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나무의 이야기

김대수展 / KIMDAESOO / 金大洙 / photography   2000_0509 ▶ 2000_0522

김대수_chungsando, wando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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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마당 Tel. 02_720_9955

세가지 나무의 이야기―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 이번 김대수의 사진전에는 세 가지 다른 나무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그가 집중적으로 찍어오고 있는 대나무이다. 그의 사진에서 대나무는 꿋꿋하게 변함없이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자연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대나무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순을 내밀고 자라나서 자신을 쇄신하는 다이나믹한 어떤 것으로서 보여진다. 대나무는 언제나 새로워 보이는 듯한 착시효과를 주는데, 이 사진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김순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것만 같이, 대나무는 언제나 새로워 보인다. ● 더군다나, 인물에도 포토제닉한 사람, 즉 사진발 잘 받는 인물이 있듯이, 자연물에도 더 포토제닉한 것이 있는데, 이 대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대나무는 위로 곧게 자라는 수직성과, 그것을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고 지나가는 마디의 대비 때문에 그 자체로 시각적 조형성이 무척이나 뛰어난 나무이다. 아니, 나무 이상의 것이다. 상징화하고 해석할 여지가 무척이나 풍부한 나무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아니면 평론가가 대나무에 어떤 과장된 의미를 불어넣었다고 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대략 전라북도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대나무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아마 그것을 보고서 특별한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대쪽같은 선비정신이라고 해도 좋고, 충절이라고 해도 좋다. 자연물의 상징성은 인간의 머리 보다 크고, 쉽게 고갈되지 않을 만큼 수량이 많은 샘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거기다 부여하는 의미는 그 풍부함을 다 다룰 수 없다는 것만 알고 있다면 대나무를 사진 찍든 시를 쓰던 노래를 짓던 얼마든지 좋다. 김대수의 사진에 나오는 대나무는 그런 상징성의 일단을 내비치고 있다. ● 또 다른 나무는 길을 찍은 사진에서, 길옆에 등장하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의 사진 속에서는 길을 따라 나 있기도 하고, 나무들이 난 사이로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등, 길과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보여지고 있다. 즉 나무가 길의 한 요소이고, 길이 나무의 한 요소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길들은 이제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골의 구불구불한 길에서부터 산업화가 밀어닥친 포장도로에 이르기까지 스며들어 있는 정서의 변천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동안의 산업적, 문화적, 역사적 변천과 그것의 풍화가 무수히 밟고 지나다닌 그 길은 각각의 시대를 말해주는 아이콘 노릇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이것은 50년대의 길, 이것은 90년대의 길, 하는 식으로 길의 나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길옆의 나무는 상대적으로 나이를 천천히 먹는 것이고, 닳아지는 길과는 달리 생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풍화에 더 잘 견디는 이미지가 되고 있다. ● 또 다른 나무는 사진 속의 나무가 아니라 사진 바깥의 나무다. 그것은 전시장 천장을 이루고 있는 서까래와 기둥에 쓰인 나무이다. 이 세 번째 나무를 얘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시를 만들어주는 장치, 즉 전시공간, 조명, 액자 등과 더불어 전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시의 장치란 것은 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전시장이나 액자 자체를 보러 전시에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전시장이라는 프레임, 혹은 액자라는 프레임 안에 있는 이미지이지 프레임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이지 극장 자체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 그러나 전시의 프레임이야말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이미지로 선언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며, 실제로도 어떤 전시장에서 어떤 액자에 사진을 넣느냐에 따라 사진의 내용이 많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전시의 장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김대수의 전시에서는 전시장의 천정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시각적으로 작품과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고, 작품의 의미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전시장을 보지 않고 작품만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런데 이번 전시가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사진마당이 새로 단장하여 재개관하는 첫 번째 전시라는 점이다. 즉 전시장의 천장을 이루는 나무들은 오래 된 것이기는 하되 그 표면을 긁어내고 다시 칠을 한 것이므로 사실은 새것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이 전시장은 조용하고 정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옛날 것이면서 새 것이라는 재미있는 역설과 더불어, 상당히 많은 변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김대수의 사진이 들어갔을 때 그것은 미리 의미가 완비된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실체로서의 예술작품이 준비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 들어감으로써 김대수의 사진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 그러므로 김대수가 사진 찍어 놓은 나무의 이미지들은 원래의 운명은 그렇지 않았지만, 사진마당에 전시가 됨으로써 그곳의 서까래, 기둥들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묘한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대나무와 길의 이미지가 이루는 변화의 정지의 변증법은 프레임 바깥의 변화와 정지라는 차원과 맞물려 매우 흥미로운 삼각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이번 전시의 내용이자 형식이다. ● 혹시 아는가, 어떤 다른 사진가가 이 전시장 자체를 사진 찍어서 이 전시장에 전시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될지? ■ 이영준

Vol.20000502a | 김대수展 / KIMDAESOO / 金大洙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