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서성이다.

천성명展 / CHUNSUNGMYUNG / 千成明 / sculpture   2005_0108 ▶ 2005_02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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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 상 기획 천성명 조각.설치展

갤러리 상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02_730_0030

달빛 아래 서성이다. ● 이곳은 어디인가? / 숲? 회색선. 굵은 빗줄기? 마디! 좁은 틈?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고 싶다. ● 나는 대나무 숲에 누워있다. 엎드려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 위에 떠 있었는데. 내 날개가 어떻게 된 거지? 등의 통증 때문에 도저히 움직여지질 않는다. 설마 나의 날개가 부러진 것은 아니겠지. 내가 만든 것 중에 가장 견고하고 가장 아름다운 날개였는데. 깃털이 통통하게 보이도록 바람도 많이 넣었는데. 절대 부러질 리 없어. 다만 욕심을 좀 부렸던 탓에 조금 무거웠었지만. 그래 내 몸보다도 조금 더 컸었지. 그래야 멀리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다시 움직여보자. 이렇게 누워 있을 수는 없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거지?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지독한 악몽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소녀였는데. 골목을 자기 집 앞마당처럼 뛰어다니면서도, 빨갛게 얼굴이 상기되어도, 해질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함께 놀던 아이였는데. ● 어른이 되면서 세상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이 내 손모가지를 붙잡고 등을 거칠게 떠미는 것이었다. 가끔 내 머릿속까지 들어와서 뇌의 어떤 부분을 자기 맘대로 손보고 나가기도 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원래의 내 생각을 도둑질 해가기도 했다. 어느새 난 많은 사람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고 내가 왜,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가고 군대를 가고 돈을 벌었다. ● 그러다 어느 날 그 꿈을 꾸게 된 것이다. 한동안 만날 수 없었던 그 소녀의 꿈을. 긴 머리에 키가 자라고 가슴이 봉긋해 졌지만 난 한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횅한 눈망울만큼이나 무섭게 온몸이 파이처럼 조각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그녀의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너무 심하게 흩어져 있는 몸 조각을 맞추느라고 무척 힘이 들었다. 머리와 가슴을 잇는 목의 일부분은 거의 찾지 못하는 줄 알았다. 멀리 내팽개쳐진 다리를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솟았다. 어릴 적부터 즐겨 신던 줄무늬 양말이었다. 그녀는 줄무늬 양말을 신었고 나는 줄무늬 티셔츠를 즐겨 입었었다. 눈을 감겨주고 싶었는데 눈꺼풀이 내려지질 않는다.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 난 어릴 적에 꽃잎 따기 하며 놀았던 노란 국화꽃잎을 그녀에게 뿌려주었다. 아름다워 보였다. 꽃잎 속에 누운 그녀가. ● 난 꿈 인줄 알면서도 서럽게 울었다. 마치, 내가 눈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면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웃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눈을 끔벅거리며 계속 읊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그 꿈 이후로 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걸 알 수 있도록 밝게 비추고 싶었다. 처음에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그것이 무언지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냥 빛나는 것을 만들었다. 작게 만들었더니 별처럼 보였다. 이제 커다래진 그것은 달처럼 보였다. ● 나는 내가 만든 달, 정확히는 달처럼 보이는 것이 좋았다. 알 수 없는 거인이 나를 찾아 낼 수 없는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훤히 밝은 달 속에 있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곳이라면 조각난 그녀가 국화꽃잎을 털고 일어설지도 모른다. ● 나는 그 밝게 빛나는 것이 달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달을 향해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움직임을 시작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노력을 하며 그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멈추어 있기도 했다. 나중에는 앞으로 가려는 것인지 뒤로 가려는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앞으로 가면 앞에서 가로 막는 것이 있었다. 뒤로 가면 뒤에서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수 백 번, 수 천 번을 움직이고 나서야 내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가로막은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것을 타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 꼬마였을 때 타고 놀던 장난감말 이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그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멀리 뒤쪽에는 흰 깃발을 든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가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그곳으로부터 온 것일까? ●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래도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다. 좀 더 강하고 효과적인 것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날아가서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나는 열심히 날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날개를 만들면서 그 조그만 장난감말로 어딘가를 가려했던 내가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이제라도 착각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잠시 감사하기도 했다. 처음에 만든 날개는 내 몸에 잘 붙어있지도 못했다. 재봉이 서툴러 좌우가 비대칭인 경우도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발목이 부러지기도 했다. 언제부터 날기를 시도했는지 날짜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번이 아마 333번째 쯤 되는 것 같다. ●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았다. 날개의 성능이 믿을만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람을 가르며 올라갔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내가 있었던 곳 보다는 밝아지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달에 가까워지는 것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드디어 달에 다다르기 50미터 정도 남은 지점에 어렴풋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나보다 앞서가고 있는 누구인지도 모른다. 경쟁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반가움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니 그는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여기까지 와 있는 듯 했다. 특별한 기계장치인가? 그는 높다란 의자에 앉아있었고 한쪽 손을 커다란 양동이를 향해 떨어뜨리고 있었다. 희미한 가운데 살펴보니 기다란 두 귀에 두 쪽으로 갈라진 발을 가진 그는 토끼처럼 보였다. 달에 살고 있는 토끼가 이야기속의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었던가. 왠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 볼을 한바탕 꼬집어 보고나서 자세히 살펴보는데 그의 늘어진 팔뚝에서 무언가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푸른색 액체. 손목을 절단한 가느다란 상처에서 흐르고 있는 것은 양동이를 파랗게 채운 그의 체액이었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무거운 숲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그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파란 눈은 나의 사랑스런 달을 뒤에 두고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꺼져가는 푸른빛은 나의 달마저도 어둠 속으로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무궁화 꽃이 피었...' / 왠지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 아! 토끼의 귀를 가진 그는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그리고 나서 곧, 날개는 내 등짝을 부서트리며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멀리 날 수 있을 만큼 큰 날개였지만, 내겐 너무 무거운 날개였던 것이다. ●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며 지냈다.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내일은 더 나아질꺼라며 한 쪽 눈을 찡긋이 감아 보기도 했었다. 남과는 다른 내 모습을 들킬세라 그렇지 않은 척, 짐짓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어릿광대 같은 모습이 역겨울 정도로 괴롭긴 했지만 조금만 참기로 했다. 비록 내가 만든 것이지만, 당당하고 순수해 보이는 빛나는 달에 다다를 그 때까지만. 그리고 이제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점점 의식은 혼미해지는 것 같다. 대나무 숲이 장대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저 위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냥 내려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나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도 그만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모두가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산산이 부서진 그녀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멍한 눈망울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추락해버리면 안되는데... ●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 더 이상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다. 내가 만든 가짜 달빛은 이제 공허한 구멍처럼 보인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그녀를 적신다. 그녀가 나의 눈물 속으로 잠긴다. 나의 눈물이 그녀를 돌이킨 것일까? 나의 절망이 그녀를 불러온 것일까? 그러나 나는 이제 힘이 없다. ● 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는 날개도 없는데 내 머리 위로 멋지게 날고 있다. 아름다운 그녀의 몸이 나를 이끄는 것 같다.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는 물이 나에게도 떨어져 내린다. 그녀가 가는 곳으로 나도 가고 싶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 달빛 아래 서성이기를 선택하다. ● 의지를 상실한 안면의 표정이며, 비정상적인 신체구조를 가진 인물들.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와 토끼머리띠. 편집증처럼 반복되는 행위들. 이러한 것이 줄곧 그의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일대일 대입하듯이 요소들이 가진 상징을 풀어가려는 시도는 작품의 묘미를 놓치게 할 것 같다. 작가 자신도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과 상황에 '왜?'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가 토해낸 것들을 되새겨 봄으로써 자신에 대해, 자아에 대해 발견하려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모두를 초청하고자 한다. ● 천성명은 작품에 대하여 언급하는 대목에서 '경계에 있다' 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가 이야기 하는 경계란 무엇인가. 회색빛, 어른도 아이도 아닌 신체,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캐릭터로 대변되는 애매한 영역인 경계란 무엇인가. ● 이번 전시는 독백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있다. 작가 자신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실존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존재론적이기도 한 그의 질문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 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 작품은 매우 어둡다. 별빛이나 달빛 따위를 끌어들여 꿈과 희망을 뒤쫓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처량한 인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깊은 절망을 넘어 무기력의 나락으로 침잠하게 된다. 차라리 달빛과 별빛으로 상징되는 희망은 그곳에 닿을 수 없는 인물의 절망을 부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잔인한 덫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나는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그토록 고립과 절망에 집중하는 이유를 발견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어둠이 가진 의미를 밝히고 싶었다. 사실, 그 다층적인 의미는 앞의 글 「달빛 아래 서성이다」처럼 또 하나의 우화로써만 적절히 표현될 것 같았다.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작품 속에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한 인물들이 있다.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인물들은 작가의 주요 개인전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한쪽 발을 끄떡거리며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지켜보는 사람. 나아가고 나아가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도는 사람. 끝없이 날개를 만들고 또 만드는 사람. 이렇게 반복적인 행동을 계속해야만 하는 인물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자각을 상실한 채로 존재한다. 인물은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도대체 그의 선택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반복되는 하나 하나의 행위가 그의 선택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것일까. ● 도약을 선택하는 또 다른 인물들은 그 도약의 결과로 처참히 쓰러진다. 그의 도약은 다만, 자신의 나약함을 좀 더 철저히 발견하도록 하는 섣부른 욕망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도약에의 의지가 단지 착각이나 오만이었던 것이라고 가르치는 양 인물들을 짓뭉개고 만다. 인물의 도약은 회색빛 현실을 박차고 성취하고픈 꿈과 같다. 「광대, 별을 따다」의 제목을 가졌던 첫 번째 개인전에서 그 꿈은 물 위에 떠있는 별로 상징되었다. 이번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던, 달의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꿈은 별에서 달로 바뀌었지만, 지난번의 실패를 통해 조금도 진화하지 않은 채 또다시 광대의 눈물을 재물로 받는다. 환상속의 토끼마저도 공허한 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자살에 이른다. 제 날개에 짓눌려 추락한 비행사처럼. ● 이렇게 인물들은 운명과 의지, 꿈과 현실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통합되지 못한 삶의 요소는 작품속의 인물로 하여금 끊임없이 양극단을 오가게 한다. 정지하지도 나아가지도 못하게, 꿈을 꾸고 꿈에 다다르려하지만 다시 광대 같은 우스꽝스러운 껍질만 남은 자아를 대면하도록 하면서. 작품이 가진 비극은 이러한 부조리가 반복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개인전 5회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표현되는 우울의 반복에까지 확장된다. 지루한 절망의 반복이다. ● 이것은 작가로 살아내야 하는 현실과 작가로 존재해야겠다는 꿈의 부조화가 빚어내는 잔인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성인의 얼굴과 아이의 신체를 가진 인물은 작가가 품고 있는 꿈이 불안정하며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소산으로 보인다. 현실은 꿈을 조롱한다. 창작과 발표에 몰두할수록-작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한-, 삶은 무섭고 냉혹하며 기약 없다. 창의적인 작품을 연모하는 사회를 어린아이처럼 믿어버리는 작가는 어느 날 초라한 광대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도 범인이 아닌 미궁과 같은 사건으로 결말을 맺는다. 눈물 흘리는 꿈꾸던 자. ● 가만히 보면 인생자체도 이러한 반복의 연속이다. 슬픔은 어느새 기쁨의 자리를 빼앗고 희망은 절망 앞에 그 꼬리를 감춘다. 물론, 또 다시 시작되고 계속 진행된다. 이 둘은 상대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상호보완의 관계라는 것을 확인하기까지에 이른다. 밤과 낮이 교차하고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현상에 대해 부정하고픈 몸부림이 우울과 절망이라는 옷을 입히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모순은 삶의 원리라는 것을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 아닐까.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천성명_달빛 아래 서성이다-달의 그림자에 서다_혼합매체 가변설치_2004

모순이라는 원리가 삶의 진정한 원동력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것. 그 조화를 결론으로 도출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그리 쉽게 현실화되지 못한다. 작가는 그러기에는 존재의 복잡성과 무거움이 너무 크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다만, 격언처럼 주어지는 희망의 당위성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지루한 어둠 속에서의 헤맴을 단호히 선택하는 작가의 행보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 그가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삶의 의미가 참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그 과정 속에 그가 찾고 있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으로 드러나고 있는 인간미와 진실함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작품은 슬픔의 정서를 지니더라도 공허한 삶을 잠시 위로해주는 값싼 대리만족으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의 어둠이 가슴을 싸늘하게 하는 피로함보다는 정적과 가라앉음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눈물 흘리는 광대를 비추는 비정한 달일지언정 그 빛 앞에서 쉽게 뒤돌아서지 못하게 하는 힘도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작품속의 그가 흘린 눈물이 다시 그를 소생시킬 수 있는 생명수로 순환되듯이. ■ 신혜영

Vol.20050113a | 천성명展 / CHUNSUNGMYUNG / 千成明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