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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3_0723_수요일_06:00pm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Tel. 02_736_2500
꿈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쯤 일까? ●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꿈이란 '메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구별이 사라진 일그러진 공간이 아닐까? 잠재의식이 표출되는 노즐 역할을 하기도 하고 현실의 이미지를 새롭게 가공해 내는 발전소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다. 내적인 에너지와 외부적인 상황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공간 꿈. 여기 그 경계를 찾아 꿈의 모호한 세계를 탐험하는 작가 이지연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자. ● 이지연은 이번 『동침일몽』전을 통해 꿈과 현실이 뒤엉킨 공간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작가와 한자리에서 작가의 꿈을 공유해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전시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있어서 꿈이란 동화책 속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를 지탱하던 '夢(몽)'은 넘어져 가슴을 아리게 하는 '멍'이 되었다. 무엇이 이지연의 꿈을 '멍'으로 변하게 만들었는지 멀리서 지켜보아선 알 길이 없다. 아무래도 그의 침실을 살짝 엿봐야 할 것 같다.
전시장 안쪽에 설치된 반투명한 비닐 커튼을 걷어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내밀한 공간이 펼쳐진다. 솜과 작가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 비닐 이불과 베개가 놓인 작가의 침실이다. 작가는 반투명한 비닐을 사용하여 투과성과 불투과성, 노출과 감춤,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를 흐려 놓는다. 그 흐려진 경계를 넘어 침대 속으로 들어가 작가와의 동침을 감행하자. 침대 옆쪽에는 작가의 모습이 프린트 된 거울이 위치하고 있고 주변 벽면은 온통 비닐과 그 안에 갇혀 표류하고 있는 이미지들로 도배 되어 있다. 침대 위에 누워 거울 속의 작가와 나란히 피사체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와의 동침 그 첫 번째 단계는 다름 아닌 피사체가 된 자아의 발견이다. ● 내가 아닌 남이 되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사고의 자유로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반성과 명상의 시간. 작가는 자신의 꿈속으로 관객을 끌어 들여 일상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기를 촉구한다. 두 번째 단계는 반성과 명상을 통한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출구를 찾는 것이다. 투명한 그러나 밀폐된 비닐 안에 갇혀진 작가의 머리카락과 솜뭉치는 피사체로 던져진 체 길을 잃어버린 작가의 분신이다. 비닐 커튼으로 둘러싸인 작가의 침실에서 순간 폐쇄공포를 느낀다. 중량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솜과 비닐은 어느새 작가의 호흡을 가로 막고 서는 거대한 장벽으로 변한다. 그의 '夢'을 '멍'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어쩌면 이 장벽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생긴 상처가 아닌가 싶다.
이지연이 이야기하는 꿈의 정체를 보기 위해서는 시각에만 의존해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보다 직접적인 느낌을 가지고 그의 작품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작가는 시각성 이외에 촉감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만져보고 눌러보며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표면 아래에 놓여 있는 솜뭉치와의 대화를 시도해 본다. 역시 작가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키워드는 모호성이다. 견고하게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잔잔한 수면처럼 투명한 화면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 또한 이미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부표처럼 표류하고 그것을 싸고 있는 껍질은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처럼 반투명하다. 얼기설기 엮어져 있는 솜 조직에 스며든 물감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꽃잎은 마치 안개 속에 알몸을 숨기고 있는 여인의 모습처럼 위태위태해 보인다. 또한 작품이 뿜어내고 있는 모호성은 작가가 그려내는 능소화의 그것처럼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독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까? 이지연의 꿈의 정체에 접근하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너무 멀리 서면 꽃잎의 향기를 맡을 수 없고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독이 있는 가시에 찔릴 것 같다.
긴 호흡을 내 쉰 뒤 이지연의 작품을 바라보며 자욱한 안개 뒤에 숨겨진 풍경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저 암흑 속엔 무엇이 숨어 있을까? 바람도 없는 침침한 공간 속에서 시신경을 바짝 긴장해 보지만 역시 작은 물방울 입자의 차가운 촉감을 피부로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해결될 문제인 것 같다. 안개 속에 은닉하고 있는 형체들을 발견할 무렵 다시 길을 잃고 새로운 길을 찾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러나 어느새 다시 원점. 출구 없는 미로라는 것을 알고도 안개의 늪 속으로 뛰어든 자신을 원망하기에는 안개 저 너머에 숨겨진 미지의 존재가 풍기는 매력은 너무나 크다. 이지연은 이처럼 출구 없는 미로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인간의 심리;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 가려진 것을 들춰보고 싶은 욕망, 숨겨진 것에 대한 집착을 다루고 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찾으려 하면 도망가고 숨어버리는…그래서 나는 이지연이 만들어 놓은 '동침일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 이대형
Vol.20030722a | 이지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