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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3_0704_금요일_05:00pm
일주아트하우스 미디어갤러리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226번지 흥국생명빌딩 내 Tel. +82.(0)2.2002.7777 www.iljuarthouse.org
'추억록'은 한국의 가부장적 권위와 근대화의 기치아래 희생을 강요받았던 노동자들의 삶을 작가 가족의 일상성에 투영한 비디오 작품전으로, 그동안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해온 임흥순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이 전시의 제목 '추억록'은 제대하는 군인에게 주는 '추억록'이라는 사진첩에서 모티브를 딴 것으로, 전시는 근대화를 통과하는 동안 억압되고 무시당한 여성노동자들의 생활의 흔적을 담은 「사진집 I」, 가부장적 사회가 강요한 남성의 역할에 대한 자조석인 조망 「사진집 II」, 작가의 가족들이 33년 만에 다함께 가족사진을 찍으러 간 스튜디오의 풍경을 담은 「가족 사진」 등 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 그간 작가 임흥순은 「이천 가는 길」이라는 비디오 작업을 시작으로 박정희 정권이 서울에서 빈민들을 축출하기 위해 건설한 최초의 신도시 성남의 역사와 현재를 조망하는 공동작업 『성남 프로젝트』, 작가 가족이 오랫동안의 지하 단칸방 생활을 접고 영구임대 아파트로 입주하기 전날 밤의 풍경을 담은 『내 사랑 지하』(2002년 광주 비엔날레) 등의 개인작업과 이주 노동자들의 자발적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미술가 공동체 프로젝트 팀 '믹스 라이스(Mixrice)'를 통해 정치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예술의 역할을 모색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런 작가의 사회적 관심의 연장에 있으면서 동시에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한 영역부터 시작되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정밀한 관찰이기도 하다. 가족의 기록 속에서 한국 사회의 폭력성이 남긴 상처를 발견하는 작가는 그 기억이 각인된 기념사진들을 통해 시대에 대한 은유적인 해석을 한다. 우선 「사진집 I」은 한국의 70-80년대를 어머니의 기념사진들로 추억하고 있다. 일상의 노동에서 벗어나 관광지에서, 모처럼의 나들이에서 꽃단장한 작가의 어머니는 사진 속에서 조신한 한국적 여성의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품고 있는 어머니는 무장한 군인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띤 군사정권의 거대한 동상(모뉴멘트)을 배경으로 단순히 향수나 그리움이 될 수 없는 한국의 트라우마를, 혹은 당신이 평생 가져보지 못한 다양한 자가용들을 배경으로 중산층에 대한 은밀한 열망을 담고 있다. 이러한 어머니의 사진은 산업역군이라는 칭호아래 강도 높은 노동에 자신을 맡겼지만 현재에도 지하 공장들을 전전해야만 하는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의 말없는 희생과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반면 「사진집 II」는 작가의 아버지 사진과 한국 사회가 강요하는 남성성의 집약지 군대와 서대문 형무소, 교과서, 국립묘지 등에서 찍은 자료사진을 대립시키면서 권위주의와 민족주의가 부여한 신화화된 한국적 남성성을 보여준다. 평생을 남자다움에 맞춰, 그리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노동으로 평생을 보낸 작가의 아버지를 반영한 이 작품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 역시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강요와 빈곤의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작가의 가족들은 무표정하고 무덤덤한 얼굴 속에 모든 감정의 켜를 감춘 채 행복한 가족들의 통과의례 「가족사진」찍기를 한다. 그동안에도 세상이 시키는 일에 변변히 저항하지 못했던 작가의 가족들, 아니 우리들은 카메라의 구도에 맞춰 자신의 팔 다리 하나 자유롭게 놓지 못하는 가족사진 찍기에 순순히 따른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족사진 찍기를 간절히 원하던 어머니는 사진을 찍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33년간의 소망이 순식간에 끝나버리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작품들은 「가족사진」과 「사진집 I, II」를 투 채널로 영사하는 멀티 프로젝션의 방식으로 배치된다. 작가가 어떠한 미학적 개입도 하지 않은채 로-테크(Low-Tech)로 작업한 이 작품들의 일차원적 몽타주가 일으키는 예상치 못할 화학반응이 바로 이 전시의 유일한 미학적 장치일 것이다. 그 화학반응은 사진의 간극과 동영상과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족을 객관화시킴으로써 나르시즘의 감상에서 벗어나려는 임흥순의 관조적 자세 때문에 폭발력은 지니지 못하지만 삶에 대한 일종의 이해를 유발한다.
일면 단순한 홈 비디오 형식의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지닌 임흥순의 작품들은 대규모 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타 등의 대형전시를 통해 빠르게 주류로 진입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스타일 비디오'의 한국적 방식을 보여 준다. '다큐멘터리 스타일 비디오'는 비디오 매체의 민주적이고 정치적인 속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참여하는 비디오 아트의 한 방식으로, 기존의 다큐멘터리가 지닌 직설 화법을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형식을 빌어 개인의 삶의 역사를 사회화하고 있는 임흥순의 다큐멘터리적 접근은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 이영자
Vol.20030707a | 임흥순展 / IMHEUNGSOON / 任興淳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