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와 타자

한효석 회화.설치展   2004_1104 ▶ 2004_1113

한효석_The uncanny_디지털 프린트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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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104_목요일_05:00pm

후원_한국전력공사_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35번지 전력문화회관 1층 Tel. 02_2055_1192

그로테스크와 타자(the Grotesque and the Other) ● 오스트리아의 행위미술가 헤르만 니취(Hermann Nitsch)의 잔혹행위극과 유사하게 인형이나 인체의 내장이 드러난 섬뜩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제시해온 한효석이 또 다른 차원의 잔혹한 이미지로 관객에게 트라우마를 선사하고 있다. 최근 작품의 일관된 특징은 반인반수(伴人半獸)의 생명체이다. 사람의 두피를 벗겨낸 듯한 평면작업에서는 인간의 얼굴이 살코기의 육질 및 지방질과 결합되어 있고, 입체작업에서는 사람의 머리와 돼지의 몸이 결합되어 있다. 특히 사람의 머리와 돼지의 사체를 직접 캐스팅하여 결합한 입체작업은 두안 핸슨(Duane Hanson)의 조각과 같은 극사실성으로 관객의 충격을 배가시킨다. ● 서구 미학사상의 근간을 이루어온 것은 미(美)와 추(醜)라는 두 대립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미는 중심과 규범을 이루는 것으로 이상, 이성, 진리, 선, 질서, 조화, 문명을 의미하였고, 반대로 추는 비이성, 악, 무질서, 부조화, 기형 등 한마디로 주변부와 타자를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미는 단일하고 보편적이고 불변의 것으로 안정되고 동일한 원의 형태에 비유되었고, 추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그로테스크"(grotesque), "아브젝트"(abject), "캐리커처"(caricatural), "비정형"(formless) 등과 같이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속성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것에 비유되었다.

한효석_The uncanny_캔버스에 유채_165×110cm/195×137cm_2004

이러한 두 대립적 범주 중에서 한효석의 작업이 기이하고 비이성적이고 어색하고 혐오스러우며 기형적인 것을 의미하는 추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왜 그가 정교하고 지루한 과정을 요하는 그러한 작업에 몰두하는가이다. 해답의 실마리는 아마도 작품의 제목으로 제시된 「언캐니」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일반적으로 "언캐니"란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에서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는 일종의 두려움으로 간주된다. 한편 자신의 에세이 「언캐니」(The Uncanny, 1919)에서 프로이트는 비밀에 부쳐지고 감추어져야 했으나 드러나게 된 것이라는 셸링(Schelling)의 정의를 토대로 이 개념의 정신분석학적 의미를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언캐니"는 무의식에 남았어야 했으나 놀랍게도 의식적 지각위로 떠오른 것으로 개인이나 종족의 진화과정에서 억제되거나 억압되어야 했을 초기의 정신상태, 원시적 애니미즘, 또는 유아기의 나르시시즘에로의 회귀이다.

한효석_The uncanny_합성수지와 인모에 유채_가변크기 공간설치_2004
한효석_The uncanny_합성수지와 인모에 유채_각 175×80×60cm_2004_부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기지촌에서 성장하며 혼혈인 친구나 선배들의 아픔과 고난을 지켜보았고, 목장에서 소가 태어나서 죽거나 도살장으로 보내지는 과정을 보며 겪은 그의 이력을 보면 그가 사용하는 "언캐니"라는 개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의미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작품설명에는 심리적 측면보다는 사회적, 정치적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 그는 반인반수의 생명체를 "현실에 존재하는 동시대의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규정짓는다. 그에 의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가학적으로 도살되어 생명을 빼앗기는 돼지의 모습이나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국가나 조직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희생되는 현시대인"은 동일한 존재이다. "돼지가...느끼는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도덕적인 현실이나 지금 우리 자신이 겪는 현실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효석_The uncanny_합성수지와 인모에 유채_175×80×60cm_2004_부분

이런 의미에서 한효석의 작품은 역사적으로 전개된 미와 추의 역학관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역사적으로 미와 추의 역학관계는 계급, 가치, 권력을 매개로 형성되었다. 미는 지배적인 고급문화, 주도적인 사회적, 도덕적, 미적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되었고, 추는 경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약자, 인종적 타자와 동일시되었다. 예컨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그로테스크를 고전주의와 연관된 지배적 정치, 문화세력에 저항하는 민중의 상징으로 간주하였고,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미를 배타적이고 엘리트 중심의 억압적 범주로 간주한 뒤, 추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 해소라는 도덕적, 인본주의적 임무를 부여하였다. ● 추 개념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와 관련해볼 때, 한효석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트라우마에는 타자의 입장에서 기존의 사회적, 미적 전통과 규범을 전복시키고 인간존재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고독한 투쟁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희곡 『크롬웰』(Cromwell, 1827) 서문에서 "그로테스크"를 예술에서의 모더니즘과 정치에서의 자유주의를 동시에 예고한 것이라 찬미하며 그 범주에 반인반수의 합성체를 포함시킨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한효석의 작업의 역사적 계보를 이루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무정

Vol.20041104a | 한효석 회화.설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