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흉기

이유진 금속展   2001_1213 ▶ 2001_1228

이유진_흉기-목걸이_금, 은_145×16×16mm_2001

표 갤러리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2-6번지 Tel. 02_543_7337

헤르메스와 그에게 유혹당한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양성의 신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e)를 비롯해서, 자웅동체나 이성과의 지나친 합체욕으로 비극을 맞는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종종 등장한다. 에코?나르시소스, 카드모스?하르모니아, 케르케리온의 전설, 테레이시아스의 인생유전 등등…. 이 모든 이야기의 결정판이라 할 헤르마프로디테 신화는 제우스와 아폴론이 자웅동체의 부자연스런 분리를 행한 이후 끊임없이 구전되어 온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자, 완전성이다. ● 기본적으로 이유진의 작품들은 여성의 가슴이나 머리, 귀 등에 매달리거나 부착되는 장신구다. 여성의 몸을 치장하고 한결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여성의 물건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는 헤르마프로디테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유진_유혹-목걸이_금, 은, 깃털_100×130×5mm_2001

작품에서 보이는 기하학적이며 견고한 구조와 반질반질한 표면부터가 여인의 세련됨과 남성의 강직함을 감지케 한다. 뿐만 아니라 공업적인 제작방식을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깎고 두들긴 결과물인 그의 작품은 전통적으로 남성적으로 성별화된 것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손의 노동이 필요했음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작업했다는 도덕적이고 관습화된 개념들에 조응하면서, 정직하고 쓸모있는 남성적 노동자가 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빗겨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또한 그 형태가 암시하는 남성성(masculinity)과 남근(phallus)의 강조는 남성적 힘과 권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한편, 둥근 형태에 깃털 등이 달린 장신구는 단순한 형태를 취하면서도 성차의 도식적 이미지를 위해 약호화되었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업은 단단한 금속으로 구조적이고 정형적인 작업과, 털 등의 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유기적이고 비정형적인 작업을 접합한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이렇듯 정형과 비정형, 수용과 돌출, 견고함과 부드러움, 부드러움과 공격성 등 상반된 이중성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남성성과 여성성의 공존일 뿐만 아니라 작품세계의 특징이 되고 있다.

이유진_유혹-브로치_금, 은, 깃털_각각 80×15×80mm 또는 90×15×90mm_2001

그의 작품에 내재하는 이중성은 여성 작품에 내재하는 이중성이기도 하다. 즉 여성작가가 남성적 경험과 여성 본성을 바탕으로 이중적 코드의 여성적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여성 작가의 작업은 역사와 전통의 대화 속에서 모성·부성의 원천 모두에 관계되어 복합적이며 이중적일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서부터 여성 작업의 특징이 형성된다. 이유진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이중성과 복합성이 반복되어 드러나며, 그것이 개인경험과 사유의 범위에서 더욱 확장되어 모든 부성과 모든 모성이 결합된 헤르마프로디테에 이르길 기대해본다. ■ 원형준

Vol.20011222a | 이유진 금속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