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를 바라봄

배종헌展 / BAEJONGHEON / 裵宗憲 / mixed media.installation   2002_0807 ▶ 2002_0820

배종헌_밥그릇(뚜껑)과 국그릇의 단면도_모눈종이에 드로잉_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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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헌 홈페이지_www.jhbae.com

작가와의 대화 / 2002_0810_토요일_03:00pm

2002 대안공간 풀 공모 당선전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82.(0)2.733.9636 www.altpool.org

1. 해묵은 작업을 들추며 ● 이번 전시에 내어놓을 작업들. 그러니까 「'나의' 밥그릇과 국그릇에 관한 이야기」는 1997년 9월에 처음 시작하였으나, 최근에 이르기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는 지독히 개인적인 사색들이다. '사색'이라니 너무 거창스러운가! 심사를 보셨던 어느 분은 나의 작업들을 "노는 쪽"에 넣으셨다. 그 짤막하지만 따끔한 평문을 읽고 나는 괜스레 웃음이 났다.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전시에 선보일 작업물들은 한마디로, '지 밥그릇 국그릇 가꼬 놀았다'로 보셔도 그리 어긋난 것은 아닐 터.

배종헌_다 먹다_밥그릇, 국그릇, 자, 디바이드_1998

2. 이 그릇의 화학식은 어디에 있는가? ● '전시계획서' 상에 나는 이 전시의 주제를 「 '나의' 밥그릇과 국그릇에 관한 의심스런 공부」라고 적은 바 있다. 이유인즉, 밥그릇과 국그릇이라는 흔하디 흔한 소재를 다룰 것이나, 다른 사람의 그것들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끼니때마다(물론 집에서만) 달그락거리며 쓰고 있는 바로 '나의' 밥그릇하고 국그릇에 관한 얘기를 늘어놔 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치 공부를 하듯 여기에 놓이기까지의 문화사적인 관심에서부터 크기며 형태, 성분 따위를 분석하는 등 내 나름으로 이러저러한 탐구를 해보자는 심사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만족적 탐구는 자의적인 해석의 연속이며 본질로부터 빗나가는 일탈 행위이기에 분명 이 공부는 '의심스러운' 짓이 되고야 만다. ● 일테면 이런 것이다. 나의 밥그릇과 국그릇의 성분을 분석함에 있어 그릇의 외관상에 나타나는 색깔이나 질감 등 여러 정황과 개연성에 근거한 화학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이를 스스로 검증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근거 있는 정황과 충돌하게 된다. 서로가 이유 있는 진단을 내려보지만 진단은 진단일 뿐이다. 진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만나려는 순간 서로 어긋나버리는 상태가 되고야 만다. 화학식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밥그릇과 국그릇 안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내가 고교시절 즐겨 펼치던 지구과학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저어기 팽개쳐놓은, 공붓방 구석의 먼지 구덩이 어딘가에 있다. 크기와 형태를 분석하는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밥그릇과 국그릇의 외형을 이루고 있는 두께나 높낮이, 폭 등을 모눈종이 위에 실제 수치로 옮겨보는 일은 고놈의 밥그릇과 국그릇을 정확히 작도해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릇이라는 입체물을 평면으로 옮겨 그리기 위해 내가 사용한 도구란 고작해야 작은 '플라스틱 자'와 '디바이드'가 전부이다. 이것들 외에 이 방구석에서 무엇을 더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의 이 진지한 연구는 '의심스러운' 잘못된 연구이다. 엉터리이다. ● 하지만, 이 잘못된 연구는 결코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과정'이라는 동네에 '잘못'이란 이는 살지 않는다. 영원히 유보된 진실을 만나지 못한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누구나 틀림없이 그렇다고 믿어주는 검증된 사실을 그대로 따르는 태도나,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조작되는 도구 따위는 이 놀이에서는 오히려 재미가 없다. 나에게 고가의 단층촬영기나 비파괴검사기, 성분분석기, 아니 그만은 못하지만 버니어캘리퍼스와 같은 오차한도가 아주 작은 두께측정 장치가 있다고 치자. 이 얼마나 각박스러운 일인가. 그릇의 두께를 측정하기 위해 나에게 유용한 도구는 500원짜리 디바이드와 나의 손가락 끝에 살아 있는 육감(肉感)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분자구조나 화학식을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영원히 알아낼 수 없을지 모르지만, 과정이라는 두께는 훨씬 더 두텁다. ●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B를 바라봄』에 내어놓을 작업들은 일전의 『S를 바라봄』의 것들과 유사한 맥락에 놓인다. 모든 강렬함의 원천인, 또 한 번의 "제자리에서의 여행"이라고나 할까. 차이라고는 S가 낯설은 특정 공간에 관한 얘기였다면 B는 일상 속의 특정한 사물에 관한 얘기라는 점, S가 '이 공간의 도면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것이라면 B는 '이 그릇의 화학식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차이 정도이다.

배종헌_더이상 먹어서는 아니되는 밥_그릇_밥알, 수저_2001

3. 위험한 돌다리, 거짓된 진실 ● 이즈음해서 왜 이딴 짓을 하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또 묻게 된다. 진리의 탐구도 아니요, 고매한 예술적 화업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무언가 생산적인 성과도 전혀 얻을 수 없는 이런 짓을 왜 하는가? 라고. 아직 잘 모르겠다. 공연히 멀쩡한 돌다리를 소리 없이 탕탕거리며 열내서 두드려보듯 바보 같은 짓인지도 모르겠다. 이 두드림은 진리의 세계로 안전하게 건너기 위한 두드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영원히 건널 수 없는 다리로 붕괴시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화연구가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며 더군다나 과학자는 결코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놓여 있는 어떤 대상인 나의 밥그릇과 국그릇에 대하여, 보잘것없지만 내가 가진 최선의 자료와 도구를 사용하여, 문화사적 가치와 분석적인 자세로 물질의 본질을 캐며 언어적인 대상의 묘사와 감정의 미묘한 떨림을 찾아볼 것이다. 무엇인가를 다르게 바라봄으로써 일어나는 사유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펼쳐 보일 것이다. ● 그런데 아뿔사! 이 모든 궁리가 헛된 거짓이니. 엉터리이니.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모든 궁리가 진실된 무엇임에 의심할 수 없는 확신감을 느끼며 사유된 사물, 스스로 사유하는 사물을 이래저래 그려본다. ■ 배종헌

Vol.20020804a | 배종헌展 / BAEJONGHEON / 裵宗憲 / mixed media.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