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氏의 하루

김태헌展 / KIMTAEHEON / 金泰憲 / painting   2004_0707 ▶ 2004_0720

김태헌_김氏의 하루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10210a | 김태헌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4_0707_수요일_05: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나를 경계하며 ● 내가 하는 일은 아주 미약하지만 그 바탕은 두루 사람들과 상생을 도모하는 일이다. 나는 복잡한 도시에서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마음과 몸, 머리 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경기도 무갑산 아래 아주 새로운 환경으로 왔다. 이를 두고 주변에선 부러움과 우려의 말들을 한다. 대개는 전원생활에 대한 아름다움을 상상한다. 그러나 도시와 전원생활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단단하게 고착된 도시적 삶의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이곳도 별반 행복하지 못하다. 결국 빠른 도시적 삶의 연장일 따름이다. ㆍㆍㆍ● 지금 그 모든 일들을 깊이 마음에 새겨 보니, 내 경우 이런 일은 스스로 늘 경계하지 않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옳은 일은 옳은 일로, 좋은 만남은 좋은 만남으로서 비롯될 뿐인데, 그 사이에 많은 경계해야 할 것들이 보이니 여전히 두렵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섰다. 이제 나를 먼저 경계하고 천천히 세상일을 함께 살피려 한다._2001. 11. 19 ● 딱새와 존만이 그리고 나 무갑리를 미리 떠난 버스 때문에 쌀쌀한 길 위에서 35분을 서있고서야 다음 차를 탔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고다르 책을 펼쳤다. 버스는 마을 어귀에서 노랑머리에 무스를 잔뜩 바른 20대 초반의 녀석을 태웠다. 녀석은 차에 오르자마자 내 등뒤로 손짓을 하더니 다른 한 녀석과 철커덕 붙더니 곧장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나는 덜컹거리는 차와 뒤통수에서 갈수록 빨라지고 높아지는 수다 때문에 이내 책을 덮고 말았다. ···● 뒤통수에선 수다가 여전하다. 이제 둘은 무아의 상태로 빠져 주거니 받거니 가속도가 붙었다. 들어보니 아마도 컴퓨터 게임에 관한 이야길 하는 듯싶다. 도통 해 본적이 없으니 내용을 알 리 없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두 단어 '딱과 좆'뿐이다. 오른쪽 귀에선 말끝마다 좆좆좆 들리고, 왼쪽에선 딱 하니까, 딱 말이야, 딱 잡으니까, 계속 딱딱딱이다. 이쯤되면 내 성질에 '야! 이 존만 새야 주둥이 좀 닥치고 가자'라고 하고 했을 터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꼬불탕 길을 달리며 내는 차 소리와 뒤에서 떠드는 '딱-좆'이 무슨 지랄 맞은 노랫가락처럼 들리는 게 아닌가. 빵-부릉-딱따다닥-조옷-딱조옷-빵좆-빵딱-조오옷빵따따다다._2002 ●숲 그 사이로 아직까지도 중심에서 비롯된 날카롭게 세워진 감정과 복잡하게 뒤엉킨 생각을 싸들고 매일 마당으로 난 숲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햇빛과 바람, 그곳의 냄새, 새소리, 이름 모를 나무와 풀, 곤충 등 이 모든 것과 자연스레 만나고 나온다. 그 사이로 내 삶의 속도가 점점 줄어 들어가는 걸 느낀다.

김태헌_김氏의 하루_2004

개똥같은 꿈 ● 내가 꿈꿨던 일, 도시에서 벗어서 시골에다 집 짓고 연주와 똥강아지나 키우며 살자던 게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난 그 꿈같은 곳 내집 마당에서 온 동네 개들 싸놓고 간 똥 치우느라 삽 들고 다닌다. 젠장맞을 꿈이 아닌가._2002 ● 나에게 있어 그림 그리기란 잡초 뽑는 게 그 무슨 운명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뽑고 돌아서면 금새 자라는 풀. 안 뽑자니 왠지 그렇고 뽑자니 시지푸스 신화에 걸려든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갈등 거기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봄부터 줄곧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갈등 거기엔 내가 없고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로 나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 지향적 삶의 배려로 둘러싼 나의 모습. 그 허상이 내 현주소였다. 그렇다면 그림도..._2003 ●을선생乙 선생의 팔뚝은 굵다. 팔뚝만 굵은 게 아니라 힘까지 무척 세다. 그 팔뚝으로 백두산을 들어 천지를 단숨에 마시기도 하고, 하찮아 보이는 아주 작은 개미를 쇳조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파워를 제어할 줄 알아야 이런 일이 가능하다. 이는 오르면 내려가고, 들어가면 나옴에 있어 주저함이 없는 삶의 태도에 근거한다. ● 乙 선생은 돌았다. 삶과 미술이 이분화 되어 어느 한 쪽으로 달릴 때, 乙 선생은 그림을 통해 편향 없이 자신과 세상의 은폐된 구멍에 끈질기게 자신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한편 하이데거의 '거기에로의 현존재의 존재적 투사 그 열어 밝힘' 즉 존재와 시간의 해석에 앞서서, 乙 선생은 삶의 시간과 공간 위에 無事之畵의 흔적들로 자신의 삶을 계속 일으켜 세우면서 텍스트가 갖는 소통적 구조의 난해함을 일거에 거두어 내버린다. 그렇게 乙 선생은 찐하게 인생을 한 바퀴 돌아 나왔고, 비로소 '나는 존재한다. 고로 작업한다'라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_2003. 11. 19

김태헌_김氏의 하루_2004

소통 ●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보면 꽃향기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흩어지는 소통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삶의 모든 것을 현실의 점유로 환원시키는 것에 기대 가치를 두고 살지 않는가. 그 질긴 현실에로의 집착이 결국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는 것을..._2004

김태헌_김氏의 하루_2004

잡초 같은 그림 ● 해가 지날수록 마당에 잡초가 무성해졌다. 최면에 걸려 땅에 머리 처박고 종아리 저리도록 잡초 뽑아대던 일도 이제 시들시들하다. 몸이 지쳐서는 아닌 것 같다. 전엔 인위적으로 옮겨 심은 것들에만 관심을 쏟고, 이름 모를 잡초는 눈에 가시처럼 쳐다보았다. 그러던 게 시간이 지나니 이것들도 내 다양성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좀처럼 내 의지대로 안 되는 그 하찮게 보았던 놈들과 끈질기게 씨름하다보니 서서히 내 삶의 맥락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진 것 같다. 개인전을 한 달여 앞두고 그동안 그려놓았던 작은 그림들을 살펴보니 내 집 마당을 똑 닮았다. 그 안엔 잡초 같은 그림이 무성하기까지 하다. 어쩌랴 마당에서 배운 공부로 두 눈 질끈 감고 밀어 붙여야지!_2004. 6. 9

김태헌_김氏의 하루_2004

김태헌 ● 경원대 회화 전공 후 여기저기서 개인전을 하였다. 2001년 사루비아다방에서 '화난중일기' 전시를 한 후, 경기도 광주에서 김을 선생이 손수 지어준 집에서 살고 있다. ■ 김태헌

Vol.20040706a | 김태헌展 / KIMTAEHEON / 金泰憲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