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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02_목요일_05:00pm
아티누스 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4-26번지 Tel. 02_326_2326
보는 행동으로부터 산출되는 또 다른 현실의 문턱 ● 옵티컬 이미지를 이용해 평면과 설치 작업을 해왔던 경지연은 이번 전시에서는 키네틱과 디지털 이미지로 작품 범위를 확대했다. 먼저 평면회화인 '마스크 시리즈'는 연한 바탕색에 검은색, 주황색, 푸른색 같은 강한 색으로 구불거리는 선을 그어 기괴한 마스크의 형상을 이루는 작품들로서, 주로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패턴이나 이미지를 그려왔던 이전 작업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바탕과 같은 무늬를 저속(低速)모터로 회전시켜 실제로 움직이면서 모아레 효과를 내는 입체 작품들은 초록, 빨강, 노랑, 검정의 색상을 가지는 그물코들이 시시각각으로 만들어내는 형태들이 특징이다. ● '매직 아이' 출력물은 컴퓨터 프린트로, 작은 것 3개, 대형 1개가 걸려있다. 아무 생각 없이 색색의 패턴을 바라보면, 작가가 교묘하게 숨겨놓은 구상적 형태가 서서히 떠오른다. 보라색 패턴에는 아래 작은 성문이 뚫려있고 그 위로 세 개의 종탑이 있는 성채가, 연두색 패턴에는 의자가, 오렌지색 패턴에는 탱크가 있다. 240x260cm 크기의 대형작품에는 어른거리는 붉은 색 패턴에서 거대한 가면 이미지가 바닥에 숨겨져 있다. 이 디지털 프린트 작품들은 작은 옵티컬 패턴들을 반복, 확대하여 만든 것이다. 탱크의 경우 바코드 패턴 몇 개를 겹쳐서 만들었다. 가면이나 탱크 같은 소재는 위장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패턴들과 내적으로 연결된다.
3D 이미지에 작가가 만든 평면 패턴을 접목시키는 매핑작업을 거친 이미지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보면, 어느 순간 패턴들이 서로 뭉치면서 구상적 입체가 떠오르는 '매직 아이'가 된다. '스테레오그램'이란 프로그램을 이용하지만, 무늬의 세포가 되는 형태는 기성의 패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바닥 평면에서 약간 들려 보이는 일루젼은 작가가 고안한 옵티컬 모아레 패턴과 매직아이 프로그램의 합작품인 셈이다. 'Pix' 작업 2 개는 옵티컬 패턴을 컴퓨터로 그려서 작가가 고안한 얼굴 실루엣대로 오린 후, 작은 전광판(포터블 레드)을 끼워 넣은 작품이다. ● 쌍으로 제작된 그것은 눈과 입, 시각과 청각에 관련된 이미지들이 흘러나온다. 'Beyond Optical'은 안경을 약간 들어 보이는 듯한 이미지이고, 'Two Mouth'는 두 개의 입 모양의 구멍이 뚫려 얼굴이 하나인지 두 개가 겹친 것인지 헷갈린다. 작은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기호들은 작품 제목인 'Beyond Optical'이나 'Two Mouth'란 단어 외에도 눈, 또는 시각과 관련된 이미지인 날아오르는 날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는 점, 움직이는 손가락, 피어나는 꽃, 움직이는 눈알 등이 흘러나오고, 입, 또는 청각과 관련되는 이미지인 입술모양, 비누거품, 물음표, 소용돌이, 음파 같은 형상 등이 10여 개의 기호들이 반복되어 흘러나온다.
경지연의 작품은 조형적 요소인 선과 선의 변형인 그래픽 형태를 구성함으로서, 또 다른 현실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구성주의적이다. 그녀의 작품은 1920년대의 구성주의나 1960년대 중반의 옵아트와도 관련이 있지만, 형식상의 유사성을 살피기보다는 '인지이론 및 인식론적 사유경향으로서의 구성주의(Konstruktivismus)'(G. 슈미트) 담론과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인식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폐쇄된 체계와 관련된다. 전에는 붓으로 그렸지만, 지금은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도 활용하고, 무엇보다도 작품을 보는데 있어 관찰자의 구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지각한다는 것과 사유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저 단순히 현실의 상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환경 안에서 우리의 활동이 가지는 상, 즉 우리가 실재에 부여하는 상이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사물들은 행위이자 사건의 결과인 것이다. 지각한다는 것과 인식한다는 것은 외부세계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그 체계가 행하는 조작들의 목록화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세계를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가 사는 그 세계를 생성한다'(마투라나). 경지연의 작품에서 지시는 기호와 대상 관계를 통하여 모델화 되는 것이 아니라, 분절된 기호복합체를 통해 생성되듯이, 인간은 실재 그 자체와 대면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인 의미의 실재에 얽매이고자 하지 않는 경지연의 작품에서 현실은 일련의 모델이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존재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는 작가는 구조적으로 구체화된 체계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서 구체화되는 인지영역에 근접한다. 미의 영역 역시 과학이나 생명처럼 자율성이란 속성을 지닌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모든 자율적 체계들에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조직상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조직상의 폐쇄성과 자기생산은 동일한 것이다. 가령 시계처럼 회전하고 있는 모아레 작품에서 보여지는 폐쇄성은, 상호의존적인 그물조직을 형성하는 과정들의 순환적 연속으로부터 생기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 경지연의 작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속성과 구조보다는 살아있는 유기체들의 경험과 관련된다. 구성주의자들은 유기체가 자신의 경험들을 동화하고 조직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U. 마투라나는 [인지]에서 생명을 체계로 간주하며, 체계로서의 생명은 곧 인지이며, 그 인지 영역은 곧 자기 생산이 가능한 상태의 영역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인지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인지하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발생하는 정보는 단순히 수용되거나 이송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구조를 모사하거나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어진 결과로 인도되는 기능적 경로를 그려 보이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작가는 무엇이 실재세계의 구조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의 경험현실의 구조인가를 묻는다. 구성주의자들은 지각의 대상들(자극원)이 행동을 조절한다(반응)는 일반적인 행동모델을 비판한다. 그들은 행동은 이를 통해 유기체들이 그들의 감관을 통해서 들어온 것(입력 데이터)을 조절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행동은 지각을 조절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앞에서 벌어지는 지각은 중립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 지각행위는 그저 단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행동 결과이다. 그것은 소박한 경험론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사물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은 우리가 만든 구성체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 그녀의 작품에서 '사물성', 즉 '지각된 속성들'은 하나의 통일적인 대상으로 통합되는데, 그것은 사물의 객관적인 실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토마스 쿤은 시각적 패러다임이 지각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가정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보는 것은 두 가지에 따라 좌우된다. 그가 무엇을 쳐다보는가, 그리고 이전의 자신의 시각적, 개념적 경험이 그로 하여금 무엇을 보도록 가르쳤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경지연의 작품은 수동적인 수용이라는 절차를 전제하지 않으며, 또한 재현적 모델이 아니라, 유추적인 상응을 요구한다.
경지연의 작품은 명확하게 정의된 세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은 이미 형성된 개념구조들에 동화시키는 가운데 세계를 구성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구성개념은 대상들과 세계가 유기체의 복합적인 산출물임을 강조한다. 구성주의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유기체인 동시에 유기체들의 관찰자요 구성자이다. 바로 이 이중의 역할 속에 혼란이 야기될 위험이 있다. 구성주의는 유기체의 지식이 바로 자신의 활동으로부터 싹튼다는 통찰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인식론적 독단론에 이를 수 있으며, 각 인간들을 고립시키는 내밀한 체험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작가는 반복과 공통성에 대한 특징이 결부되어 있는 지각의 속성을 활용한다. 시각은 '지금' 대신에 보다 명맥한 지각상을 가지고 있는 '언제나'라고 하는 항상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 경지연은 선을 움직여서 실체의 환영illusion을 만들어낸다. 추상적인 선은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사물의 구조와 운동을 표현하고 있다. 각 부분의 패턴을 볼 때 느끼는 추상적인 율동에 눈을 실으면 사물이 드러난다. 율동은 패턴들을 반복함으로서 이루어지는데 반복은 점진적으로 어긋나면서 흐르고, 그것은 어떤 형태를 구성한다.
반복적 율동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옵티컬 패턴은 모아레moire 효과를 낳는데, 그것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의 결과이다. 현란한 시각효과를 구사함으로서, 견고해 보이는 이 세계를 뒤흔들고 환각같은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경지연은 2 차원적 표면에 가해진 표식들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 패턴들에서 3차원적인 환영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눈속임이라는 미술의 오랜 관례를 따르지만, 전통적인 재현의 방식이 아니라 구성의 방식을 따른다. R. 셰퍼드는 [마음의 시각]에서 우리 앞에 있는 물체들과 항상 직접적으로, 또 완전하게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추리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면, 광학적 묘기나 착시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럴 때 속임수 그림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의 그 모습대로, 즉 이차원 표면에 그려진 색 조각 패턴으로 경험될 것이다. 셰퍼드는 위상수학의 기본 정리에 의거하여 3차원 공간의 물체들간의 관계가 2 차원 투영에 그대로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미술은 어떤 다른 것, 즉 3차원 세계에 있는 보통의 물체들과 사건들을 표상하기 위해 인위적인 2차원 패턴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착시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착시가 낳는 애매성이야말로 미술이 가진 무한한 풍요함의 주요 원천이기도 하다. ● 경지연의 복잡한 패턴을 바라보는 관객은 언제나 정확한 하나의 색 조각 패턴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 패턴에 있는 다소 다른 관계들을 택하면 다른 형상--가령 같은 형태의 뒤집어진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보통 어떤 삼차원 장면을 나타내는 그림은 그 자체의 틈 구멍을 암묵적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이상적인 관찰 지점을 조금 벗어나도 애매해진다. 경지연의 작품에서 기하학적으로 규칙적인 패턴들은 명확한 초점을 비껴나야 작가가 의도했던 형태가 떠오른다. 그녀의 작품은 공간상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이거나 대칭적인 패턴을 시각화함으로서, 뇌의 잠재적인 만화경적 능력을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어지러운 옵티컬 패턴과 가면의 형상이 이중적으로 입력된 작품은 가면과 현기증의 연결이라는 인류학적 주제와 연결된다. R. 카유와는 '가면과 현기증'이란 부제가 붙은 책에서, 가면을 쓴 자가 행사는 위장(僞裝)과 모의(模擬)가 현기증이나 황홀의 속성과 결합하는 순간을 언급한다. 가면을 쓰는 행위에는 자신과 역할연기 사이에 이중화(분열)가 있다. 그것이 현기증과 결합하면 혼란과 패닉상태를 불러온다. 가면과 옵 패턴이 공존하는 평면작품은 가면과 현기증이 결합하여 지각이 혼란스러워지는 위험한 영역을 다룬다. 그 결합은 환각에 홀린 자의 의식 속에서 현실세계가 일시적으로 없어질 만큼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다. 카유와는 모의와 현기증의 결합이 다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에, 성스러움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한다. 위장과 현기증을 결합은 성스러움을 규정하는 공포와 매력의 혼합을 낳는다. ■ 이선영
Vol.20040906b | 경지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