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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505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제5전시장 Tel. 02_736_1020
젊은 고민, 새로운 조형성, 그리고 생명예찬-언어 구조의 탐험 ● 세계적인 다중매체 작가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은 "War"라는 단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거기서 "Raw"를 발견했다. 두 단어는 실은 같은 알파벳으로 구성되었지만 역순으로 읽어야 서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뜻도 매우 상이하다. 그러나 작가는 전혀 다른 두 단어사이에서 재미있는 관계를 발견한다. 전쟁과 날것은 매우 다르지만, 마치 하나의 세트를 이루듯 입에서 가깝게 도는 어감과 발음을 갖는다. 그런데 나우만은 그것이 단어의 외적 특징에 그치지 않고 내적 관계로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전쟁'과 '날것'이 네온튜브에서 서로 바뀌는 순간에 언어의 구조와 의미간의 아이러니는 드러나고, 단어를 둘러싼 복잡한 이미지들이 작동한다. ● 전쟁은 문명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등장한 인간의 전유물이지만 날것의 본질을 갖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언어유희(punning)는 단순한 어감의 반복이나 단어의 조합을 넘어 인간 인식 구조의 복합성과 언어 개념의 역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층적이다. ● 브루스 나우만처럼 언어의 유희 안에서 사고의 비이성적 본질을 발견하고 그것의 간극을 자극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이동재는 쌀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젊은 작가로 많은 매체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의 "rice_price"는 이번 전시의 제목인 동시에 나우만을 연상시키는 언어 탐구의 화두가 된다. 먼저 언어의 음율과 소리(phonic)의 조화가 교묘하다. rice(쌀)는 값이라는 price와 발음과 단어순서가 많이 닮았다. 또한 쌀은 가장 중요한 곡물로 역사적으로 화폐에 상응하는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쌀이 갖는 가치는 바뀌고 있다. 마치 단순한 단어의 철자 변환 뒤에 숨은 단어의 애매한 영역처럼 쌀은 매우 분명한 단어이지만 그 상징성은 계속 변하고 있다.
매체의 무거움과 초상의 가벼움 ● 3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농업과 농민이 세상의 근본(農者天下之大本也)이란 문구를 걸어놓은 학교에 다녔던 기억을 다 가지고 있다. 그 사고는 국민들에게 계속 이어지면서, 아무리 농민의 수가 전체 국민의 5%이하로 떨어져도 농업과 농민은 우리가 수호해야할 무엇이라고 믿게 한다. 그래서 농산물 개방의 외압을 받으면 농업 수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데모를 벌이고, 농지가 다른 용도로 변경될 때 함께 성토하기도 한다. ● 이 모든 기억은 농사가 갖는 의미가 통계를 위해 존재하는 산업구조의 하나가 아니라 뭔가 다른 상징성을 띠기 때문일 것이다. 쌀을 수호하는 것은 전통과 민심의 수호이자, 뿌리에 관한 기억과 연결되어있다. 때문에 쌀을 미술 작품에 사용하는 의도는 다분히 곡식의 의미를 넘어, 공동체의 역사와 민족의 생명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포함한다. 서구를 비롯해서 동북아시아 지역만 벗어나도 주식이 되지 못하는 쌀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곡물이자, 매일의 바탕이 된다. 작가는 자신의 60일간의 점심을 사진으로 찍었다. 음식의 기록은 작가의 본질적 삶의 수단이자 생명 연장의 증거인 것이다. ● 작가는 쌀이나 다른 곡류, 콩, 팥, 수수 같은 것에 대한 특별한 개인적 기억은 없다고 한다. 그는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쌀은 그에게 매우 객관화된 하나의 물질일 뿐이다. 그러나 그 물질은 순수한 조형언어로 전환되면서, 또 하나의 기호로 작용하게 된다. 작가는 이 비어있는 기호의 잠재적 무게에 '값'과의 애매한 상관관계를 부여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그것의 변환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의 쌀알은 과거의 심각한 의미와 조형언어라는 새로운 맥락 사이에서 다양한 기호로 읽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다층적 맥락을 내포하고 관객에게로 무게를 옮기운 채, 그들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이해되도록 열려있다. 주관적 감정이입이 없는 빈 기호로서의 쌀이 가진 새로운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형성이란 미적 주제에 대한 작가의 관찰과 고민의 여정일 것이다.
0과 1 사이- 디지털 이미지의 입체화 ● 프로이드, 제인 구달, 박생광, 아인슈타인, 김구, 부시, 달리, 마릴린 먼로, 해골, 심장, 뇌, 그리고 작가 자신의 얼굴을 다양한 배경의 캔버스 위에 쌀로 표현한 이동재의 작품은 사실 낯익은 형상이다. 마치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산뜻함과 단순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인물의 초상들은 이미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화 된 이미지에 기초해서인지, 쌀알로 다시 묘사되었지만 매체의 특징인 기계적이고 통일된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게 느껴진다. 재생된 이미지라는 점에서 작가의 작품은 개인의 개성을 다시 와해시키기도, 또는 종합하기도하는 이중적 역할을 하고 있다. ● 그러나 이번 전시회 작업들을 구성한 쌀은 즉물적이리만큼 시각적 표현-착시-을 위해 사용되었다. 색색의 캔버스 위에 놓인 쌀알들은 하나의 조형적 단어가 되어서 화면을 이루어간다. 마치 하나의 비트(binary digit)가 컴퓨터 화면을 구성하듯, 치밀하고도 규칙적으로 사용된 쌀은 매체가 구성되는 2진수 값, 0과 1을 닮았다. 마치 디지털 코드처럼 보이는 쌀은 실제로 0과 1의 모양을 갖는다. 비트로서의 쌀이 컴퓨터를 벗어난 인간 초상을 다시 새로운 코드로 전환시켜 보여준다. 여전히 미술은 매체와 그것이 재생산하는 이미지에 반응하지만 그들과 다른 독자성을 드러내 준다. ● 흑미와 백미로 만든 캔버스 위의 형태는 새롭고 신선하다. 쌀은 아마 컴퓨터 세대와 가장 거리가 있는 아날로그적 산물일 것이다. 이런 아날로그 방식의 재료가 디지털화 된 도상을 다시 물성을 갖는 무엇으로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작가는 인물의 초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의 예술 재료는 조금 가벼운 사이버 공간과 조금 무겁고 오래된 쌀이다. 그러나 쌀을 덧입은 이미지들은 새로운 무게를 갖는다. 조형성과 상징성의 무게를 동시에 지닌 쌀을 통한 작업은 그러나 새로운 방향으로의 비전을 또한 기대하게 한다. 쌀을 이용하여 단순한 변형 이미지나 낯익은 작품들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쉽게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젊은 고민은 그래서 쉴 수 없다. 더욱 강한 에너지와 우리 모두의 본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시선을 계속 기대해본다. ■ 진휘연
Vol.20040505c | 이동재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