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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4_0211_수요일_05:00pm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0)2.760.4722 www.insaartspace.or.kr
카메라 렌즈는 물체의 상을 투영하고 통과시켜 필름에 이미지를 맺히게 한다. 이것은 렌즈의 일차적 기능으로 우리는 이 사실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렌즈는 물체의 상하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 고약한 놈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의 뒤바뀜 현상을 '도립(倒立, resupination)'이라 하는데, 본래 식물학 용어로 식물의 기관이 애초의 위치와 반대로 되어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세상을 바라보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통행세를 받겠다는 렌즈의 고집처럼, 박정혁의 세상 바라보기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의미한다. ● 박정혁이 첫 번째 개인전에서 제시했던 '부정교합(不正咬合, malocclusion)'의 전략은 이번 전시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부정교합은 치아와 관련된 용어로 윗니와 아랫니의 교합이 정상관계를 이루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이 용어 안에는, 치열의 상태에 따라 어떤 치아는 정상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비정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관행적인 가치판단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즉 객관적 타당성이 의심되는 나눔의 체계와 고정관념이 문제인 셈이다. 동시에 부정교합의 치아를 교정한다는 행위가 곧 치료라고 여기는 사회의 훈육적인 사고에 대한 경계심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일전에 그가 개를 교육시키는 과정을 찍은 비디오에서도 암시했듯이,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계속해서 무언가를 접하면서 그것을 교화시키기도 하고 또한 그것에 의해 길들여지기도 한다. 날로 개인에 대한 통제방식이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방향을 잃고 타인의 길을 수동적으로 답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통제가 가장 원천적으로 자행되는 지점은 뜻밖에 가족이라는 것이 박정혁의 생각이다. 물론 그가 가족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가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밑에서 기생하는 사회의 관습적인 논리를 찾아내어 그것을 전도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가족은 단순히 무의식과 욕망을 가족 내로 가두고 축소시키는 패밀리 로맨스가 아니다. 가족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가족 외적인 문제, 즉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시켜, 가족과 관련되어 형성되는 담론을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 그의 진정한 관심사이다. 물론 우리에게 있어 가족은 내가 태어난 보금자리로서 내가 양육되고 학습되어 사회화의 첫걸음을 걷게 만드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 내의 윤리라는 거역할 수 없는 당위성 아래서 사회의 질서를 가장 무리 없이 그리고 가장 교묘하게 자신 안에 이식하게 된다. 자식에게 강요된 부모의 욕망은 다름 아닌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욕망이며, 그것은 개인의 개성적인 흐름을 가로막고 억압하여, 사회가 원하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는 수로화(水路化)이자 코드화이다. ● 'family'라는 부제가 붙은 싱글 채널 비디오 「3분 33초」는 천 개의 퍼즐조각을 맞추어 가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일반적인 퍼즐이 동일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여기에 등장하는 퍼즐조각은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어 생각보다 해법을 찾는 경로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완성된 최종화면은 역설적으로 "It's easy"인데, 가족의 복잡한 내부사정을 드러내는 듯 하다. 퍼즐의 매력은, 한편으로 정해진 룰에 따라 하나의 조각마다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이며, 다른 한편으로 다른 사람보다 시간적으로 빨리 정답을 발견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겠다는 경쟁심리이다. 그러나 퍼즐은 남들이 이미 정해놓은 법칙 안에서 그 길을 되짚어가는 것으로, 결국 자신의 학습능력을 스스로 시험하고 평가하여 그 속에서 희열과 실망을 동시에 교차시킨다. 더불어 시간의 인위적인 통제가 가능한 비디오 프로세스와 퍼즐게임의 시간성은 비디오 매체와 퍼즐 오브제, 즉 각기 다른 시간의 교합이며, 이를 통해 퍼즐에 내재된 규칙을 흔들고 교란시키고자 한다.
「166cm」은 직접적으로 가족사를 반영한 것으로 1년 전 병상에 누운 할머니와 조카의 탄생이 이 작업의 모티브이다. 할머니는 단지 '으아'라는 소리만 내는데, 박정혁은 그 소리의 강약을 계산하여 에어 컴프레셔로 모니터를 부상시킨다. 소리가 최고점에 올랐을 때, 모니터는 166cm까지 상승하는데, 이는 작가의 눈높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마주침은 자식으로서 할머니에 대한 신성한 가족적 의무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숙명적 의례이다. 비록 할머니는 기계장치에 의지하여 관리되고 보살펴지고 있지만, 그 작은 몸짓은 아직도 자신은 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생과 사를 통한 세대교체, 즉 생명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고리가 우리를 지배할지라도, 그 운명적 코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소망은 우리의 자생적 욕구일 것이다. ● 하얀 풍선과 소리로 이루어진 「15초」는 꿈을 상징하며, 그가 과거 경험했던 꿈에서 유래되었다. 가족이 모두 등장하고 한명씩 사라지는 과정 중 그들에게서 느끼는 미묘한 책임감, 불안감, 편안함이 그에게 혼재된 감정을 유발하였다. 잠재된 무의식의 발현인 꿈은 살아 있는 생명체만이 공유하는 것이며, 상승하고자 하는 풍선은 제도와 관습을 횡단하고자 하는 우리의 근원적 의지를 대변한다. 비록 풍선은 천장에 부딪혀 15초의 짧은 주기로 다시 내려와야 하지만 그 상승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코드화로부터의 자유로움은 살아 숨쉬는 인간이 지닌 고유의 능력이며, 아울러 박정혁 작업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전시장에 무겁게 울려퍼지는 풍선의 두드림은 아마도 우리의 잠재된 힘을 깨우는 심장박동일 것이다. ■ 류한승
Vol.20040209b | 박정혁展 / PARKJUNGHYUK / 朴正爀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