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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사람들』 출판기념 전시회 2004_0209 ▶ 2004_0229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03-22번지 교보타워 강남교보문고 1층 Tel. 1544.1900
도서출판 호미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9-4번지 가나빌딩 3층 Tel. +82.(0)2.322.5084
사로잡히다-홀림 또는 들림 ● 사진을 찍으려고 서커스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다. 서커스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서 사진을 하게 된 것이다. 찍어서 모아 놓고 보니 다큐멘터리 사진이었고, 거기에 글을 입혀 놓으니 사진 에세이였다. ● 이 책 「곡마단 사람들」에는 서커스에 홀려서 그것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숨쉬고 느낄 참으로 그 품에 깃들인 한 작가의 6년이 서려 있다. 불칼을 쥔 채 외줄을 타고 건너온 어리거나 젊은 날들이 갈피마다 일기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작가는 서커스에 휩쓸린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 작가에게는 어쩌면 서커스 사람들과 같이한 그 6년이 삶을 통째로 아파한 나머지 받게 된 '내림굿'의 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 오진령의 서커스 사진은 바탕에 작가의 주관성이 웬만큼 깔려 있되, 정직하다. 가슴 저 바닥까지 출렁거리면서도 눈길은 담담한 채로 찍은 사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곁에 딸린 이런저런 글이 나지막한 내레이션처럼 들려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미지와 문학을 아우르는 이 작가의 감성은 아무래도 남다른 구석이 있으며, 절제되어 드러난다.
길 위의 나날 ● 사진부터 한 장 보자. 서커스 천막이 서 있고, 그것을 잡아맨 줄들이 치렁치렁하다. 날씨는 잔뜩 흐려서 우중충한데, 이미 비가 지나갔는지 바닥 낮은 곳에 물이 고여 있다. 어수선하고, 을씨년스럽다. 땅바닥에 고인 물, 거기에 얼비치는 하늘과 낡은 담……. 그 언저리에 있다면 우리 또한 길가의 돌멩이와 더불어 이윽고 비에 젖지 않을까. 어느 갠 날에는 시린 몸과 마음을 다독대며 가만가만 볕에 말리지 않을까. ● 서커스 사람들은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봄이면 북쪽으로 올라왔다가 늦가을이면 남쪽으로 내려가는 철새 같은 사람들……. 천막 치고 무대 짓고 재주 피우고, 그렇게 길 위의 나날을 사는 사람들……. 하기야 세상 누군들 떠돌지 않으랴.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이 되는 길 위의 삶을 누구라서 피할 수 있으랴. 어릿광대든 얼럭광대든, 우리 또한 맡은 역에 따라 저마다 곡예를 하며 살아야 하는 서커스의 광대인 것을.
놀이 ● 이 그네에서 저 그네로 몸을 날리며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연기를 펼치는 곡예사에게 눈길을 앗겨 본 적이 있는지. 공중그네타기는 바람의 핵심에서 놀고자 하는 몸짓이자, 이 우주에 두루 깃들인 중력과 숨바꼭질을 하는 놀이다. 그 놀이는 위험하다. 그것을 보노라면 생각은 어느덧 증발해 버리고 몸짓에, 움직임에 온통 빠져들게 된다. 천장 쪽을 보는 관객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을 벌리기 일쑤다. 저희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쥔다. ● 서커스는 쇼, 다시 말하여 놀이고 구경거리다. 일상성과 동떨어진 묘기와 곡예를 매개로 공연자와 관객이 욕망의 일치를,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련의 과정이 서커스라는 공연 예술이다.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어슷비슷한 삶과는 다른 무엇을 느끼려고 서커스를 찾는다. 관객으로 찾은 이들은 거기에서 환상에 사로잡히고 마법에 빠지며, 저희 또한 풍경의 일부로 녹아든다. 어색한 화려함, 덜 세련됨, 왠지 모를 서글픔 따위와 피와 살을 나누는 것이다. 웃음과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알게 모르게 아린 서정이 묻어나는 것은 그 자리가 길 위의 사람들이 만나서 가난한 마음을 주고받는 곳이기도 한 까닭이다.
삶의 원형질을 찾아서 ● 서커스는 가상 공간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헛것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진짜에 가깝다. 서커스로 살아가기는 몸으로 살아가기가 지닌 뜻과 맞먹는다.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말해 주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정직함이고, 우직함이자, 여림이다. 그래서 서커스를 끝내 잊을 수 없는 원체험이나 선체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긴다. ● 「곡마단 사람들」의 작가가 이런 사람일 것이다. 사위어 가는 숯덩이에서 아직도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는 눈이 그에게는 있다. 그러나 얼음 속에 갇힌 불꽃은 몸담음으로도 거리 두기로도, 주관성으로도 객관성으로도 이미지에 마저 담을 길이 없다. 원시림은 마음에 담아야 한다. 이 젊은 작가가 굳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것은 이런 까닭이 아닐까. ● 때로 추억과 향수는 회고 취미에 머물지 않는다. 오진령의 사진 에세이 「곡마단 사람들」은 우리네 삶의 처음을 되새기고, 원형질을 찾는 마음의 의례 의식과 맞닿아 있다. ■ 도서출판 호미
지은이 ● 오진령은 1980년에 서울에서 났다. 서울예술대 사진과를 나온 뒤,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입체미술과에 들어가서 더 공부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접한 서커스에 사로잡혀 그 길로 동춘서커스단을 찾은 이래, 이방인이자 친구로서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며 서커스 사진을 찍어 왔다. 이 책은 그 6년의 소산인 셈이다. 2003년 12월 서울 관훈동 갤러리 Lux에서 사진전 「어릿광대와 사랑에 빠지다」를 가진 바 있다. 2004년 1월과 2월에 걸쳐, 이 책의 발간과 때맞추어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사진전 「곡마단 사람들」을 연다.
Vol.20040201b | 곡마단 사람들 / 저자_오진령 / 도서출판 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