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노충현×갤러리 소소 주최 / 갤러리 소소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소소 GALLERY SOSO 서울 중구 청계천로 172-1 더 소소 The SoSo 4층 Tel. +82.(0)31.949.8154 www.gallerysoso.com @gallerysoso_
목 뒤로 넘긴 뒤에도 여전히 입안에 남아 있는 잔여감, 뒷맛. 처음 닿았던 본연의 맛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섞여 또 다른 감각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그것은 더 오래 음미하고 싶은 갈망을 남기기도, 혹은 얼른 닦아내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이 뒷맛을 받아들일지 밀어낼지는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 맛을 느끼는 것은 필요에 의한 섭취 그 이상의 행위를 의미한다. 미각이 다른 감각과 기억을 자극하며 총체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회화 또한 시각을 넘어 촉각이나 후각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감각을 건드린다. 물감의 질감, 붓질의 흐름, 재료의 흔적을 통해 관람자는 그것이 지닌 실재적 존재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대체 불가능한 물질성을 바탕으로 회화는 넘쳐나는 디지털 화면과 데이터 이미지 사이에서 그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한다. ● 캔버스와 물감이 주는 이러한 힘을 믿는 일곱 명의 작가는 자신의 삶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삶을 편집하고 변형하여 객관적 실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이는 마치 음식을 먹고 난 뒤 입안에 남는 뒷맛과 닮아 있다. 처음 혀에 닿을 때의 맛이 현실 본래의 상태를 전달한다면, 뒷맛은 그것이 변질되고 재해석된 결과물로서 원본에서 파생된 변형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일곱 작가들이 관찰하고 느낀 세상의 첫맛 역시 각자의 방식을 통해 눌리고, 혼합되고, 확대되는 등 변주되어 뒷맛을 담은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 이런 식의 감각은 작가가 재구성한 순간과 관람자의 해석이 만나는 지점에서 더욱 증폭되며, 관람자에게 새로운 층위의 경험을 제공한다. 즉, 경험의 기록으로부터 창출된 새로운 경험인 것이다. 또는 관람자의 감각과 기억을 자극하여 무의식에 숨겨진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애프터 테이스트 The After Taste』는 현대 회화의 물질성과 감각적 잔상을 탐구하는 키워드로 '뒷맛'을 제시한다. ● 회화 표면에 남겨진 물질적 자취는 화면을 손끝으로 느껴지는 듯한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고니, 이수빈, 조현민은 이러한 촉각적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들이 경험한 삶의 인상을 구현한다. 그런가 하면 삶의 잔상을 포착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다. 손민석, 유동희, 이가영, 임현지는 서사적 개연성보다는 이미지와 감각 자체에 집중해 그것들을 화면 위에 쏟아낸다.
고니 작가는 먼지나 이슬처럼 미세하게, 그러나 성실히 퇴적되는 것들에 주목한다. 캔버스 위에 떨어뜨린 수채물감, 그 위를 연필과 색연필, 그리고 다시 물감으로 쌓아 나가는 것은 그녀가 포착한 시간의 산물들을 질감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이다. 소복소복, 켜켜이 혀 위에 쌓인 맛에 고니는 가랑비에 옷 젖듯 자신을 내맡기며, 그 뒷맛을 고요히 음미한다.
이수빈은 젯소와 모델링 페이스트를 혼합한 그라운드를 바탕으로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린다. 그 결과, 기계와 유기체가 혼합된 미래는 먼 과거의 벽화처럼 박제되며 유물을 더듬는 감각을 유도한다. 두려움 속 피어나는 호기심으로 그녀는 차갑게 푸른 기계적 질서에 깃든 생명의 역동성을 찾아낸다. 이렇게 이수빈은 불안과 긴장 속에서 매혹적인 뒷맛을 발굴한다.
조현민은 실제 이미지를 평면화하고 패턴화하여 새로운 장면을 창조한다. 그렇기에 촘촘히 엮인 씨실과 날실 같은 그의 화면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비현실이다. 직물 직조 과정과의 유사성은 질감뿐 아니라, 투명도를 높인 물감을 겹겹이 쌓아 조색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렇게 재단된 대상들은 어금니 사이에서 납작해지다가도, 현실적 제목을 통해 그 부피감을 되찾는다.
손민석이 만든 장면은 고이지 않고 흐른다. 색과 형태는 교류하여 그 신선도를 유지하며, 경계 없이 섞여 고정관념을 해제하고 현장감을 더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일상에서 포착한 풍경을 입안에서 굴리고 녹여내 시시각각 변화하는 뒷맛을 만들어낸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 종속시킨 이 맛에는 자체적인 생명력이 존재한다.
유동희는 휘발되는 순간과 낯선 환경이 주는 이질성을 포착한다. 밤 거리의 생경한 감각을 옮긴 그의 작업은 새로운 형태의 야상곡(nocturne)이다. 가로등 불빛, 네온사인처럼 유한한 존재의 흔적에 유동희는 힘을 부여한다. 불빛과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다가도 한순간 빠져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지는, 이방인으로서 밤 풍경의 뒷맛은 공허한 듯 진득하게 유지된다.
이가영은 공상 속 형상들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탐구한다. 그녀의 수면을 방해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표출하고자, 불안정하고 신비로운 이 세계는 탄생했다. 아무것도 억압하지 않으며 억제되지 않는다. 잡히는 대로 얹어낸 색채는 미끄러운 아크릴을 재빠르게 가로지른다. 본능이 이끌어 낸 이 맛은 사르르 녹다가도 따끔한 뒷맛을 남기며 감각을 자극한다.
임현지의 작업에는 어느 것 하나 그녀의 삶이 아닌 게 없다. 업무 환경이 그녀에게 각인시킨 것들, 이를테면 조명, 물건, 음악, 그리고 얼굴들. 임현지는 이를 조각내고 뒤섞어 퇴폐적 화면을 구성하고 농담이라 명명한다. 테이블 위의 것들은 언뜻 정적인 듯하나, 거칠고 두꺼운 붓 터치로 그 동세가 뒤집힌다. 그녀가 차려 놓은 것들을 한참 씹어 넘기다 문득 느껴지는 뒷맛에는 씁쓸한 웃음이 터질지도 모른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따뜻한 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맛보는 순간 잊혔던 유년기의 기억과 감각이 되살아나는 강렬한 경험을 한다. 맛이나 냄새와 같은 신체적 감각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시각적 경험을 넘어 촉각적, 공감각적인 상상력을 통해 작품을 읽을 것을 제안하는 동시대 회화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회화는 인간의 신체와 감각을 작품과 직접 연결하며, 이를 통해 더욱 가치 있고 오래 새겨질 예술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 일곱 명의 작가는 저마다의 삶에서 길어 올린 단면들을 조형적 언어로 재구성하였다. 그렇게 구축된 장면들은 작가들의 손을 거쳐 이 공간에 실재한다. 혀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질감과 풍미가 그러하듯, 이 장면들은 관람자의 기억과 연결되어 과거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감각적 통로가 된다. 일곱 가지 맛의 마들렌을 베어 물었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 펼쳐질 새로운 뒷맛, 그것이 『애프터 테이스트 The After Taste』가 건네는 마지막 한 입이다. ■ 노소연
Vol.20250228d | 애프터 테이스트 The After Taste展