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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3번지 B1 Tel. 02_3141_1377 www.galleryloop.com
동일한 척도로 측정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계랑하고 위계화 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에서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선택되는 잣대는 결국 그것을 손에 쥘 주체가 임의로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이 자의적인 기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는 침대에 맞추어 사지를 잘라내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 0.000km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전시에서 작가는 '개인의 상황과 공간 그리고 상대적 시간을 수치로 환원시키는 사회'에 대하여 그 이면에 도사린 구조적 시스템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얼마나 개인에게 제도화되어 현실을 뒤바꾸어 놓았는지' 묻고 싶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매우 무거운 주제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매우 가볍게 다룬다. 이는 곧 작가의 장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이 보고 느낀 현실을 그야말로 쇼처럼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의 작품 속에는 그가 말하는 '이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그 틈바구니에 낀 희생자들이 등장할 뿐이다. 그들은 연출된 쇼에 부지불식간에 포섭된 관중이거나, 이루지 못할 꿈을 쫓는 덩치만 커버린 조폭이거나, 자살을 꿈꾸는 익명의 누군가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그 사연이 무엇이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게다가 속도를 조작하여 재생하였기 때문에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이러한 속도의 조작은 이 사회가 절대적 수치로 계량한 현실을 조롱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또한 주인공들의 무용한 행위는 희극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동시에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말처럼 영상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섣불리 설득하길 원하지 않는 작가의 어법에 블랙코미디는 매우 잘 들어맞는다. 또한 싱글채널 작품이 종종 관람객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일쑤인 반면, 작가는 효과적인 편집, 적극적인 공간 변형으로 이러한 난점을 꽤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작가의 능력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매우 경쾌한 작가의 어법은 한편으론 의미를 전달하기에 다소 역부족인 듯 보인다. 너무 직설적이어서 외려 모호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섣불리 단정짓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직은 가능성이 더 소중한 젊은 작가이기 때문에. ■ 황진영
Vol.20020725a | 김기라展 / KIMKIRA / 金基羅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