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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421_수요일_05:00pm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2-2번지 Tel. 02_733_9040
이유진의 "변성(變性)하는 살"展 : 신체와 장신구의 이중적 국면 ● 이유진의 작업은 인간의 신체와 상관적 관계에 있는 장신구를 제작하는 것이다. 작가는 신체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정작 부착이나 착용을 두렵게 하는 이중적 국면의 공예 작업을 한다. 좋은 작업이란 작가 혼자만의 만족이 아닌 주변의 타자들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혹은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은 그의 작업을 장르를 넘어서서 생각하게 만든다. 즉 작가는 공예가 단순히 그 기능성에 의해 충족되기보다는 다른 의미 작용을 지향하는 작업으로 실천되기를 희망한다. 이는 기능성과 완전히 결별하지 않으면서 동시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적 징후들을 조형적으로 체화하여 타자들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작가의 작업에서 근간이 되어온 신체에 착용 가능한 장신구는 그간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는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과 이번 전시에서 그 정도의 차이는 분명하나 장신구로서의 작업 경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1998년의 전시에서 보여진 '립스틱'이나 '수갑'등의 작업은 다소간 장신구라기보다는 신체와 연관된 대상이나 상징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이러한 미약하게 신체와 결부된 대상물로서의 작업은 2000년의 전시에서 '치장'이라는 구체적 작품 제목이 등장하고 창살을 모티프로한 브로치나 날카로운 창 끝으로 마무리된 '흉기'라는 제목의 목걸이 등이 보여지면서 장신구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되었다. 2001년 『아름다운 흉기』라는 전시 타이틀과 함께 본격적인 장신구로서의 작업 경향을 드러낸다. 날카로운 창 끝은 더욱 길고도 예리하게 흉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다듬어짐과 동시에 신체에 더욱 밀착하여 부착할 수 있게 밀도와 완성도를 더해갔다. 차가운 금속성의 소재는 기하학적 형태와 가늘게 속도감을 띤 예리한 처리방식과 만나면서 흉기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견고해진 것이다. 금새 찔릴 것만 같은 '흉기'의 작업들과 더불어 금속성의 성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깃털과 금속재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유혹'들은 확실히 또 다른 변조를 예고하고 있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러한 변조를 『변성하는 살』이라는 타이틀 아래 유감 없이 발휘한다. 기다란 채찍을 달고 있거나, 조금만 더 가까이가면 산산이 찢겨나갈 것만 같은 톱니모양을 하고 있거나, 지옥의 가시덤불을 연상시키는 촘촘한 가시들의 판이 있는 반지들이 마치 사파리의 맹수들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위용을 뽐내듯이 번뜩거린다. 거기에 '변성하는 살'의 분위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핏발이 선 눈알을 모티프로 한 반지나 실제 손가락과 거의 똑같이 재현된 붉은 색의 인조 손가락의 일부가 차가운 원통형의 금속과 연결된 브로치, 동물의 창자를 말려 부드럽고 아름다운 꽃의 형상으로 조형화한 반지 등이다. 이와 같이 작가의 작업에 근간이 되어왔던 장신구는 시간의 축적에 의해 더욱 노골적으로 신체를 매개하게 되었고, 이질적 재료들로 변화의 깊이를 심화시킴으로써 장신구이되 장신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장신구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 작가에 의하면 장신구에는 그 본연의 기능과 이차적 기능이 있다고 한다. 먼저 장신구 본연의 기능이라 하면 인간 신체의 외형에 변화를 주는 미적 기능인 치장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것의 이차적 기능이라면, 단순한 장식으로서의 치장의 단계를 넘어서 부와 권력 혹은 또 다른 욕망의 다층적 의미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단계에서 장신구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감추거나 진실을 은폐하거나 또는 위협이나 복종을 강요케 하는 강제력을 지닌 상징물로 작용하게 된다. 대부분의 작가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흉기로서의 장신구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중적 기능을 표출하기에 적절했던 것이리라. 작가는 장신구임에도 장신구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의심을 갖게 한 이중적 면모를 더욱 가속화시켜 작업의 내용을 이어간다.
돌이켜보면 작가의 작업에서 보여졌던 수갑이나 바늘, 침, 창살 등의 모티프는 금속재의 공통된 성질을 갖는 것 외에 감금과 고통을 암시하는 상징물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사회에서 무엇인가에 억압되어 탈출구를 찾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의 욕구가 팽배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신체의 단절과 파편 및 날카로운 형상들의 반복에 의해 여타의 흉기라는 명제 하에 드러난 작업들은 가시돋힌 장미처럼 근접을 단절시키는 차가움을 들이밀면서 궁극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동시대 무수한 미디어의 허위와 과장에 의해 실재적 사건이나 인간적 진정성에 다가서는 것이 그토록 난해하고 벅찬 일이라는 것을 외치기라도 하듯, 작가의 작업은 신체를 둘러싼 날카롭고 번들거리는 금속의 조형물들이 발톱을 세우고 이를 가는 것만 같다.
그렇게 작가의 미적 범주 안에는 오랫동안 미적 가치로서 고정되었던 아름다움의 속성 외에 이질적 성질들의 결합에 의한 낯섦과 두려움 등이 부조화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또한 죽은 동물의 창자를 말려 다시 아름다운 꽃의 형상으로 조형된 것과 같은 그 왜곡된 장식성과 신체의 관계는 아름다움과 추함, 부드러움과 잔인함, 희망과 절망, 나아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명암들이 이분법적으로 극명하게 분리되기보다는 근소한 차이에 의한 결과로서 인지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단면이란 또 다른 이면을 수반하는 까닭에 추함 속에 이미 또 다른 아름다움을 담지하는 것과 같은 이중적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 박남희
Vol.20040419b | 이유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