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01_0302_금요일_04:00pm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02_735_4805 altpool.org
답십리 우성연립 지하101호-가족에 관한 이야기 ● 서울은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 공간으로 빠른 성장과 더불어 자본의 불균형적인 축적으로 계층간의 분화가 심화되온 곳이다. 나는 주변부의 버려진 공간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생산자로서의 노동자,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줌으로써 미술의 역할과 방향 그리고 그 진폭을 넓혀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본가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노동자 계급으로 만든 후 잉여가치를 착취, 불평등한 생산관계를 만들었다. 여기서 발생한 도시빈민, 노동자는 공장, 건설현장,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지하, 옥상 등의 열악한 환경과 저소득으로 어려운 삶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무엇보다 임금을 비롯한 소득 수준의 격차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주택과 같은 자산소유에서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불평등에 대해 보다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원화된 도시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 분극화된 차이 속에 계급갈등이 존재하고, 지배계급은 대중매체와 그 외의 여러 가지 장치들을 이용하여 개인들의 의식을 조작하고 더 이상 자신을 자극하거나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학교와 군대의 예를 들면 쉽게 알 수 있다. 체육, 교련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있는 자세 등의 '가르침' 당한다. 손은 체육복 바지 선에 주먹을 살짝 쥐고있어야 한다든지 고개는 턱이 앞가슴과 동일하게 등의 군인다운 자세를 배우게 된다. 이렇듯 학교란 지배문화를 쉽고 자연스럽게 물들이는 장소이다. 특히 군대의 경우 엄격한 규칙과 규율을 통해 기계적인 사회구조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훈육되는 곳이다. 소위 군대를 갔다오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가 아닐까... 학교와 군대는 이처럼 우리가 사회구조에 순종하게 하는 지배문화의 도구인 것이다. 문화라는 것이 자유롭다. 너무나 자유롭기 때문에 그것이 억압인 것을 알 수 없다. 이러한 문화의 기술은 한 단계 규율기관으로부터 다음 단계의 규율기관으로 이동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모든 규율에 고유한 권력-지식의 도식을 어떤 집중된, 혹은 관례화 된 형식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 사회의 억압적 관리가 합리적, 생산적, 기술적 및 전체적으로 되면 될수록 그 속에서 관리되고 있는 개인들은 그 노예 상태에서 일탈이라던가 혹은 자기해방을 달성하는 수단과 방법에 대해 점차 그 능력을 상실하고 갈수록 상상하기 곤란하게 된다. 또한 하위계층의 노동자는 하나의 도구이며 효율적인 기계의 부속품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과잉 발전된 국가에서는 인구의 더욱더 많은 부분이 하나의 거대한 포박된 청중으로 인식된다. 그들은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포박되는 것이 아니라, 오락과 교양의 미디어로 타자로 하여금 그들의 소리, 모습, 냄새를 같이 하도록 강요하는 '시민의 자유'에 의해 포박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가지 장치들이 많은 대중을 대중문화에 자연스럽게 순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스스로 일탈되도록 만들고 그들은 영원히 주변인으로서 생을 마감해야한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거라 굳은 맹세를 하지만 사회는 "너 또한 아버지처럼 살수밖에 없다" 하며 똑같은 길을 인도한다. 또한 "이 사건이 마무리되려면 아마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부도 난지 1년이 넘었는데 도대체 정부에서는 뭘 하지는 모르겠다"라며 울분을 토한 이천 동명연립에서 마주친 세입자의 말처럼 사회적 모순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의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이고 하고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빈곤의 악순환은 대를 이어 계속될 것이다. ● 국가경제의 부흥에 박차를 가하던 70년대 이후 갑작스런 도시로의 인구이동은 자연스럽게 주택문제와 부딪치고 자본축적의 정도에 따라 주거공간이 선택되었다. 이러한 빠른 현대사회의 발전과 성장은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계층을 만들었으며 사회에 뒤쳐진 이들을 '도시빈민'이라고 부른다. 지난 개발독재 시대에는 부족한 주택을 해소하는 방책으로 일반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소규모 주택에 '반지하'라는 죽음의 공간을 들이거나 성남의 경우처럼 산을 깎아서 몇 평씩 나누어주고 사회에 뒤쳐진 놈들끼리 알아서 살라는 식의 무책임한 행정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다. 내 작업은 가족에 대한 일종의 기록(document)이며 동시에 비가시적이고 배제된 공간, 즉 도시빈민들의 거주공간이나 공장지역 등 일상공간에 대한 보고(Reportage)이고자 한다. 자아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다 부모님의 모습을 그렸고 그 속에서 노동자의 환경을 통해 자본주의 공간속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보았다. ● 도시빈민 지역으로 대표되는 최초의 계획도시이며 최근의 계획도시인 분당이 함께 공존하는 성남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근대사를 급격히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긴 열악한 삶의 지층을 경험하기 위해 태평동 일대의 가파른 고갯길을 스쿠터로 돌며 비디오로 촬영했다. "분당 없으면 성남은 쩔뚝이지, 바보되는 거야!" 하는 구 시가지 시민의 말은 아직도 성남시가 짝사랑하는 분당과의 어려운 관계를 토로하고 있다. '성남프로젝트'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선 입주 후 건설'이라는 무모한 건설 과정에서 생긴 현실적 문제들과 환경조형물에 관한 내용을 비판적으로 제시했으며 그 동안 관습적이고 개념화된 무력한 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집단적인 공동작업으로 제작되었던 프로젝트다. 비디오 이외에도 평면, 설치, 사진 등 여러 가지 매체를 사용하면서 주로 다큐멘타리를 작업방식으로 사용했다. 사실을 미화하거나 드라마 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진실까지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 나의 신사문화답사기는 카우보이와 추장, 고구령이란 나이트클럽 입구에 되살아난 고구려 벽화, 곳곳에 쳐밖혀 있는 상업적 오브제들과 낙서들을 통해 일상과 예술의 관계에 관한 가벼운 물음이었다. 강남구 신사동이라는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공간속에서 펼쳐지는 도시이미지의 이중적 모습들을 책으로 만드는 과정자체가 하나의 다큐멘타리이다. 'happy new year'는 1999년 이천을 가던 중 접하게 된 부도난 동명연립의 건물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세입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사진과 연하장의 형식으로 제작되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졌다. 이러한 사실과 경험에 대한 '기록'들 그리고 보고는 새로운 미적 창조행위에서 요구되는 것 못지 않게 우리의 현실적 삶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만 찍고 밥먹어, 그게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미대 6년 넘게 다녔으면 됐지.ㆍㆍ쯧ㆍ쯧ㆍㆍ", "에그! 저놈은 도움이 안돼!". 비디오 작업에서 부모님이 촬영을 하고 있는 내게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물론 싫거나 미워서 하는 말씀은 아니다. 미술을 하는 내게 있어 이러한 현실은 사회의 계급과 국가권력이 생활세계에 어떻게 교차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으로 살아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통해 나와 가족, 나와 미술, 나와 사회와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며 그러한 일상의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족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또는 가족의 정치적 헤게모니, 가족주의 등 거창한 사회적 의미 찾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사회 체제 속에 함몰되어온 소수자의 삶에 의미와 가치들을 명확히 하고 부모문화로부터 비롯된 특정한 삶의 방식들을 보여주고 나아가 가족이라는 경계와 사적 경험을 넘어 사회변혁이라는 또 다른 미술가의 역할을 생각해 보려한다. 이원론적으로 대립되고 긴장된 현대 사회 속에 이전의 미술가의 자리에서 벗어나 여러 층위들을 돌아다니며 다층적 리좀(rhizome)의 한 모델로서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의, 미술의 한 방편임을 발견한다. 예술가의 체험을 통해 그 사회적 현실의 생활 형태를 파악하고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동안 서구미술이 서구현실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다른 내용과 표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작은 의무감을 가져본다. 미술사라는 가상현실과 그럴듯한 수사학을 사용하며 떠들어대는, 그리고 지식의 유희나 사물의 현상적인 것에 몰두하기에는 살아있는 현실이 너무 역동적이다. 보고, 그리고, 만들면서 느끼는 것, 이렇듯 미술은 어느 특정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일하는 현장에서 이야기되는 것이다. 물론 미술사라는 배경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미술의 현실과 미술활동이 언제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연관되어있다는 상황을 연구하고 관찰하여 이러한 바탕에 실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이루어져왔던 창조에 관한 다양한 형식이나 이론들이 기능성과 실용성을 배제한 체 표현적이고 장식적인 내용으로만 치우쳐왔으며 미술의 과정으로서 이해가 생략된 경우가 많았다. 창조의 과정 또한 누군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동'으로 표현될 수 있다. 아방가르드는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현실의 복합적인 문제를 보여주려면 이러한 노동의 과정을 사회 속에서 체험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화실이라는 고착된 장소에서 벗어나 삶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 문화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생산자로서의 미술가의 위치를 모색해야 할 때다. 전통적 개념의 미술가에서 사회의 매개적 역할의 미술가로, 때론 창조적인 예술가에서 생산적인 예술가의 인식이 필요함을 느낀다.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의 구현은 사회부정이나 새로움만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다. 사회의 중심에서 때론 주변에서 '예술이 되려는 경향'을 넘어설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 임흥순
Vol.20010219a | 임흥순展 / IMHEUNGSOON / 任興淳 / video.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