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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신세계갤러리 인천시 남구 관교동 15번지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1층 Tel. 032_430_1157
정정엽의 그림은 잘 보이지 않는 삶의 이면으로 우리 시선을 끌어다 놓고는, 그 이면이 실은 우리 삶의 또 다른 축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예술을 일상 속으로 돌려놓는다. 궁극적으로 비로소 일상은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안온한 것이면서 동시에 낯설고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 봇물 터지듯, 팥 알갱이들이 수행했던 이러한 예술적 기능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나무와 해초로 릴레이 된다. 각각의 개체성이 뚜렷이 식별되었던 알곡 그림과 달리 나무와 해초들은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세필로 그린 구성요소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의 설명이 없다면 이것이 과연 지하철길 옆에서 매연에 질식되어 죽어 가는 나무들인지, 해변으로 떠밀려 내려온 해초 뭉텅이인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전체적인 형상의 유동성이나 그림 곳곳에 무게를 주고 있는 음영들 그리고 단색조의 색채가 만들어내는 묵직한 기운들 때문에, 형상들은 쉽게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보는 사람의 머릿속을 떠돌며 어느 순간 예상 밖의 이미지들로 변신한다. ● 일견, 부드러운 모피나 염색한 가모假毛 같은 이들 형상은 살아있었던 것들의 흔적이자 시뮬레이션으로서 그 이물스러움을 드러낸다. 생명이 떠난 시체나 사람을 본 딴 인형이 그렇듯이 이 그림들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체취를 맡을 때의 그 느끼한 빈혈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팥 알갱이들이 우리에게 제시했던 삶과 죽음의 관계방식을 일시적으로 역전시키면서 얻어진 효과라 할 수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렇게 죽어 '자빠져' 있는 것들을 정정엽은 장시간 공을 들여 살려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는 살려내려 하고 그 대상들은 기꺼이 살아나려 한다. 그림의 프레임은 그러한 효과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그것은 이 존재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기보다는 오히려 가까이 육박해 들어가면서 억압하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려 순간적으로 꿈틀하는, 덩어리들의 움직임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작가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도시의 버려진 나무들을 회화적으로 치유했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치유방식 및 과정은 외과적 수술처럼 명쾌하기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처럼 신기하다고 말해야할 것이다. ● 그런가 하면 고사직전의 작은 나무들을 담아놓은 연작들은 식물의 육질을 흔적이나 얼룩으로 순간고정 한다. 그림의 크기나 그것에 반비례하는 작품의 개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그림들에서는 큰 그림에서 느껴졌던 동물적인 감각들이 상당히 삭감된다. 대신에 모든 생물들의 살아있다는 그 징표는 촉각성을 통해 전달된다. 디테일이 뭉개져 있는 이들 관목의 육질은 바로 그 때문에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다. 그 과정에서 시각적인 소통을 위해 거리를 두기보다는 접촉하기 위해 거리를 좁히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는 사람들이 그림에 손을 대면 올망졸망한 것들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들은 흔히 사극에서 방자술에 동원되는 인형들과는 정반대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상대를 죽이고 저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 살려내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또 다른 접촉주술의 매개체이다.
반면에 이번 전시에서 한결 분명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면서 바닥에 시원스럽게 몸을 누이고 있는 것들은 다름 아닌 해초 더미이다. 이 형상은 어찌 보면 바다에 살고 있는 포유동물 고래처럼 분류체계를 교란시키는 이질적인 존재인 것도 같다. 그런가 하면 바다 속의 이름 모를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놓은 듯 화면 안에서 가볍게 움직이며 다가오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정엽의 두 번째 개인전 작품인 「스며드는 강」이나 「흐르는 대지」가 그랬듯이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 사이의 간극 없는 편집이 주는 '특수효과'를 체험하게 된다. 망원경과 현미경이라는 테크놀로지가 신체의 연장延長으로서 우리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면, 정정엽의 그림은 테크놀로지 없는 "수공적 노고를 통해" 그 한계를 일시 도약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단련된 상상력이 도달하게 되는 우주적 질서는 다시 복잡한 일상의 층위 사이로 끼여들어 우리 삶의 풍경을 '낯선 풍부함'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며 그렸던 그림들을 보러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또다시 다음 작업들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충격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했다. 이는, 변화 그 자체가 또 다른 압력이자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 우리가 처해있다는 것을 날마다 절감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작가가 계속해서 끈질기게 다음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변화의 또 다른 싹은 방치되었던 감자나 무에서 생겨나는 싹 - 말 그대로! - 을 검은 먹질로 필력 있게 그려낸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음전한 그로테스크가 고정된 프레임을 깨고 좀 더 집요하게 의식 아래 세계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게 될지, 아마도 다음 전시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조급함은 별로 좋은 수용자의 덕목이 아니다. ■ 백지숙
Vol.20011207a | 정정엽展 / JUNGJUNGYEOB / 鄭貞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