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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402_금요일_05:00pm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별관 2층 Tel. 02_737_7650
"어릴 적 한 친구가 선물을 주었다. 포장지를 뜯자 또 포장지가 나왔고, 그 포장지를 뜯자 또 다른 포장지가 나왔고, 그리고 또, 또... 결국 그 친구가 준 선물은 10개가 넘는 포장지였다." 선물이라는 용어와 가까운 것은 그 속의 내용물이기보다는 겉포장인 듯 하다. 겉포장은 이것이 명백히 선물임을 증명해주곤 한다. 작업을 하면서 캔버스를 짜고, 바르고, 그리는 과정이 이 선물을 포장하는 일과 많이 닮아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캔버스는 포장을 뜯으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른 나무 골격이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포장 자체가 선물이 되는 것이지 않을까. 의미와 포장이 서로간에 진실성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작업에서의 포장은 소모적인 포장의 역할이 아닌 가치를 가진 그 자체로서의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본인이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선물은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것을 또 하나의 사람이 관찰하게 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집안에서 내가 쓸려고만 하면 사라지는 작은 소품들에게 다리를 달아준다거나, 코가 낮은 원숭이에게 오뚝한 코를 선물하거나, 소심한 코끼리에게 호랑이 무늬의 옷을 입혀주는 등의 내가 개인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사물에게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주는 선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선물하는 방식은 그들의 초상을 그려주고, 또 다른 무늬를 그려주거나, 잡지를 이용해 되도록 멋진 부위들을 오려 붙여 주는 것이다.
이렇게 작업된 것들은 어딘가 사람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게된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 아닌 것들이 사람을 닮아가길 원하는 것 같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학의 발달로 그 사람 아닌 사물들이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당황하게 될까. 혹은 사람의 방식으로 모든 사물들이 생각하게 된다면 모든 포유류들이 호랑이 옷만 사 입게 되지 않을까. 결국 난 그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한계 또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내가 행하는 모든 선물들은 결국 가장 인간 중심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스로의 합리화를 거쳐가는 동안 사람 아닌 것들과의 소통은 단절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 긁적거리는 드로잉 속에서 나는 다른 무늬로 변하거나, 다른 사물로 변하거나, 나의 사소한 사물들을 바라 봐주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되어주는 것 같다. ■ 송하나
Vol.20040402a | 송하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