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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01_토요일_05:00pm
갤러리 카페 봄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345-3번지 Tel. 02_502_0606
예술은 궁극적으로 고독한 행위이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그래서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홀로 남겨진 작업실에서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의 접합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현실에서 이상으로의 무리한 도약과 아슬아슬한 착지로 이어진다. 아이러니 하게도 예술가의 이 같은 불안한 안착은 또 다른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언제나 명확한 해답을 유보한 체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도약과 착지 그리고 또 다른 도약을 위한 숨고르기의 과정에서 형식적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지난 3년 간 탄력적 생동감을 간직하며 괄목할 만한 도약을 보여준 작가 이지연의 작품은 좋은 모범이 된다.
'부드럽다', '말랑말랑하다' 등의 수식어가 붙는 이지연의 작품은 이번에도 역시 캔버스 대신 솜과 비닐을 사용해 촉각적 감성을 극대화시켰다. 눈을 통해 대뇌에 전달되는 논리적 정보체계가 아닌 손끝을 통해 가슴에 전달되는 감성적 접근이 바로 이지연의 작품이 취하고 있는 태도이다. 그것은 느리지만 물리적 존재감을 확인하며 일 대 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접촉이다. 언어와 시공간을 초월하며 하나의 영역을 다른 영역으로 이어준다. 이처럼 대상을 해석이 아닌 그들 사이의 관계로 드러내고 있는 촉각적 감성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연결된다. 그래서 반쯤 투명한 비닐 너머로 그 모습을 살며시 피어내는 꽃의 형상은 촉각적 감성에 의해서 비로써 완전해진다.
이지연은 꽃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하는 꽃의 삶이 인간의 그것과 닮아 있다. 꽃잎의 아스러질 것 만 같은 유약함은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감성적 영역만큼이나 섬세하게 묘사되고, 덩굴처럼 굴곡지며 뻗어 나가는 줄기의 변덕스러움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 그러나 작가가 손끝으로 느끼며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꽃만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가로지르며 작가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기억에 기초한 이야기이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봄꽃의 화사함이 존재하듯이 작가에게 있어 지난날의 기억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낸 발자취인 셈이다.
기억의 파편을 솜을 통해 구체화시키고 있는 이지연에게 있어 형상을 향한 수공성은 가장 큰 도전이다. 캔버스 대신 사용하고 있는 솜 표면에 색과 형상을 새겨 넣는 과정은 흙을 이용해 형상을 담아 내는 도예가의 손을 닮아 있다. 거친 마티에르에서 미세한 표면처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감이 공존하는 이지연의 작품은 각기 다른 다양한 솜 조직을 하나로 이어주는 작가의 능숙한 손놀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정한 형상도 없고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비정형의 섬유조직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지연은 초기단계부터 배경에 사용될 솜과 색을 고르며 화면 구성에 들어간다. 작고 여린 잎에 사용된 솜이 다르고 입체감을 주기 위해 사용되는 솜이 다르지만, 이들 모두 작품 안에서 하나가 된다. 오목하게 파내고 잘라 붙이고 색이 입혀진다. 비록 뚜렷한 외곽선은 없지만 얼기설기 짜여진 솜 조직을 통한 이미지 재현은 효과적으로 작가의 '아스라질 것 같은'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
이지연의 작품에서 상호 연결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 연결성은 서로 다른 결의 솜 조직을 하나로 이어주는 물리적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부공간과 외부공간, 이상세계와 현실세계,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반투명 비닐을 사이에 두고 충돌한다. 그러나 그것은 충돌에 의한 세력 싸움이 아니다. "자신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직접 손을 사용하여 작업하는 이지연의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또한 서로 다른 결의 솜 조직을 연결시키는 섬세함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두 개의 다름은 서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맞대고 연결된다. 그래서 이지연은 작업하는 자신의 모습과 현실 속의 자아 사이의 불일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 다름과 차이가 결국 하나의 몸에서 태어난 두 개의 얼굴임을 알기에 작가의 소명이 더욱 분명해지는 건 아닐까? 차이의 극복이 아니라 차이를 서로 연결시키며 그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지켜내고 있는 작가의 태도가 돋보인다.
이지연의 작품은 삶의 구체적 양태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적 세계를 표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 꽃을 통한 이미지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 작가에게 있어 꽃은 삶과 죽음을 잉태한 자연의 상징, 옛 기억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접속코드,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 삶의 모습, 작업 속의 자아와 현실 속의 자아 사이의 불일치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 등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이 같은 다양한 해석은 작가 자신이 만든 내적 세계와의 오랜 소통에서 비롯된다.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스스럼없이 넘나들 수 있고 사물의 원형적인 본질 즉 자연성에 와 닿으려는 욕망이 꽃의 형상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 이대형
● 갤러리 카페 봄(Tel. 02_502_0606) 오시는 길 4호선 과천청사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2정거장, 안양방향 갈현동 찬우물역에서 내리면 됩니다.
Vol.20040521c | 이지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