들어 설명하고, 2-2에서는 그 개념의 예술 비평적 함의를 논하는 식이다. 이러한 비평 방식을 본인은 논문의 부제에서 밝혔듯이 '미학적이며 의사(擬似)물리학적 연구'라고 생각한다. 먼저 '미학적 연구'인 이유는, 김주현의 작품과 미술에 대한 태도가 예술보다는 학문에 가깝다 할지라도 여전히 '예술 비평 대상'인 한, 미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의사(擬似)물리학적 연구'인 것은, 김주현 작품의 이해를 위해서는 물리학적 접근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미학을 연구하는 본인으로서는 복잡계 이론에 대해서는 비전공자로서 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시멘트_4단계_2004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에스키스_4단계_2004

1. 문제제기_세계는 복잡하다. 어떻게 복잡한가? ● 김주현이 작품 「복잡성연구」를 시작하는 지점은 세계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에서이다. 작업은 세계의 복잡함을 시각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복잡한] 세계와 그 안에 숨어 있을 질서와의 관계에 대한 탐구임을 나타내기"위해서이다. 작가의 이 인식과 탐구 목적은 세계(서론에서 인용한 아우렐리우스의 말속에서, 그리고 이 논문에서 지칭하고 있는 "세계"란 단순히 인간을 포함한 지구만이 아니라, 카오스의 세계까지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가 우연의 결과라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우연이 아니라 어떤 규칙성을 갖고 있다는 아우렐리우스의 인식과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만약 세계가 원인과 규칙 없는 우연의 결과라면, 세계의 어떤 부분이 카오스인 것이 아니라 카오스가 바로 세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창조했든, 빅뱅이론이 주장하듯 태초의 대폭발로 시작됐든 간에 세계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것도 인간이 미처 다 알 수 없는 원리 아래 복잡한 본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다만 간혹 '현상적'으로 세계의 그러한 원리와 조우할 뿐이다. 실체나 원인으로서가 아니라 현상으로서 만나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복잡함의 저변을 흐르는 규칙 혹은 원리를 완전히 명징하게 파악할 수 없다.(복잡성 연구자인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상세한 것들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일반적인 성질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복잡계에 대한 완전한 파악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Stuart Kauffman, 『혼돈의 가장자리』, 국형태 역, 사이언스 북스, 2002, p. 38 참조) 세계의 어떤 본성은 초월적(transcendental)이고, 초경험적(metempirical)이며 선험적(a priori)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렇게 미처 다 알 수 없고 복잡한 세계에 대해 근대 자연과학은 한계를 설정하고, 단순하고 보편적인 법칙을 구성하려 했다. 말하자면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순화된 세계는 세계의 가상적 모델이지, 세계 그 자체는 아니다. ● 복잡계 과학은 이러한 근대 자연과학에 부정적이다. 근대 과학에서는 "복잡한 현상을 파악할 길이 없다. 잡음(noise)라고 해서 복잡성이 무시되거나...영구히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복잡계 과학은 "복잡한 세계를 복잡한 그대로 보고", "질서와 혼돈 사이의 동적인 관계를 문제시"(요시나가 요시마사, 『복잡계란 무엇인가』, 주명갑 역, 한국경제신문사, 1997, pp. 233-234 참조)하지만, "질서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며, 자발적인 질서를 도출하는 위대한 기질이"(Kauffman, p. 22에서 인용) 복잡성 안에 내재해 있다고 본다. 앞서 인용했던 김주현의 진술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그러한 시각은 세계에서 질서를 구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세계 속에서 질서를 '찾아보고', 그 '관계'를 추적해 보는 연구 방식을 필요로 한다. 본인은 이를 '복잡계 안 원리를 향한 충동'으로 본다. 이 충동은 태도 면에서, 충동의 목적 면에서, 근대적 이성이 주도한 요소 환원주의적('환원주의'란 최소 구성단위의 성질을 알면 전체 시스템의 성질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요소환원주의에서 "전체는 부분의 총화(總和)"지만, 복잡계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총화 이상"이 된다) 과학의 충동과는 다르다. 언뜻 복잡한 것에서 질서를 찾아낸다는 것, 원리를 지향한다는 것이 결정론인 요소 환원주의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기본요소로 나누고 그 기본요소를 재배치하여 재구성하는 요소환원주의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혼돈을 배제한 '질서' 그 자체이다.(장은성, p. 58를 참조) 이에 반해 복잡계 이론은 "질서로부터의 혼돈"(카오스 이론)과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자기조직화 이론)라는 슬로건에서(요시마사, p. 234에서 인용) 드러나듯 질서와 혼돈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문제시한다. 그러므로 '복잡계 안 원리'는 이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의미하고, 이를 향한 충동은 원리를 '구성'하는 충동이 아니라 원리를 현상들의 상호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충동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시멘트_3단계_2004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에스키스_3단계_2004

김주현은 세계는 무작위(random)에 혼란스런 복잡계로 보이지만, 그 계에는 무작위와 복잡성을 일거에 꽃피우면서("창발")("창발(emergence)"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루이스(H. G. Lewis)가 철학에 도입한 용어이다. 그에 이어 동물심리학자 모간(C. Lloyd Morgan)이 이 개념으로 비약적인 생물진화를 설명했다. 복잡계에서 이 용어는 요소 환원주의적 원리나 공식으로부터 유도하거나 예견 혹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진화를 의미한다) 자기조직화 하는 원리, 그녀의 진술에 따르자면 "법칙"이 있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복잡성의 법칙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의외로 단순하다. 작가는 자신의 전제를 충족시키고 증명하기 위해 단순한 법칙을 고안해 설정한 후 조각 작업으로 실행하였다. 이 실행의 과정에서 복잡계 과학이 "카오스의 가장자리(edge of chaos)"(값이 0. 273이고, 그 값을 경계로 규칙군이 안정상태에서 카오스 상태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점. 이는 임계점에서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는 상전이(相轉移) 현상과 닮았다. 이 수치는 복잡계 과학 연구자 크리스토퍼 랭턴이 람다 파라미터(lambda 파라미터: 셀 오토마톤의 모든 규칙표에서 나온 공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일종의 제어매개변수 혹은 행동의 지표가 되는 질서매개변수라는 기준을 설정하여 복잡함의 질적 상태를 양적 상태로 변화시켜 얻었다. 보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서는 요시마사, pp. 114-118를 참조. 앞서 인용한 산타페 연구소의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복잡계가 카오스와 질서의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 카오스의 가장자리 영역은 마치 생태계처럼, 혁신성과 안정성, 경쟁과 변혁의 장을 제공하는 절묘한 균형점이다." 김승환, 「복잡계 과학의 도전」(2002) 참조) 혹은 "자기 조직화 임계성(self-organized criticality)"(물리학자 파 바크가 발견하고 명명한 자연 현상. 예컨대 평평한 탁자 위에 모래를 조금씩 지속적으로 부을 경우, 일정한 높이까지 모래산이 형성되다가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일어난다. 이 모래산이 스스로 안정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자기 조직화'되어 있다고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정성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인 모래의 흐름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임계상태"로 간주한다. 요시마사, pp. 119-120. 이와 별도로 '자기조직화'현상은 물리학자 일리아 프리고진이 제창한 이론으로 "외부의 미세한 조절 없이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스스로 적절한 패턴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이는 복잡계의 다양한 패턴 생성의 중요한 동인이다. 김승환(2002))이라 명명한 복잡함의 최대 값이 발현되면서 작품의 복잡성을 창발 시켰다.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시멘트_2단계_2004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에스키스_2단계_2004

결론 ● 우리는 사람의 심장이 1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정상인이 편안한 상태에 있을 때 심장박동은 규칙적이지만, 일단의 학자들에 따르면, 건강한 심장은 카오스적 박동운동을 한다고 한다.(그러한 주장을 한 학자들로는 Ary Goldberger, Chi-Sang Poon, Christopher Merrill 등이 있다) 학계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라니 이제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같은 표현은 사라지게 될 것 같다. 또한 만약 이러한 주장이 맞는다면, 인간을 일종의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더욱 긍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 인간을 포함해서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불규칙적이며 유동적인 운동을 하고 있지만, 아무렇게나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이 이제까지 개발한 논리로는 충분히 해명할 수 없을 뿐이고, 우리가 끊임없이 그러한 운동을 하고 그러한 현상과 조우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그 논리와 인식의 빈 틈바구니에 상상력이 끼여들 수 있는 것이고,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현상화 하는 예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견 복잡계 과학이론에 맞춰지거나 지극히 수학적 논리에 의해 구성된 듯이 보이는 김주현의 「복잡성연구」가 위치하는 곳이 미술인 이유도 여기 있다.(그러므로 우리는―김주현의 「복잡성연구」/김주현의 「복잡성연구」에 대한 본 논문―과학적인 방식으로 말했지만, 유감인지 다행인지 이 연구가 과학영역에서만 배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질서정연하고 명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김주현의 「복잡성연구」나 「레오나르도 아카데미」판화, 그리고 자연의 복잡계 모델이나 프랙탈 패턴은 쉽게 발견되지 않으며,("서양의 수학자들이 자연에서 프랙탈을 발견한 지가 40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재승, pp. 97-98) 만들어내기도, 그 특징을 정량화하기도 어렵다. 법칙이 없이 완전히 비논리적이거나 비수학적이어서가 아니다. 하나의 원리만이 선형적으로 단일하게 적용되지 않고, 단순한 여러 법칙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원리가 비선형적으로 직조되기 때문에 김주현 「복잡성연구」의 복잡성, 복잡계 모델이나 프랙탈 패턴은 정량화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시멘트_1단계_2004
김주현_복잡성 법칙에 관한 연구_에스키스_1단계_2004

김주현은 각 단계모형을 최종적으로는 시멘트를 사용하여 제작한 조각 작품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각 단계 정육면체들이 부분들의 조합이 아니라 유기적인 결합인 것처럼, 그녀는 필름으로 된 거푸집을 모형과 똑같이 내부에서 모두 연결되도록 하나로 만들어 그 속에 액체 상태의 시멘트를 흘려 넣은 것이다. 그것들은 짙은 회색의 복잡한 구조를 가진 건축물(architecture)로 보인다. 어원적으로 원형(arche)의 기술(technik)인 건축(architecture)이 김주현의 「복잡성연구」에서는 최종적으로 도출된다는 점은, 그녀가 복잡성의 원리를 원형으로 추구하며 작업했다는 점에서 당연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앞서 2장 2절에서 논했듯이 이 건축물만이 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복잡하다고 경험적으로 인식하지만, 그러한 복잡성이 시작됐던 원리나 최초모델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이 말은 「복잡성연구」의 논외자 혹은 관람자일 뿐인 우리에게 김주현이 복잡한 모형과 시멘트 조각 작품을 제시함으로써 역으로 자신의 복잡성의 원리를 조각적으로 증명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미 각 단계 종이모형|도면|시멘트 조각 작품이 원리를 돌려본(simulating) 결과|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주현의 「복잡성연구」는 과정과 메커니즘은 숨겨진 채 입력과 출력만이 드러나는 '블랙박스'(앞서 1장에서 설명했듯이 환원주의적이며 기계론적인 과학은 세계의 복잡성을 잡음(noise)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논리적 설명과 증명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복잡성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블랙박스'처럼 입력과 출력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실제 과정과 메커니즘은 불문으로 해두는 것이다)와는 전혀 다르다. 또한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작가(author/artist)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개념을 절대적 형식(예컨대 조각/문학/음악) 속에 담으려 하는 '블랙박스 예술'과 다른 지평에 있다. 우리가 비행기의 블랙박스가 출력할 수 있는 말만 들을 수 있듯이, 우리는 작가만의 고유한 그러나 개인적인 감정이나 추상적 사유를 작품화한 예술 앞에서 "서로 결합하고 반박"할 수는 없고, 일방적으로 "유일하고도 동일한 저자의 목소리"(Roland Barthes,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김희영 역, 동문선, 1997, pp. 27-28 참조)를 듣는다. 이와 달리 김주현은 이념을 제기하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논증하는 과정에 복잡계 과학을 끌어들였고, 그 조각적 증명을 '발표'(여기서 '발표'는 학계에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 형식을 빌려 발표함으로써,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거쳐 검증되는 것과 같은 성격의 '전시(드러냄, exhibition)'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함으로써 비판과 논쟁의 영역으로 작품을 풀어놓는다. 작가는 그 작품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경제학의 시조로 인정받는 A. 스미스가 한 말이다. 그는 저서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국부론)에서 모든 경제 주체가 건전한 사회제도의 배경 하에서 사전 조정 없이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경쟁을 전개하면, 시장기구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국민경제 전체에 질서를 가져오고 부(富)와 번영을 이루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경제가 합목적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 면서도, 경제 주체가 어떻게 경쟁하고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일종의 블랙박스다)도 '창조자'도 아니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고안해 낸 법칙을 실행하는 충실한 종"이다. 왜냐하면 복잡한 현상으로서의 조각을 만듦으로써 김주현은 '복잡성의 원리'에 대한 조각적 해(解)를 구했지만, 각 단계의 복잡성은 요소들의 결합과 상호 작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그 때 요구되는 변수들의 수(數)는 작가의 손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김주현 「복잡성연구」의 각 단계들은 스스로를 자기 조직화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세계는 복잡하다는 이념은 사라지지 않는다. ● 하나의 개념을 실재로 사용할 경우 그 내포된 의미는 무한으로 확장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규정할 경우 의미는 단일한 지점에서 봉쇄된다. 예컨대 '세계는 이러 저러해서 복잡하다'는 하나의 개념을 복잡계 과학이 자신들만의 논리적 정리(定理)로 단언해 버릴 경우, 그것은 더 이상 실재 복잡계가 내포하고 있는 무한의 의미를 인위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이율배반에 도달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개념은 김주현이 「복잡성연구」로, 본인이 그 「복잡성연구」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 어떤 미술로, 어떤 과학으로 끊임없이 차이를 두고 반복 ? 확장될 때 경험과 지각과 인식의 자리에 들어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의 복잡성과 더불어 김주현의 「복잡성연구」와 그에 대한 본 논문이 세계 안에서, 복잡성 이론에서 말하는 "창발"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 강수미

Vol.20040822a | 김주현展 / KIMJOOHYUN / 金珠賢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